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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용문 :중국의 과거시험 13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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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 지식산업사, 2023.
415 p. : 천연색삽화, 지도, 초상 ; 24 cm
2024년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교육부 우수학술 기증도서임
수상주기   :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교육부 우수학술도서, 2024년


  소장사항 : 전주교육대학교 도서관 [ 912 오184ㄷ ]

등록번호 소장정보
EM210115 대출가능
  • Vol.Copy :
  • 별치기호 : F
  • 소장위치 : 개가자료실
EM210116 대출가능
  • Vol.Copy : C.2
  • 별치기호 : F
  • 소장위치 : 개가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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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통사회를 이끈 엔진, 과거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파헤치다 중국의 사회와 문화를 평생 연구해 오고 있는 오금성(서울대 명예) 교수가 1300년 동안 중국의 황제 권력을 지탱해 오던, 과거제도라는 세계 최초의 인재 선발제도를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역사. 그 핵심 기능의 변천!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중국은 역사와 문화의 단절 없이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천 년간 그 정체성이 유지되어 오는 세계 유일한 나라로, 그 배경에 과거제가 있다. 진나라 이후 문벌귀족을 기반으로 황제 권력이 나라를 지배해 왔다. 수많은 이민족들을 아우르고 한미한 세력들을 지배해 오다가 시행착오 끝에, 피지배세력을 이끌려면 빈부귀천의 차별 없이 능력만으로 인재를 뽑아 써야겠다는 것이, 과거제도의 기본 원리였다.(우리나라도 신라 말을 거쳐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과거제도를 운용했다.) 과거제의 핵심, 문벌귀족중심 사회를 능력위주의 인재선발로 바꾸다 이 과거제가 중국 전통사회의 기둥이었다면 그 주춧돌은 교육, 특히 공자, 맹자의 가르침이었다. 다시 말하면 황제 독재 체제 아래 사회 계층이동의 사다리, 출세의 사다리는 바로 이 과거제였던 것이다. 과거제는 7세기 수나라, 당나라 때 골간을 짜고, 1300년이 지난 1905년 서구의 근대교육의 물결 앞에 사라질 때까지 수명을 이어왔다. 1300년 과거제의 면면을 통해 한반도의 미래를 보자 주변 4강의 각축 속에서 한반도의 현 상황은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과 함께 동아시아 문화권 안에서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이웃이자 적으로 살아온 우리에게 중국 과거제의 흐름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를 되새기면서 우리가 처한 이 현실을 직시하고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위기를 ‘메기효과’로 이용하여 전화위복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본문중에서

공자의 《논어論語》를 펼치면 바로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 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19)란 말이 나온다. 이 두 구절은 공자가 살던 당시에 진행되던 다양한 사회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교육’은 이전같이 귀족만의 특권이 아니고, 모든 백성에게 보편적으로 개방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말이었다.20) 공자가 주장한 “유교무류”는 바로 그러한 사회변화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19쪽) 태종은 또 학교를 대거 확충하였다. 우선 국자학을 국자감으로 바꾸어 중앙의 관학을 통관하는 최고 학부로 삼아 학교의 지위를 높이고(정관 원년, 627), 공자孔子를 선성先聖으로 추존하고 공자의 사당廟堂을 국학에 건립하였으며, 가끔 국자감에 행차하여 제주祭酒(국자감 총장)와 박사의 강론을 들었다. 또 학사學舍 1,200간間을 증축시키고, 중앙의 모든 학교의 생원을 증원시켰다. 그 결과 정관(627-649) 연간에는 고구려·백제·신라·고창高昌·토번土蕃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까지 합쳐, 국자학생이 8천여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태종은 또 진사 합격자도 매년 평균 10.25명으로 증가시켰다. 태종은 정관貞觀 초에 단문端門(長安의 承天門)에 나갔는데, 마침 진사 합격자들이 발표장 벽에 나붙은 자기 이름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천하의 영웅들이 내 올가미에 걸렸구나”29)라고 하는 ‘명언’을 남겼다. (61쪽)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일부 개명 관료와 신사들은 전통적인 유교 경전과 팔고문으로 답하는 과거로는 그러한 위기에 대응할 수 없음을 절감하고, 서양의 기술을 배우자는 ‘자강운동洋務運動’을 전개하였다. 그 대표적 인물의 한 사람인 위원魏源(1794-1857)은 《해국도지海國圖志》에서, “오랑캐의 장점을 배워 오랑캐를 제압하자(師夷長技以制夷)”고 주장하면서, 학문의 범위를 전통적 유교경전으로부터 과학기술로 확대하였다. 또한 풍계분馮桂芬(1809-1874)은 《교빈려항의校?廬抗議》에서 ‘팔고문 시험이 아까운 인재들을 평생 쓸모없는 일에 매달리게 한다’고 비판하면서, ‘과거시험 합격자의 절반에게 서양의 과학기술을 배우게 하고 그들을 거인 신분으로 대우해 줄 것’2)을 요구하였다. (200쪽) 세계의 중국사 학계에서는 송·원시대 사회의 지배층을 ‘사대부’, 명·청시대의 지배층은 ‘신사紳士(紳衿)’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명·청시대의 신사는 스스로 사대부로 자처自處할 만큼, ⒜ 정치와 사회적인 역할, 혹은 ⒝ 이념적·사상적인 면에서는 송·원시대 사대부의 계층적 성격을 계승한 존재였다. 그러므로 사대부를 지배층으로 하는 사회구조는 송대에 성립되어 청말까지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대부와 신사는, ① 구성원의 다소多少, ② 정치·사회적 역할의 다양성. ③ 국가에서 부여한 우면優免(요역 면제) 특권의 적용 범위 등에서 다른 점도 많았다. (289쪽)

  목차

서문 7 제1편 과거제의 성립과 정착 제1장 과거제 맹아기의 관인선발 11 제1절 문명의 시작과 초기 국가 11 제2절 사학의 흥기 15 제3절 통일제국의 성립과 관인선발 23 제4절 분열시대의 관인선발 39 제2장 과거제의 성립 53 제1절 과거제의 시작 53 제2절 과거제의 정착 58 제3장 과거제의 객관화 83 제1절 송조의 통일과 과거제 83 제2절 교육의 보급 100 제4장 이민족 왕조의 과거제 채용 115 제1절 요·금시대의 과거제 115 제2절 원대의 과거제 119 제2편 과거제의 성숙과 종말 제1장 과거제의 학교 포괄 141 제1절 명대의 교육 141 제2절 명대의 과거제 161 제2장 과거제의 세밀화 171 제1절 청대의 교육 171 제2절 청대의 과거제 182 제3장 과거제의 개혁과 폐지 187 제1절 내우외환과 과거제 개혁론 216 제2절 과거제의 폐지 221 제3편 과거제의 정치·사회적 기능 제1장 귀족제 사회의 소멸 243 제1절 호족에서 문벌귀족으로 243 제2절 귀족층의 소멸 252 제2장 사대부사회의 성립 261 제1절 사대부계층의 성립 261 제2절 서민문화의 발달 277 제3장 신사층의 형성 289 제1절 사인층의 대두 289 제2절 신사층의 성립 296 제3절 신상의 출현 303 제4편 과거시험에 목멘 인간 군상 제1장 역대 장원의 향방 317 제2장 과거 불운자의 향배 333 제1절 불운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 333 제2절 불운을 화로 푼 사람들 349 제3장 명청시대 과거시험의 부정행위 355 결어 373 참고문헌 382 색인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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