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 서비스 http://lib.jnue.kr/JNUE 전주교육대학교 도서관 : 최신소장자료 ko 2024-05-19T00:01:01+09:00 Copyright (c) 전주교육대학교 도서관 All right reserved <![CDATA[(정치평론가 김홍국의) 리더의 말하기 =Leader's speech]]> 대표적인 정치평론가 김홍국 박사가 알려주는 리더의 말하기 비법! 저자 김홍국은 30여 년 동안 언론인이자 정치평론가로 활동해 왔다. 5천여 회의 방송토론 경험은 국내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말을 잘하고 의사소통의 전달력이 뛰어난 이들을 연구하고 공부해 왔다. 대표적인 연구대상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의 길을 가는 철학과 시대정신도 탁월했지만,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스스럼없이 당당하게 드러내는 데 매우 능숙한 최고의 연설가였다.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는 달변이나 다변보다는, 꼭 필요한 곳에서 의미 있는 발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그의 삶과 철학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생활을 하면서 지켜본 각계각층의 지도자나 리더는 모두가 뛰어난 자신만의 언변과 소통능력을 갖고 있었다. 김영삼,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들은 모두가 탁월한 시대정신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 대중과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보여줬다. 기자회견장에서 이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에는 단 한마디의 언어도, 쉼표도, 잠시의 미소와 다양한 표정 및 제스처 모두가 살아 있는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래서 저자 역시 스스로 말을 많이 하고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늘 책을 읽고 대화하면서 해야 할 곳에서 당당하게 발언하는 저자만의 말하기 방식과 소통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가능한 상대방의 이야기는 경청해 들어주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되, 꼭 해야 할 말을 적재적소에 필요한 시점에 하는 훈련을 했다. 정치평론가로서 5천여 회가 넘는 생방송 토론을 한 것은 필자의 말하기와 스피치 능력을 기르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 KBS, MBC, SBS 등 공중파와 라디오들, 기독교방송, 불교방송, 평화방송 등 많은 라디오매체들, YTN, 연합뉴스TV 등 보도채널, JTBC, MBN, 채널A, TV조선 등 출연하지 않은 매체가 없다. 나가보지 않은 프로그램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방송 경험을 갖게 됐다. 그래서 〈정치편평론가 김홍국의 리더의 말하기〉에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말하기 비법이 빠짐없이 담겨 있다. 이재명 지사의 경기도 대변인을 역임한 저자의 말하기 노하우 공개! 말하기 능력이 가장 중요한 분야가 바로 대변인일 것이다. 복잡한 정치 현안을 둘러싸고 시시각각 치열한 논리 대결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대변인은 탁월한 분석력과 표현능력, 순발력과 성실성이 요구된다. 임기응변을 발휘하고 상대방에게 비난과 고성으로 압도하려는 입심 대결의 서바이벌 오디션이나 영화에서처럼 폼 나게 발표하는 모습과 실제 정치는 완전히 다르다. 그런 점에서 대변인의 역량과 실력은 정당정치의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다. 특히 저자가 가장 막중하게 대변인의 경험을 한 시간은 이재명 지사 시절 경기도의 대변인을 할 때였다. 인구가 1400만 명이 넘는 광역 지방정부여서 수많은 현안이 가득했고,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사라는 점에서 언론의 끊임없는 질문과 전화, 현안에 대한 문의로 가득했다. 수많은 도청의 간부들과 직원들, 31개 시군의 단체장과 직원들이 협력해줬고, 헌신과 희생으로 가득한 대변인실의 과장, 팀장, 직원들의 열정과 단합이 수많은 갈등과 시련을 잘 극복하게 해줬다. 2천4백 개에 달하는 언론사의 출입기자들도 관심과 이해, 때로는 날카로운 질문과 비판으로 긴장의 연속인 와중에도 소통이 오가는 성공적인 대변인이었다고 평가했다. 그 외에도 저자는 대중을 상대하는 대변인 역할을 여러 차례 했다. 김대중 대통령을 추모하는 단체인 사단법인 행동하는양심 대변인,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상 대변인 등 다양한 단체의 대변인을 맡아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했다. 정부 부처나 기관을 취재하고 질문하는 기자의 역할에서 언론의 질문에 답하는 대변인의 업무는 결코 쉽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한국정치학회, 한국국제정치학회, 정당학회, 방송학회 등 다양한 학회에서 활동하고, 현재 부회장으로 일하는 한국협상학회, 한국보훈학회를 통해 다양한 학문적 이론과 현실 분석에 나선 것은 다양한 사회 경험의 폭과 깊이를 더욱 충실하게 보완하도록 해줬다. 특히 저자는 언론계에서 남들이 해보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해왔다. 보도국과 편집국에서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국제부, 문화부, 체육부, 기획취재팀 등 모든 부서에서 다양한 출입처를 오가며 온갖 현안에 대한 다양한 기사를 써왔다. 청와대 출입기자, 정부부처와 국회 출입기자 등 다양한 출입처에서 국민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기 위한 다양한 보도를 했다. 또 신문사, TV와 라디오 방송국, 영어방송국, 통신사, 인터넷언론사, 한국기자협회, 유튜브 등 모든 종류의 언론매체를 다 경험하고 직접 취재보도 업무에 종사했다. 역마살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회 전반의 모든 일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그 소중한 경험이 이 책에 모두 담겨 있다. 기자로 입문해서 30년 동안 열심히 갈고 닦은 글과 말의 실력, 리더의 말하기 실력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저자 : 김홍국 , 출판사 : 더봄 , 입수일자 : 2024.04.29 ]]>
김홍국 2024-04-29
<![CDATA[겨울 방학:최진영 소설]]> ■ “네가 내게 배운 것이 가난만은 아니라면 좋을 텐데.” 여전히 최진영의 인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가난이다. 늘 아쉽고 불안한 현재와 그로 인해 잡히지 않고 멀기만 한 미래. 그러나 최진영의 인물들은 두려움을 통과해 나아간다. 평화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아슬아슬하게, 끝일 것 같지만 계속된다는 마음으로. 수록작 「겨울방학」의 고모는 아홉 살 난 조카의 순수해서 나쁜 말들을 듣는다. “고모는 가난하니까 이런 데 사는 거잖아.”라고 말하는 아이를 향해 고모가 되돌려 준 것은 가난을 지우는 친밀감의 시간이다. 「돌담」의 주인공 ‘나’가 다니는 회사도 한 사람의 미래와 현재를 갉아먹는다. 정규직 대신 무기계약직으로 사람을 고용하고, 독성 물질인 프탈레이트 가소제가 첨가된 장난감을 팔면서도 ‘그 정도로 사람 안 죽는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회사. ‘나’는 그들에게 항의하고 그들의 방식을 거부한다. 협박당하고 일상이 무너질까 두렵지만 다시 찾은 고향 동네에서 ‘내가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를 생각한다. 생존을 위한 나쁜 관성이 쉽게 존엄을 해치는 날들에도, 소중한 것이 뭔지 모른 채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단단히 쌓는 인물들이 『겨울방학』에 있다. ■“우주한테는 네가 미세 먼지인지 몰라도 나한테는 네가 미세 먼지가 아니야.” 대책 없는 낙관이 아닌 바닥으로부터 건져 올린 희망을 말하기 위해 작가는 우주를 동원해 쓴다. 우주 입장에서는 티끌 같은 우리가 어째서 티끌보다 더 작은 희망을 지니고 함께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말한다. 수록작 「첫사랑」의 주인공 ‘혜지’가 사랑하는 것은 망원경으로 보는 별과 망원경으로 보지 않아도 되는 ‘우미’다. 혜지는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달라지면 지구의 생명이 박살나듯, 우미와 자신의 거리가 달라지면 자신의 세계도 박살나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 것처럼 사랑을 깨달은 것이다. 「어느 날(feat.돌멩이)」의 배경은 미 대륙만 한 크기의 돌멩이가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종말 직전의 ‘어느 날’이다. 종말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우리가 가까운 곳에서 죽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아무리 멀어도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가깝다고, 영영 함께인 것이라고 말이다. 최진영의 소설들이 알려 주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함부로 절망이라고 말하지 않는 법. 섣불리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 법. 소중한 것을 감별하는 법.
저자 : 최진영, , 출판사 : 민음사 , 입수일자 : 2024.04.22 ]]>
최진영, 2024-04-22
<![CDATA[고백 루프 :박서련 소설]]> 청소년소설의 경계를 확장하며 다가온 박서련의 첫 청소년소설집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 & 청소년이 보기에 적합한 소설 & 청소년이 직접 쓴 소설 그간 ‘청소년소설’은 주로 청소년 주인공을 통해 청소년의 목소리와 현실을 대변하고 청소년 독자에게 초점화된 문학적 감동을 주는 작품을 일컬어 왔다. 박서련은 그의 첫 청소년소설집을 통해 기존의 정의에 부합하면서도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한편, 그간 좀처럼 조명되지 못했던 영역으로도 시선을 넓혔다. 처음 만나게 되는 「솔직한 마음」과 「안녕, 장수극장」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핍진하게 다루었다. 「고-백-루-프」와 「보름지구」 역시 인물의 심리를 세심하게 묘사한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게 되는 작품이다. 한편 「엄마만큼 좋아해」는 청소년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청소년 독자를 위한 청소년소설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어린아이들을 통해 사랑과 우정의 삼각관계를 묘사한 이 소설은 자못 콧대 높은 청소년 독자들의 마음마저 충분히 녹이고도 남을 만한 귀여운 매력으로 가득하다. 박서련은 ‘청소년이 쓴 소설’ 역시 청소년소설의 한 갈래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작가는 자신이 고등학생 시절 창작한 소설인 「가시」와 「발톱」을 공개하는 것이 쑥스럽지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고 전해 왔다. 그간 미완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왔던 ‘청소년이 쓴 소설’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가다듬어 볼 일이다. 가지각색의 초콜릿이 알알이 담긴 상자에서 초콜릿을 고르듯, 독자들은 이 소설집을 읽으며 익히 알아 더욱 곱씹게 되는 작품부터 그간 맛보지 못한 작품까지 황홀하게 펼쳐지는 다양한 청소년소설의 세계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서툴지만 앞날이 더 기대되는 소녀들의 성장기 “처음부터 착한 주인공보다는 앞으로 착해질 수도 있는 주인공에 좀 더 끌린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성장이라 믿기 때문이다.”(104쪽) 1부에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기민하게 감각하지만 그로 인해 느껴지는 감정을 다스리는 데엔 서툰 소녀들의 성장기 세 편이 창작 동기와 후일담이 담긴 「작가의 말」과 함께 담겼다. 작가가 “이기적이고 생각이 짧은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들을 통과하며 하는 생각들을 솔직하게 쓰려 했다”(104쪽)라고 밝힌 「솔직한 마음」은 친구를 사귀고 싶은 아이돌 소녀의 고군분투기다. 아이돌 가수로 활동하다 멤버를 따돌렸다는 루머로 학교에 돌아온 ‘나’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영문도 모르고 초대된 채팅방에서 갖은 험한 말을 듣게 된다. ‘나’는 사건의 주범이 원래 왕따였던 ‘원따’임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원따와 외려 친구가 되려 하지만, 이내 원따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아찔함을 느낀다. 「안녕, 장수극장」은 고향 철원에서 벗어나고팠던 작가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고백한 소설이다. 폐업을 앞둔 극장을 운영하는 ‘나’의 아버지에게 어느 날 학생회장이 인터뷰를 하고 싶다며 찾아온다. 인터뷰 영상을 학교 축제 때 상영하겠다는 제안에 아버지는 정성스레 촬영한 영상을 보낸다. 축제 날, 아버지와 ‘나’는 마을 사람들이 극장에 얽힌 각자의 추억을 말하는 인터뷰 영상을 보고는 그것을 극장의 마지막 상영작으로 결정한다. 「엄마만큼 좋아해」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청소년이 등장하지 않지만, 청소년 독자들이 재밌게 읽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과 우정을 어린이를 통해, 소설적 재미와 미학을 놓치지 않으며 펼쳐 냈다. 밤이 오빠와 소꿉놀이를 하고 싶은 주비는 오빠가 좋아하는 양 갈래 머리를 하고 어린이집에 가지만, 같은 머리를 하고 온 시아를 보고는 시아의 머리에 껌을 붙인다. 주비는 시아가 자신과 친해지려고 머리 모양을 따라 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다음 날, 커트 머리로 변신한 시아가 주비에게 소꿉놀이를 제안하자 주비는 시아에게 미안한 마음과 밤이 오빠를 좋아하는 마음 사이에서 어쩌지 못하고 울어 버린다. ‘나는 어떻게 할까?’라고 자신에게 물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것이 바로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나는 믿는다”(154쪽) 2부는 SF적인 설정이 가미된, 작가의 돋보이는 상상력이 발휘된 작품들이 들어 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한 이후에도 명절은 우리에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궁금증으로부터 출발한 「보름지구」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국에서 달로 옮겨 가 살게 된 청소년인 ‘나’가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에게 추석을 소개하는 이야기다. ‘나’는 문득 달에서는 무엇을 보며 소원을 빌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고, 달에 사는 사람들만의 새로운 명절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작가는 “쉽고 간단한 이야기를 접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고 사유하는 동안에 이야기를 읽기 전보다 다채로운 시각을 갖게”(155쪽) 되길 바라며 썼다고 말한다. 표제작인 「고-백-루-프」는 타임루프에 갇힌 십 대 소녀의 사랑 이야기다. 모두의 선망을 받는 우지현과 함께 수행평가를 하게 되어 부담스러운 현지. 하지만 지현은 축제 날 자기 노래를 들으러 오라며 현지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지현의 요구를 가뿐히 외면한 이후, 현지는 같은 일이 반복되는 루프에 갇힌다. 현지는 루프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현의 공연을 보는 것임을 알게 되고, 지현의 노래 속에 담긴 진심과 지현을 향한 자신의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보름지구」와 「고-백-루-프」를 창작하며 작가는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묻고 답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 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박서련은 이제 그녀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은, 무한대로 확장하는 상상력이 담긴 작품들을 통해 독자 역시 ‘나는 어떻게 할까’를 묻기를 권하며 이것이야말로 문학이, 특히 청소년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강조한다. 청소년 박서련이 쓴 청소년소설을 만나다 “거칠고 서툴지만 이것이 내 원점이다. 약소하고 부끄럽지만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내 고유한 원형이다”(203쪽) 박서련은 청소년이 직접 쓴 소설도 한 갈래라고 생각한다며 청소년 시절 썼던 작품을 자신의 첫 청소년소설집인 이 책의 3부로 선뜻 공개했다. 이제는 한국 문학에서 뚜렷한 영역을 차지한 작가의 청소년 시절 작품을 본다는 재미를 넘어, 3부의 두 작품은 박서련이 느닷없이 나타난 문재(文才)가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인다. 「가시」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 철원에서 서울로 와 언니와 함께 살게 된 청소년의 이야기다. ‘나’는 손톱에 박힌 가시에서 엄마의 속눈썹을 떠올리게 되고, 아파하면서도 좀처럼 가시를 빼지 못한다. 어느 날, 주인공은 충동적으로 학교를 조퇴한 뒤 엄마와 함께 살던 동네에 가 보지만 엄마와 지냈던 흔적을 더는 찾을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언니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자신이 사라진줄 알고 걱정했던 언니의 진심을 깨닫고 비로소 마음을 푼다. 「발톱」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새엄마와 살게 된 청소년이 등장한다. 새엄마는 ‘나’에게 살갑게 다가오려 애쓰지만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반항심만 들 뿐이다. 그러다 새엄마가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그간 피곤해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새엄마의 배 속에 새 생명, 즉 자신의 동생이 있음을 뒤늦게서야 깨달은 ‘나’는 목욕을 마치고 나온 그에게 발톱을 깎아 주겠다며 말을 건넨다. 박서련이 등단 후 다양하게 변주하며 천착해 온 여성들의 서사를 생각해 본다면, 「가시」와 「발톱」을 박서련표 여성 연대기의 근원이라 해도 좋을 듯싶다. 작가는 “청소년은 소설을 쓸 수 있고, 소설 쓰던 청소년이 결국 소설가가 되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201쪽)라며 문학적 성취를 위해 싹을 틔워 나가는 청소년 독자들이 3부를 읽고 용기를 얻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저자 : 박서련 , 출판사 : 창비교육 , 입수일자 : 2024.05.07 ]]>
박서련 2024-05-07
<![CDATA[고층 입원실의 갱스터 할머니 :양유진 에세이 /양유진 지음]]> "루푸스라는 친절한 친구는 내 인생의 모든 중요한 순간에 타격을 주었다." 생사의 갈림길을 성큼 넘어온, 양유진의 씩씩하고 유쾌한 투병담 조금 더 심각한 표정을 지었을 법도 한데, 마음속에 오래 담아온 투병 이야기를 꺼내며 이 책의 저자 ‘빵먹다살찐떡’ 양유진은 털털하게 말문을 연다. 중학교 3학년에 갑자기 난치병이 찾아왔을 때 “이참에 매일매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보자”라고 생각했다고 말이다. 나를 보호해야 할 면역 체계가 오히려 나를 공격해 전신에서 염증반응이 나타나는 위험한 난치병 ‘루푸스’는 다행히 생존율이 90%가 넘지만, 갑작스레 위험한 증상이 발현되는 질병이다. 악화와 완화를 반복하다 황달부터 발진 등 갑작스러운 증상이 일상을 멈춰 세운다. 혈소판 감소증이 동반해 가벼운 출혈에도 위험하고, 류마티스관절염이나 광과민성증후군까지 따라다닌다. 지금까지도 일상을 위협하는 증상을 겪으며 어린 나이부터 생사를 오가는 위급한 입원 생활을 넘겨왔으면서도 저자는 의연하고도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루푸스는 내게 친절한 친구 같았다고. 일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난치병이 어떻게 ‘친절한 친구’ 같을 수 있었을까? 한창 즐거워야 할 청소년기에 입원실에서 몇 주를 입원하고, 바깥 생활을 하기 어려워 방 안에만 머물러야 했던 날들이 버티기 쉬웠을 리는 없다. 유튜브 ‘빵먹다살찐떡’의 영상을 챙겨보는 사람들이라면 알만한 자신의 ‘유쾌하고 긍정적인 성격’ 덕분이었다고 저자는 너스레를 떨기도 하지만, 이 책에는 저자가 어떻게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투병 생활을 긍정적으로 이겨냈는지를 귀띔하는 진솔한 이야기로 빼곡하다. 투병을 버티게 했던 것은 바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넌지시 가르쳐준 수많은 사람이었다. 병을 겪는 동안 새로 마주했던 이들의 위로와 배려, 자신보다 훨씬 심각한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굳세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를 저자는 온몸을 통해 느끼고 배워나갔다. “아프기 싫은 사춘기 소녀의 마음과 엄마의 사랑이 쾅쾅 부딪”쳤던 예민한 어린 시절부터, 저자는 점차 사랑과 긍정의 힘을 깨닫기 시작했다. 온통 아픈 자신에게만 신경이 쏠려 있을 법한 시간, 저자는 타인에게서 삶을 깨끗하게 배우고 담백하게 소화하며 자신의 병을 점차 이겨냈다. 사람을 통해 배우고 사람을 향해 나아갔던 지난 투병의 기록이 이 책에 그대로 담겨 있다. 고층 항암 병동의 갱스터 할머니 병실 커튼 너머로 배운, 굳건하고 의연한 삶의 자세 ‘고층 입원실의 갱스터 할머니’라는 터프한 책의 제목에는, 타인으로부터 배운 씩씩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집약되어 있다. 대학교 1학년, 갑작스러운 복부 출혈로 응급 수술을 받고 고위험 환자들이 입원한 항암 병동에서 깨어나 만나게 된 어느 할머니를 저자는 ‘갱스터 할머니’라고 몰래 기억한다. 항암 병동의 환자 중에서도 가장 증상이 많았던 ‘갱스터 할머니’는 “얼핏 초라해 보이지만 왠지 모를 단단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강인했다. “사람들이 번거로울까 봐 애써 도움을 거절”하고, “주변 사람들이 못되게 굴어도 내 사람이라고 여기”며, “아픔과 고통을 끌어안고도 묵묵히 견뎌”냈다. 어쩌면 투박한 ‘갱스터’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뜨거운 의지로 자신의 삶을 ‘쿨하게’ 버텨내는 자세일 것이다. 어떤 원망도 후회도 없이 그저 자신이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며 스스로의 삶을 지켜나가는 ‘갱스터 할머니’와의 만남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였다. “항암 병동의 한 병실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은 저자는, 이제 세상 사람들이 각각으로 살아가는 모양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조금 더 홀가분하게 살 수 있게 돕고자 다짐한다. 어쩌면 저자가 마주한 ‘고층 입원실의 갱스터 할머니’는, 앞으로 난치병과 함께 살아갈 저자의 쿨하고도 씩씩한 미래를 품은 동시에, 묵묵히 자신의 생을 견디며 주변 사람을 보듬는 삶의 모양 그 자체이기도 한 것이다. "꿈은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된다." 입원실에서 키워온, 사람들의 웃음을 위한 '배우'라는 꿈 타인을 통해 배운 삶으로 다시 타인의 삶을 헤아리는 지점에서, 이 책은 꿋꿋한 투병기인 동시에 오롯한 성장담이다. 크리에이터가 되기 이전부터 품었던 ‘배우’라는 꿈을 ‘청춘블라썸’, ‘햄버거학과 23학번’ 등의 웹드라마 출연으로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 또한 저자가 겪은 난치병과 무관하지 않다. 처음 중학교 연극 동아리에서 ‘변태 연기’를 잘한다는 칭찬으로 처음 품었던 배우라는 꿈은, 홀로 병실 침대에 누워 커튼 너머로 하루에 여섯 시간 넘게 ‘아픔의 대선배들’의 ‘레전드 인생 스토리’를 들으며 다른 방식으로 자라난다. “다 체념한 듯하지만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 대인배스러운 병실 어른들의 이야기에는 인생의 수많은 감정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었다. 삶의 모습을 담아내는 연기라는 예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추억의 위안과 공감의 기쁨을 전달하고자, 저자는 다짐한다. 인생 선배들뿐 아니라, 또래들 또한 배우라는 꿈을 키운 계기였다.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중, 같은 또래의 루푸스 환우의 지친 얼굴을 보며 그들에게 유쾌한 위로를 건네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이후 저자는 아픈 몸을 이겨내며 조금씩 꿈을 향해 나아갔다. 몸이 아파 공연 연습을 소화하지 못하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두려워 손이 떨릴 때면, 우연히 만난 할아버지의 “조진 건 잊으라”는 말을 저자는 기억했다. 이따금 찾아오는 불안감에 A4용지를 꺼내 마음을 모조리 정리해 보기도 하며 저자가 깨달은 것은, 아주 작은 꿈일지라도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소중히 품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받은 사랑의 힘을 기억하고 그 힘을 다시 돌려주는 일, 어쩌면 이것이 바로 저자가 ‘잠도 제대로 안 자면서’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다. 그 길의 끝엔 언제나 사람이 있다. 다홍빛 표지로 직접 그린 터프하고 다정한 사랑 온몸으로 아프고 온몸으로 사랑한, 정답 없는 날들에 부쳐 유튜브 ‘빵먹다살찐떡’ 영상이 누구에게나 거부감없이 밝고 긍정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혹 자신의 영상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지 한참을 고민한 저자의 고심이 있다. “사실 굉장히 예민하고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는, 자신이 아파했던 만큼 다른 누군가가 아파하지 않기를, 자신의 유쾌함이 깨끗하게 전달되기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해 왔다. 나의 아픔에만 집중하지 않고, 나의 아픔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크리에이터이자 배우로서 걸어가는 중이다. 아픈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 시작했던 ‘미술’이라는 새로운 취미는 저자의 마음을 풀어내는 또 다른 창구였다. 흰 캔버스에 마치 마음의 문을 그려 넣는 것처럼 마음을 풀어냈던 저자는, 이 책의 표지 그림 역시 직접 그렸다. 터프한 다홍빛 붓 터치가 마치 뜨거운 생명력인 듯 칠해진 표지를 열면, 밤을 지새우며 한 글자씩 진솔하게 적어낸 저자의 마음들로 그대로 이어진다. 영상 속에 유쾌하게만 묘사했던 가족들을 향한 진심, 자신을 일으켜 세운 친구들과 반려동물을 향한 진심, 함께하는 팬들을 향한 진심 또한 책에 그대로 담겼다. 그들과 함께 키워온 사랑과 긍정의 힘이야말로, 저자가 긴 투병 동안 ‘나도 모르게 나를 이겨낸’ 동력이었을 것이다. 아픔으로 막막해 답이 없었을 날들은 이제, 나만의 답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정답 없는 날들’이 된다. 씩씩한 마음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사람들의 얼굴은 이미 그 이야기 속에 선명하다.
저자 : 양유진 , 출판사 : 21세기북스 , 입수일자 : 2024.04.30 ]]>
양유진 2024-04-30
<![CDATA[구의 증명 :최진영 소설]]> 상상을 가능케 하는 사랑 그런 사랑을 가능케 하는 상상 여자와 남자가 등장한다. 관형사 ‘한’이 아닌 대명사 ‘이’ 사람일 수밖에 없는 관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걸 운명이라 말할 수도 있겠고, 대수롭지 않게 연인이라고 잘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소설에서의 두 주인공 ‘구(남자)’와 ‘담(여자)’은 그 낱말의 범위에서 조금은 이탈해 보인다. 그들은 회문(回文)처럼 영원히 같이 붙어 원의 둘레를 순환할 수밖에 없는 관계. 타인이 만들어낸 우연과 엇갈림 등속을 겪지만 삶의 곡선 위에 놓인 두 개의 점은 궤도가 같기에 그들의 운명 또한 같을 수밖에 없어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 누구는 그런 관계를 지독하다 할지 모르고 또 누구는 완전한 사랑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비극은 이럴 때에 급작스럽게 그들 위에 놓인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거부될 수 없는 삶의 끝. 소설은 그런 비극 위에서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꺼져버린 사랑을 재확인하면서. 길바닥에 죽어 있는 구의 옆에 앉아 말을 건네는 담의 낮은 목소리에는 비통한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텅 빈 고독이 스며 있다. 또 초점을 잃은 시선은 현실이 아닌 비현실의 풍경을 바라보는 듯하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먹는다. 죽은 자의 신체의 일부를 조금씩 먹기 시작한다. 파격인가. 먹는다는 결과보다는 왜 먹을 수밖에 없는가, 라는 원인에 주목한다. 지금 그녀에게 현재는 죽음이다. 그러니 더더욱 과거에 집중할 수밖에. 죽은 자들은 심장이 멈추고 얼마 동안 청각이 살아 있다고 했던가. 그녀가 죽은 남자에게 속삭인다. 사람이란 뭘까, 나는 흉악범인가 혹은 싸이코인가 아니면 마귀, 야만인, 식인종? 나는 누구인가. 그 어떤 범주에도 자신을 완전히 집어넣을 수 없다고 죽은 자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단지, 너를, 당신을 먹을 뿐이다. 소설은 현재를 말하고 있으나 이미 연인의 죽음으로 시간은 정지되었고, 화자인 그녀가 독백하는 모든 것은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한 지난 시간이 지금의 그녀 머릿속의 전부다. 소설은 천천히 그와 그녀의 과거로 돌아간다. 먹으면서 과거 속에 머문다. 그를 먹는 것은 그의 시간을 먹는 것이고 그들의 과거를 통째로 삼키는 일일 것이다. 제의. 죽은 자에게 남아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예의. 그녀는 그를 먹음으로써 제의한다. 비극이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비극 그것은 어떤 본질에 가 닿아 있는 무엇이다. 그럼으로 그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하고 있는 지금의 이 제의를 믿을 수밖에 없다. 고로 완전히 자신의 몸속에 그를 씹어 넘긴다. 그래야만 그는 죽지 않고 그녀 안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사랑이라고 부를 수밖에. 이 지독함 또한 사랑이리라. 누군가의 삶 한가운데 그런 사랑이 놓인다. 삶의 원심력이 그들을 튕겨내지 못한다. 그들은 중심 한가운데 오롯이 있다. 비극적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어쩌면 우리 곁에 있고 보통의 사랑을 하고 보통의 삶을 살아갈법한 구와 담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특별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많이 봐왔고 많이 경험했던 바로 그 사랑에 다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현실에서 생명이 꺼지고 그후의 우리들의 표정을 상상한다. 우리는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상실에 대해. 남겨진다는 것에 대해. * 은행나무 ‘노벨라’가 은행나무 ‘시리즈 N°’으로 새롭게 시작합니다. 2014년 론칭해 2016년까지 총 13권을 출간하고 잠시 멈춰 있던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가 새로운 명명과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다시 출간됩니다. 배명훈 최진영 정세랑 안보윤 황현진 윤이형 문지혁 등 3~4백매 분량의 중편소설 시리즈로 한국문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던 ‘은행나무 노벨라’. 그 의미를 동력 삼아 현재 한국문학 장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젊은 작가들의 장편소설선 ‘시리즈 N°’으로 바통을 건네받아 이어갑니다. 이번 신작 3종(박문영, 장진영, 황모과)을 비롯해 구간 리커버(최진영 윤이형 황현진, 이하 순차적으로 리커버)를 동시에 출간하며 서이제 장희원 한정현 정용준 정지돈 등 각자의 개성과 상상력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문학에서 발견하는 그 위태롭고 무한한 좌표들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도를 완성해갈 시도를 독자 여러분께서도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자 : 최진영 , 출판사 : 은행나무 , 입수일자 : 2024.05.07 ]]>
최진영 2024-05-07
<![CDATA[나의 2평짜리 베란다 목공소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모나고 상처 난 마음도 둥글게 다듬어가는 시간 쉬었다 가고 싶은 당신을 위한 피톤치드 에세이 “도심 속 작은 귀퉁이에서 즐거움의 세계가 열린다!” 25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힐링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쓴 황보름 작가는 이 책을 이렇게 추천했다. 밋밋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멀리 여행을 가고, 쇼핑을 하고, 많은 돈을 쓰곤 한다. 하지만 《나의 2평짜리 베란다 목공소》는 행복해지는 방법이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한 가지, 자투리 시간 한 토막, 작은 용기 한 스푼이면 족하다. 목공용 앞치마를 두르고 거실에서 베란다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한 사람 겨우 들어갈 만한 조그만 공간이 무한한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는 작업실로 거듭난다. 그곳은 때로는 드넓은 태평양 바다에 둥실 떠 있는 해방감으로, 때로는 세상에서 숨어버릴 수 있는 아늑함으로 우리를 이끈다. 망치와 나사못이 아니라도 좋다. 연필을 들거나 뜨개바늘을 잡거나 커피콩을 갈거나 거창하지 않지만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퍼지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고 이 책은 제안한다. “나무를 닮은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기!” 책 《아무튼, 식물》과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재료로 나무를 꼽은 임이랑 작가는 “저자의 글에는 나무를 닮은 정직함과 따뜻함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어느 순간 쳇바퀴 도는 조직의 한 부품이 되었다고 느낀 저자는 더 이상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가 주도하는 인생 2막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컴퓨터 화면만 보던 허리를 일으켜 땀을 뚝뚝 흘리며 온몸을 움직이는 일은 안 쓰던 근육 하나하나를 일깨웠고 마음의 세포에도 생기를 불어넣었다. 생각하는 대신 몰입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처음 알게 되었다. 아무리 작은 소품일지라도 쓰는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는 태도를 배웠다. 작은 틈만 생겨도 결국 틀어지는 나무는 인간관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가구와 인테리어를 보는 눈, 스마트스토어에 작품을 올려 고객과 만나는 요령을 얻은 것은 덤이다.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진정 효과와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무가 가르쳐준 울림 있는 진실, 어쩌면 지나쳤을 우리 삶의 중요한 것들을 꾸밈없이 적었다. 이 책을 펼쳐든 내내 잿빛 일상을 초록으로 물들이는 휴식과 힐링을 얻어가길 바란다.
저자 : 김준호 , 출판사 : 더퀘스트 , 입수일자 : 2024.04.29 ]]>
김준호 2024-04-29
<![CDATA[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생각들을 검열하는 것이 눈대중의 일이라면, 내가 적은 글들을 누군가에게 내보이는 것은 부검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말하는 게 가장 어렵지만 말을 가장 사랑하는 문상훈의 말들 이 책의 저자 문상훈은 어느 순간, “지나가며 안부로 물을 만한 말들도 너무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살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보고 듣다 보니 “말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말은 양날의 검과 같다. 쉽게 전할 수 있어서 편리한 만큼, 쉽게 내뱉어 오해를 낳는다. 모두에게 한 번쯤 말을 오해하거나 말로 오해받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어릴 적부터 문학을 사랑하던 그는 심지어 “어떤 종류의 글도 강박적으로” 피하기에 이른다. 글은 말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다시 글을 마주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데에는 어떤 동기가 있었을까. 그럼에도 그는 글을 너무 사랑했고, 글을 멀리하자 마음에 “어떤 풀도” 자라지 않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것을 계기로 약 2년간 치열하게 글을 붙잡았고, 이 책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이 탄생했다. 저자는 책을 완성함과 동시에 깨닫는다. 자기가 한 말을 가장 오해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었음을. 그리고 이 책의 제목처럼 더는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진정한 ‘나’를 마주하고 나니,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가 생긴 것이다. “벌레 먹거나 무른 것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내 흙이 묻은 거라 씻지도 않고 내놓습니다.” 누군가의 거칠지만 솔직담백한 글은 또 다른 거울 되기도 한다 저자 문상훈에게는 “웃음은 낮에, 유행은 밤에” 배우던 시절이 있었다. 부모님의 잔소리를 피해 가며 습득한 그 시절의 것들이 현재 〈빠더너스〉를 통해 빛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흔히 보는 그 영상 속 문상훈은 언제나 웃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의 웃음 뒤에 있는 또 다른 표정을 들여다보게 한다. 본인의 말을 끊임없이 검열하는 긴장된 표정부터 언제나 소년이고 싶은 푸릇한 표정, 존경하는 것 앞에서 한없이 붉어지는 표정까지. 묘한 것은 책 속에서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보고 있자면, 이상하게 ‘나’ 자신의 표정도 궁금해진다. 책 속에 문상훈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의 표정을 살피는 일일지도 모른다. 슬플 때는, 기쁠 때는, 외로울 때는, 처연할 때는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가 밤새 달이고 달여낸 생각의 문장들이 꼭 우리와 닮아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감상에 그치지 않고, 요목조목 어떻게 닮아있는지 따져보기 위해 자기 자신도 들여다보게 된다. 분명 우리가 본 것은 거울이 아니라 책이고 문상훈의 얼굴인데, 책을 덮고 나면 ‘나’의 얼굴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보고, 보다 진정한 ‘나’가 된다.
저자 : 문상훈 , 출판사 : 위너스북 , 입수일자 : 2024.05.02 ]]>
문상훈 2024-05-02
<![CDATA[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하지만 선택해야 한다, 그 고독을. 그것이 참된 것이라면…” 평사리의 고요한 기도 방에서 황막한 예루살렘 광야까지 세상의 모든 미혹을 뒤로하고 마침내 스스로의 고통과 어둠으로부터 회복하는 길을 만나다 매혹적인 문장과 깊은 울림을 전하는 ‘공지영표’ 산문의 정수! 3년 전 서울을 떠나 하동군 평사리에 정착한 소설가 공지영. 그 무렵 작가로서의 번아웃에 시달리며 더 이상 글을 쓸 수 있을까, 심각한 회의에 빠진다. 고독 속에 스스로를 유폐하고, 그것에서 평화와 행복을 되찾아가던 어느 날, 작가는 문득 순례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목적지는 예루살렘, 예수의 탄생과 성장,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진 곳, 평온한 일상을 살면서 잊고 있던 그곳으로.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는 2022년 가을에 떠난 순례의 여정 속에서 만난 깨달음의 기록으로,『그럼에도 불구하고』이후 3년 만에 발표하는 공지영 작가의 신작 산문이다. 그의 대표 에세이 중 하나인『수도원 기행 1, 2』를 잇는 영성 고백과 삶에 대한 절절한 통찰이 담겨 있다. 각 순례지가 작가에게 던져준 삶의 메시지를 묵상하고, 치열하게 현재와 과거, 하동과 예루살렘을 교차하며 또 한 번의 진한 감동을 전한다. 누구나 한 번쯤 각자의 ‘광야’에 서야 할 때가 있다 홀로 있으라, 스스로를 대면하라, 그리고 선택하라 길을 떠난 작가는 요르단 암만을 시작으로 갈릴래아 호수, 요르단강, 쿰란, 나자렛, 베들레헴, 예루살렘 등을 차례로 순례한다. 이는 지금까지 주로 유럽의 수도원과 성지를 순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으로, 낯선 중동의,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 지역을 방문하게 되는 것이다. 요르단과 이스라엘 국경은 물론, 곳곳에 세워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르는 높다란 장벽과 철조망, 그리고 총을 든 군인들의 적의에 찬 눈빛을 마주한다. 실제로 작가가 방문하고 난 1년 뒤인 2023년 가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한다. 느보산의 모세 기념 성당을 시작으로 예수의 탄생이 예고된 순간부터 그가 부활하는 순간까지의 흔적이 담긴 성소를 직접 방문해 걷는 동안, 작가는 그 과정이 담긴 성경을 묵상하고 또 그것을 자신의 삶에 대입하여 성찰한다. 고독, 옳고 그름, 침묵, 고통, 믿음, 친절, 사랑, 악, 변화, 고통, 성장 등 보편적인 삶의 주제를 천착하기에,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라도 깊숙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함께 순례했던 일행이 떠나고 예루살렘에 홀로 남은 작가는 샤를 드 푸코 성인의 흔적을 찾아 나자렛과 예루살렘의 글라라 수녀원을 방문한다. 화려한 세속 대신 사막의 고독을 택하고, 안정된 수도자의 길이 아닌 가장 가난하고 열악한 상황에서 오직 예수를 닮고자 했던 푸코는, 오랫동안 작가의 영혼을 사로잡은 대상이었다. 그의 혁명 같은 삶을 깊이 만나고 난 뒤, 작가는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평사리에서 예루살렘, 그리고 다시 평사리로 돌아오는 순환의 여정은 작가가 직접 촬영한 수십 편의 사진을 통해 더욱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솔직한 인생 고백, 고통 속에서 길어올린 깊은 깨달음을 특유의 매혹적인 문장에 담아내어 독자들과 나누고 진중함 속에서도 작가만의 위트가 여전히 빛난다. 고통과 상실, 상처로 얼룩진 시간, 자신만의 광야를 밤새 헤맨 이들에게 건네는 가슴속 이야기 마침 순례 무렵 자신의 ‘환갑 파티’를 열어준 후배들에게 그는 말한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성장했다면, 그것은 그저 나이가 주는 선물이 아니라, 피눈물 흘리는 고통을 견디고 넘어온 노력의 과정이 주는 것이라고. 나이가 든다고 그냥 나아지는 것은 없다고. 작가는 자신을 비롯한 자기 세대에 대한 뼈아픈 반성, 지난날 자신이 지녔던 편협함과 미숙함에 대한 반성을 통해 회복과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순례를 통해 그는 마침내 동백나무가 죽은 잎을 떨어뜨리고 새 꽃잎을 피워내듯, 자신의 죽어 있던 시간을 떨구고 다시금 일어선다. 드라마 〈토지〉의 배경이기도 했던 평사리 돌아와, 한평생 자신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위해 글을 썼던 소설가 박경리를 떠올리며 다시 펜을 든다. 작가는 삶에 대한 달콤한 환상을 냉정히 거둬내고, 고요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외로움’은 단순한 고립과 단절이 아닌 낡은 과거와 이별하고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임을, “언제라도 고통이 오면 우리는 이 고통이 내게 원하는 바를 묻고, 반드시 변할 준비를 해야 함”을 말이다. 오늘도 흔들리고 치이고, 실수하고 무너진 이들, 고통과 상실로 얼룩진 자신만의 광야를 밤새 헤맨 이들에게 이 책은 다시 한 번 깊은 위로와 지혜를 전해줄 것이다. 수많은 독자들의 영혼을 울리며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해 온 ‘공지영표’ 산문의 진수를 다시 한번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공지영, , 출판사 : 해냄 , 입수일자 : 2024.04.29 ]]>
공지영, 2024-04-29
<![CDATA[다 하지 못한 말 :임경선 소설]]> “깊은 상처는 오직 내가 깊이 사랑한 사람만이 줄 수 있다.”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로버트 글릭(Robert Gluck)은 사람들이 그에게 자신들에 관한 글을 써달라고 가끔 부탁을 해오면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그럼 먼저, 내 마음을 아프게 해보세요(First, break my heart).” 참 맞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그저 행복한 일이겠지만, 간절하고 절박하게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은 내게 깊은 상처를 준 사람이다. 그리고 그 깊은 상처는 오직 내가 깊이 사랑한 사람만이 줄 수 있다. 『다 하지 못한 말』의 여자 주인공인 ‘나’는 혼자만의 일상을 잘 보살피며 지내오던 성실하고 독립적인 여성 직장인이다. ‘나’는 공연예술가로서 좌절을 마주한 남성 피아니스트인 ‘당신’을 우연히 만나 그에게 운명처럼 빠져들며 단정했던 일상은 조금씩 흐트러져간다. 바보처럼 사랑하기를 선택한 ‘나’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사랑이 가능하기나 한가?”라고 울부짖듯 독자들에게 물으며 사랑의 달뜸, 황홀 그리고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간다. 사랑의 달뜸과 황홀, 고통에 대한 지극한 회고 사랑에 빠지면 왜 하고 싶지만 못 하는 말이 생기고,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말을 의식하기 시작할까? 『다 하지 못한 말』의 여자 주인공 ‘나’는 ‘당신’을 잃을 두려움에 말을 아끼고 어쩔 줄 모르는 고통에 편지인지, 일기인지, 혹은 단순히 혼잣말인지 모를 글을 쓴다. 사랑의 고통을 지나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렇게 사랑하는 상대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되어버린다. 지금 이 상태 그대로의 마음을 남기고 싶었어. 다 하지 못한 말을 하고 싶었어. 정말 좋았던 것, 너무 가슴 쓰라렸던 것, 당신을 속였던 것, 등등. 당신을 본 순간 이제야 찾았다 싶어서, 오래갈 거라고 혹은 영원할 거라고 마음대로 생각해서 순간순간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 담아둘 수도, 버릴 수도 없었던 말들. 이 말들이 갈 곳은 단 한 곳, 오직 한 사람, 당신, 당신. _p.207 그렇게 차마 함께했던 동안에는 하지 못한 말들은 나중이 되어서야 글이 되어 겨우 숨을 내쉰다. 연애 중에는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 그리고 이별은 했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상태에서 속으로 품고 있는 말들. 그 넘치도록 많은 감정과 복잡한 생각들을 안간힘을 써서 글로 쓰는 ‘나’는 마침내 상대를 보내주기 위한 마지막 의식을 치른다. 마치 ‘내 이야기’인 것 같은, 날것 그대로의 일인칭 구어체 소설 소설『다 하지 못한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자 주인공 ‘나’의 일인칭 구어체로 이루어져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시제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기도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이 정직하고 생생하게 ‘이제 와서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스스로의 상처를 천천히 봉합해나간다. 비록 상대인 ‘당신’은 내게 고통을 주고 떠난 사람이지만 ‘나’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기로 하면서도 동시에 상대와의 관계에서 끝까지 공정한 관점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렇다 해도 사랑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조금 더 혹은 덜 사랑한 사람, 혹은 조금 먼저 사랑하기를 그만두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멈추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고로 소설 속 ‘당신’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냥 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 같다. 여전히 잘은 모르지만.” _작가의 말 영화 〈듄〉의 배우, 티모시 샬라메도 사랑의 고통이 가지는 ‘어쩔 수 없음’의 속성을 Vogue Homme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피력한다. “사랑할 때는 그 무엇도 겁내거나 사리지 말고, 나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하죠. 사랑이 고통스러운 건 너무도 당연해요.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아프거나,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슬프면 - 맞아요, 그건 사랑이에요.” 『다 하지 못한 말』 은 지금 이 순간 사랑의 고통을 지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사랑의 고통을 견뎌낸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안겨주는 소설이 될 것이다.
저자 : 임경선 , 출판사 : 토스트 , 입수일자 : 2024.04.22 ]]>
임경선 2024-04-22
<![CDATA[따뜻한 그늘 :김지연 사진산문집]]> 저자 : 김지연 , 출판사 : 눈빛 , 입수일자 : 2024.04.30 ]]> 김지연 2024-04-30 <![CDATA[마지막 증명]]> 기어코 서로를 구해 내고 마는 두 사람의 이야기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당신에게 가닿을 SF 로맨스 로맨스는 어떤 장르와 혼합되어도 매력적이지만, 유독 판타지나 SF와 결합될 때 더 빛을 발한다. 두 인물의 위기가 극적이면서도 환상적으로 그려질 때 로맨스가 주는 감동이 극대화되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증명》은 〈어떤 사람의 연속성〉으로 데뷔 후 활발한 활동을 해 온 작가 이하진의 근미래 배경 SF 로맨스 소설이다. 어느 날, 천체물리학자 백영의 집 마당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운석이 떨어진다. 처리하기 곤란해서 운석을 그냥 내버려두었던 백영은, 며칠 뒤 비정상적인 모양으로 쪼개진 운석을 보고 2년 전에 지구를 떠난 양서아 박사를 떠올린다. 그리고 양서아에게 결코 전해지지 못할 이메일을 쓰기 시작한다. 백영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두 사람은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거리에 놓였지만, 한 시도 서로를 잊은 적이 없기에. 《마지막 증명》은 종종 유약하고 나이브하게 여겨지는 ‘사랑’이라는 가치가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많은 이들이 사랑이 이타적이라 말하지만, 사랑은 때로 당사자를 제외한 이들에게 이기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백영이 오직 양서아를 구하기 위해 시간을 거스르고, 양서아가 백영을 구하기 위해 공간을 뛰어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마지막 증명》에서는 그러한 사랑의 배타성마저도 결국에는 모든 것을 구원하는 열쇠가 되며, 파멸의 시대에 세계를 지탱하는 힘으로 부상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한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강렬한 마음이 기어코 세계를 구하고 마는 이야기다. 사랑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대두되고 있지만, 정작 ‘사랑’이라는 단어가 오용 또는 남용되고 마는 시대에, 《마지막 증명》은 독자들의 마음에 광활한 기적을 선사할 것이다. 전해지지 못한 마음은 결국 어디로 가는 걸까 영영 닿지 못할 우주 너머의 당신께 보내는 편지 《마지막 증명》에 붙일 수 있는 수식어는 많다. 작가 이하진의 첫 번째 경장편이며, SF 로맨스이고, 단편 〈마지막 선물〉을 장편화한 소설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지막 증명》이 작품을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결국 ‘마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작품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백영의 편지와, 딱 두 번 등장하는 양서아의 편지는 《마지막 증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끝내 응답받지 못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서로에게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갈무리하려고 해도 쏟아지고 마는 그리움이 그들을 쓰게 만든다. 특히 백영이 초반부에 썼던 양서아가 끝내 확인하지 못할 편지들에는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한 후회와 자책,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상대에 대한 원망이 섬세하게 드러나 있다. 백영의 편지는 독자에게 질문한다. ‘이처럼 전해지지 못한 마음은 결국 어디로 가는 걸까.’ 작가는 이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도 빛을 보낼게요. 기대하는 마음으로요. 계속해서 보낼 거예요. 제가 과거에도 다녀올 수 있었잖아요? 이 우주엔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니까. 말도 안 되는 우리 이야기가, 엇갈렸을지라도 끝내 맞닿은 것처럼요. _176p 머나먼 공간을 사이에 둔 백영과 양서아의 이야기는, 백영이 말한 것처럼 엇갈린 것이 아니라 어쩌면 평행을 이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둘에게는 어떠한 기약도 없으며, 물리적으로 만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이니까. 그러나 평행한 두 선 중에 하나가 아주 미세하게만 틀어진다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해도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틀어짐을 만들 수 있는 건 역시, ‘마음’일 것이다.
저자 : 이하진 , 출판사 : 안전가옥 , 입수일자 : 2024.04.22 ]]>
이하진 2024-04-22
<![CDATA[만질 수 있는 생각 :그림책 작가 이수지 에세이]]> ■그림의 언어로 열리는, 세계로의 초대 대학 졸업 후, 북 아트를 공부하러 영국으로 간 이수지는 그곳에서 모든 작품의 근간이 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작업한다. 수업 과제로 진행했던 프로젝트에서 그림책 작가로서의 첫발을 내딛는다. 그림책 특유의 물성,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구성, 이미지로 끌어가는 이야기 방식을 실험하며, 구축한다. 시대를 앞선 독특하고도 개성이 강한 작업물은 출판되기 힘들 거라는 담당 교수의 말이 무색하게, 당당하게 이탈리아에서 출간된다. 영국에서의 낯선 경험, 새롭고 재밌는 시도들은 앞으로 있을 작품 활동의 단단한 발판이 되었다. 이수지 그림책의 중심은 ‘어린이’와 ‘놀이’이다. 이 둘이 만나면 무한한 상상과 자유 그리고 즐거움이 넘친다. 특히 글 없는 그림책 작업은 이 무한한 흥을 증폭시킨다. 텍스트에 갇히지 않는, 그림 위주의 그림책으로 모든 연령을 아우르고, 그림책 세계 안에서 모두를 동등하게 만든다. 그림이 글자를 품고 이야기를 확장 시키기 때문이다. “글이 없으면 독자의 이야기가 된다. 독자가 자기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이미 이야기는 독자의 마음속에 있고, 그림책은 그저 그것을 꺼낼 수 있도록 열어주는 열쇠라고 생각했다.” -본문 中 ■온종일 달리고 싶은, 작가의 시공간 이수지가 만난 사람들, 사물과의 인연, 공간과 시간의 상황 등은 그의 작품 속으로 승화된다. 어릴 때 다녔던 화실의 선생님은 『명원 화실』의 진짜 화가로, 미국에서 만난 찰스와의 석판 작업은 『검은 새』, 갤베스톤 해변의 풍경은 『파도야 놀자』, 유기견으로 만나 오랜 시간 함께한 검은 개는 『강이』로,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신나게 한바탕 놀았던 시골집에서의 추억은 『여름이 온다』로 독자들 곁에 남았다. 각 작품의 소재부터 발전 과정, 상세한 작업 노트를 풀어내, 이수지의 그림책을 더 가까이, 깊게 들여다보게끔 한다. 또 엄마가 된 후, 작가 활동에 대한 고충은 여느 워킹맘과 다르지 않아, 인간적이고도 엄마로서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사랑과 가족들의 배려로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해외 초청 강연, 전시, 도서전 참여와 해외 독자들의 만남을 꾸준하고도 활발히 해나간다. 국내는 물론, 해외 출판사와의 다양한 작업의 시작점과 풀이 과정 또한 볼 수 있다. 그림책 원고와 기획서 검토의 기회조차 희박한 영미권에서 출판하기까지, 더미 북을 만들어 보내고 기다렸다 다시 보내는 신인 시절의 간절함이 풋풋하게 다가온다. 해외 작가의 글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협업으로서 앞으로 더 나아간다. 종이의 물성으로 이야기의 의미와 재미를 색다르게 변화시킨 『우리, 다시 언젠가 꼭』은 제안서를 직접 해외 편집자에게 보내 그림 형식, 제작 사양 등을 정한 경우다. 작가 지망생, 현재 활동하고 있는 그림책 작가들에게도 유용한 정보와 참고 사항이 될 것이다. ■ 네 개의 책상 위에 펼쳐지는, 만질 수 있는 생각 긴 시간 끝없이 탐구하고 실험하고 또다시 도전하는, 늘 새로운 게 가득한 이수지의 그림책 작업은 날마다 변하고 성장한다. 지치지 않는 힘의 원천, 바로 즐거움이다. 물론 어린이책, 그림책 작가들이 바라마지 않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았지만 이는 작가에게는 또 다른 시작점일 것이다. 늘 독자와 재미있는 소통으로 가득한 그녀의 작품 세계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책상 위에 또 어떤 이미지들이 이야기를 업고 펼쳐질지, 기대되고 설렌다. “덕업일치의 드문 삶,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재미있다. 내가 책상 위에 뭘 올려놓았는지 짐짓 궁금해하며 작업실에 가는 길이 즐겁다면, 뭐, 이번 생은 이런 식으로 살아 보는 것으로.” -본문 中
저자 : 이수지, , 출판사 : 비룡소 , 입수일자 : 2024.04.22 ]]>
이수지, 2024-04-22
<![CDATA[모 이야기 :숲속 모험]]> 웃는 빛을 찾아 떠나는 아기 고양이 모의 숲속 모험 검은 숲에서 길을 잃지 않고 울창한 수풀과 끈적한 늪을 지나 무시무시한 곰을 피해 모는 과연 웃는 빛을 찾을 수 있을까요? 새로운 시작을 앞둔 모두에게 용기를 주는 그림책. “두려움이란 건 잘 알지 못해서 생기는 거야.” 우리는 흔히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설렘보다는 두려움을 먼저 느끼고는 한다. 낯선 환경과 낯선 이 앞에서 평소와 달리 낯설어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때로는 과도한 두려움이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을 때도 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보통 뚜렷한 형체가 없는 타인의 시선이나 평판, 소문에서 비롯한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새로운 친구를 만날 때, 새로운 세계로 도전을 시작할 때, 섣불리 두려워하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대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저자 : 최연주 , 출판사 : Atnoon Books , 입수일자 : 2024.04.22 ]]>
최연주 2024-04-22
<![CDATA[미세 좌절의 시대 :장강명 산문]]> 사회 정치 문화 전반에 걸친 현대사회의 이슈를 집대성한 필독서 이 산문집은 총 네 개의 부와 한 편의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혼미한 시대’는 주로 사회 분야의 이슈를 다룬다. 영국 정부가 신설하여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외로움 담당 장관직’의 의의(「‘외로움 담당 장관’이 된다면」),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되었던 시기의 배달 노동 문제(「비 오는 날 배달 음식」), 자기 계발서 구매 열풍과 자존감 만들기의 이면(「자존감, 통제력, 그리고 자기 서사」),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복제되고 휘발되는 밈(meme)의 부작용(「감자칩과 인터넷 밈」), 인공지능 시대에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왜 과학을 가르쳐야 하는가」), MZ 세대를 향한 사회적 시선에 숨겨진 어둠(「MZ 세대는 분석을 기다리는가」) 등 누구나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지만 명쾌한 정답을 제시하기는 어려운 주제를 예리하게 분석함으로써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2부 ‘어떤 나라를 꿈꾸는가’는 정치 영역, 그중에서도 한국사회의 정치 풍경을 이모저모 뜯어보면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게 한다. 유구하게 이어져온 지역 간, 세대 간 충돌 문제(「지역갈등과 세대갈등」), 한국사회의 주류가 된 1970년대생에 대한 분석(「X 세대의 빚」), 헤게모니를 사수하기 위해 투쟁하는 진보와 보수 두 진영의 민낯(「대한민국 주류 교체와 두 파산」), 정치 팬덤에 대한 성찰(「팬덤이라는 세계관」), 남북한 대립 문제(「한반도에서 산다는 것」),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위해 개선해야 할 선거 제도(「거대 담론이 없는 선거」) 등을 논한다. 3부 ‘우리는 삶을 통째로 긍정해야 할까’는 좀더 우리네 삶의 경험과 일상과 밀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활동하게 된 작가의 과거 이야기(「내 인생 최고의 실패」), 예민함이라는 성향이 인생관에 미치는 영향(「행복을 정확하게 추구할 권리」), 괴로운 잡념에서 벗어나기 위한 명상법(「마음챙김, 위장 챙김」), 나이차에 따라 위계가 생기는 한국어의 특성에 대한 비판(「한국어에 불만 있다」), 글쓰기와 말하기를 통해 자기주장을 제대로 펼치는 방법(「공인이 되는 훈련」) 등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4부 ‘삶이 얄팍해지지 않으려면’은 고전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양질의 책과 영화 등 다양한 문화 미디어에 대한 작가의 풍부한 해석을 통해 감성을 풍요롭게 하고 깊이 있는 안목을 길러나가게 해준다. 우리 시대의 필독서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대한 재해석(「다시 읽는 ‘난쏘공’」), 문화계를 지원하는 국가의 공공제도와 예술행정에 대한 고찰(「누룩미디어와 국립한국문학관」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라는 말」), 지혜롭고 현명하게 나이드는 삶을 돕는 독서(「흥미로운 중년이 되기 위하여」), AI 시대에 소설쓰기라는 일의 어려움(「AI 시대 소설의 미래, 우울한 버전으로」) 등이 담겨 있다. 관성을 깨뜨리는 건강한 의심, 팩트를 직시하는 시선으로 미래를 모색하는 성실한 탐구 장강명은 에필로그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 우리는 왜 고통밖에 없는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를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을 통해 이야기한다. 신에게 의지하는 것 외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리는 것은 요원하지만, 끊임없이 그 이유를 찾으려는 노력에서 얻는 긴장이 일종의 삶의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러한 결론은 삶에 분명한 해답이 있다는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에 대항해 늘 건강한 의심을 견지해온 작가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언제나 작품세계를 경신하며 부지런한 글쓰기를 펼쳐온 작가의 성실한 포부로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보다 예측 가능한 세상에서 희망찬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고 썼다. 『미세 좌절의 시대』는 그러한 “희망찬 이야기”를 꿈꾸는 작가의 청사진이다. 변화와 변혁을 바라는 마음을 품게 되는 새봄, 바로 지금 『미세 좌절의 시대』를 펼쳐들 때이다. “쉽게 들뜨거나 비관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다. (……) 거기에 차분한 희망이 있다.” _226쪽에서
저자 : 장강명, , 출판사 : 문학동네 , 입수일자 : 2024.04.29 ]]>
장강명, 2024-04-29
<![CDATA[선명한 사랑 :고수리 산문집]]> “그러니까 이 책은 세계의 협소함을 사랑의 광활함으로 끌어안으려는 고수리식 러브 레터다.” _안희연 (시인) 삶을 보듬는 따뜻한 시선으로 독자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아온 고수리 작가. 1년여 만에 펴내는 산문집 『선명한 사랑』에는 매일 마주하는 오래된 동네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웃들, 희미해져가는 추억을 폭 껴안고 온기를 나눠주는 엄마와 예쁜 돌멩이를 보면 엄마를 떠올리는 아이들, 그리고 선뜻 우정과 마음을 나눠주는 이들이 가득하다. 고수리의 이야기를 마주할 때면, 마음속에 잊고 살았던 애틋하고 그리운 추억들을 알알이 떠올리게 된다.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면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의 날들을 돌아보자고, 고수리는 손을 내민다. 우리는 우리에게 대가 없는 사랑을 건네준 이들의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다정한 응원을 넌지시 건넨다. 이런 마음을 마주하고 나면 지금 흘러가는 이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끝내 잘 살아보고 싶어진다. 무엇보다 『선명한 사랑』을 통해 우리는 누군가에게 베푸는 마음이란 가까스로 해내려는 마음이 먼저이고, 그 마음을 함께 키워갈 때 다정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배운다. 마주하는 타인에게 마음을 쓰고 돌보고 애쓰는 마음은, 다시 돌아와 자신을 일으키고 다정하게 안아주는 힘이 된다는 안온한 희망을 고수리는 이야기한다. 이번 산문집은 2021년 3월부터 동아일보에 연재 중인 ‘관계의 재발견’ 일부 원고를 다시 쓰고 그간 발표하지 않은 원고들까지 더해 한 권으로 묶었다. 아름다운 순간에는 어째서 울고 싶어지는 걸까 고수리의 글 속에는 쉽게 잊히고 사라져가는 것들이 붙들려 있다. 하루아침에 애정을 갖고 있던 공간이 사라지고 새 가게가 들어서도, 그곳에서 매일 열심히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글 속에 정답게 담긴다. 코로나 시절에 만날 수 없어도 현관 손잡이에 먹을 것을 걸어두며 정을 나누는 이웃, 만원 지하철 안에서 아이들을 배려해 서 있을 공간을 내어주던 승객들, 타인을 위해 약간의 용기를 담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안내 방송을 하는 기관사, 동네고양이를 위해 밥자리를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미용실 아주머니, 좋아하는 책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글을 쓰는 동네책방 사람들. “마주치는 타인들에게 되도록 다정하고 싶다고. 미처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애써 읽어주고 싶다고.”(51쪽) 고수리는 타인을 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쌍둥이 유아차를 몰아본 경험으로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조심스레 공감을 건넨다. 비좁고 가파르고 빠른 세상에서, 커다란 몸집으로 느리게 나아가는 사람이 되었을 때 간단한 이동조차 대단한 각오가 필요했던 그 경험을 잊지 않고 겹쳐 본다. 누군가의 뒤꿈치에서 잘 살아보려는 의지를 읽는 사람, 마스크로 가려진 사람의 표정이 궁금한 사람, 스마트폰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않는 사람, 모쪼록 힘이 나는 인사를 먼저 건네는 건 여유가 아니라 용기라고, 내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 타인을 향해 마음을 기꺼이 기울인다. 잘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의 사랑, 엄마의 특기는 한결같이 사랑 오래전 큰 맘 먹고 어렵게 장만한 등나무 가구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낡은 물건에 추억이 선해 헤어지지 못하고 껴안고 사는 사람, 엄마가 너무 보고 싶고 엄마 냄새 남겨놓고 싶어 헌 이불을 꼬매고 또 꼬매는 사람, 비가 오면 맘껏 비를 맞아도 된다고 알려준 사람. 혼자서 자기 자신과 잘 지내며 선명하고 다정한 세계를 지켜가는 사람, 집에서 커튼을 닫고 믹스커피와 크래커를 마시고 먹으며 영화를 보면서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를 구분 없이 사이좋은 단짝 친구처럼 나누어준 사람, 알려주고 싶은 세상을 영화로 보여주며 그럼에도 사랑은, 인생은 이상하고도 아름답다는 걸 믿게 해준 사람. 아무리 힘들어도 마르지 않는 사랑을 지닌 건 이런 엄마 덕분이다. 미련스럽도록 아까운 애정과 너무 넘쳐서 못 버리는 다정을 엄마에게서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가만 돌아보면 엄마뿐이 아니다. 집에 있는 이불이란 이불을 다 꺼내어 폭신한 밤을 만들어주던 할머니, 아낌없이 손수 만든 음식들을 퍼주며 “너는 영영 예뻐라” 덕담을 건네는 순자이모, 남은 생을 미워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아버님, 무심코 흘린 말까지 기억해두었다가 엄마는 이걸 좋아하지? 되물어주며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쏟아주는 아이들까지. “하고픈 말이 많을수록 말문이 막혀버리는 마음을, 주고픈 마음이 넘칠수록 어찌할 줄 모르는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아서. 사랑한다는 말로도 다 설명하지 못하는 이 마음을 전해주고 싶을 때마다 나는 두 팔 벌려 안아줄 것이다. 아이를 안을 때, 그리고 엄마를 안을 때. 나는 더 잘 살고 싶어진다.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보고 싶어진다.”(113쪽) 경험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숨을 곳 없이 그대로 세상에 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용감한 일이다. 그럼에도 묵묵하게 써온 글들이 고수리를 앞으로 힘껏 밀어준다.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해해보고 싶고, 사랑해보고 싶게끔. “이토록 대책 없는 다정이라니. 세상을 이렇게 선하게만 살아도 되는 걸까 의심하다가도 다시 한번 믿어보고 싶어진다. 이 사랑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안희연 시인의 추천사처럼, 독자들도 『선명한 사랑』을 믿어주길 바란다. 함께 멀리 나아가자고 기꺼이 손을 내밀고 폭닥 안아주는 삶을. “글을 쓸 때는 ‘사랑’이란 단어도 진부하고 ‘따뜻하다’는 표현도 평범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다. 그러나 변함없다. 평생 글을 쓸 수 있는 한, 조금이나마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내가 받았던 사랑을 담아.” _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 : 고수리 , 출판사 : 유유히 , 입수일자 : 2024.04.22 ]]>
고수리 2024-04-22
<![CDATA[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천년왕국 통일신라의 휘황찬란한 수도 금성, 세상 어디에도 없는 황금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미스터리 대수사극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큰 전쟁이 끝나고 세 나라가 하나가 되어 표면적으로는 평화를 맞이했지만 내부에는 붕괴의 조짐이 도사리고 있던 통일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 번 본 것은 결코 잊지 않는 두뇌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간파하는 비상한 추리력을 가진 설미은은, 여성으로 태어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당나라 유학이 내정될 만큼 명석했던 오빠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삶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가족을 휩쓴 수많은 죽음 때문에 셋째였지만 맏이가 된 큰오빠 설호은이 가문을 되살리기 위해 비범한 능력을 지닌 미은을 이용하기로 한 것. 호은의 책략에 의해 미은은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죽은 오빠 ‘자은’의 이름으로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다. 그렇게 성인이 될 때까지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기며 공부를 끝마친 설자은은 다시 자신의 고향, 신라의 수도 금성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이에게는 비범한 사건이 찾아오는 법일까? 자은은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기이한 사건들을 마주치게 된다. 자은은 당나라의 등주에서 신라의 당은포로 향하는 배 위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을 만나고, 금성의 대저택에서는 연유를 알 수 없는 업화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이른 전쟁 영웅에 얽힌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며, 신라 육부 여인들의 길쌈 대회에서 일어난 사건의 범인을 추적한다. 이윽고 자은의 명석함은 신라의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 왕이 주최한 연회에 초대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연회가 한창 무르익어갈 때쯤 월지에서 엎드린 채 죽어 있는 시신이 떠오른다. 사건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기 전까지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돌아갈 수 없다고 엄포를 놓는 왕, 왕의 눈에 들 수 있도록 자은에게 재주를 드러내기를 종용하는 호은, 그저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자은. 과연 자은은 그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나는 피하지 않는다.” 왕이 답했다. 자은은 돌연 왕이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저리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지? 뻐근할 법도 한데 처음의 자세 그대로였다. “그대들도 이 일의 수면 아래를 볼 때까지 돌아가지 못한다. 마침 재주가 있다 하는 이들을 불러모았으니 그 재주를 써 명명백백한 바닥을 드러내라.” 수면 아래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밤의 월지, 검은 물을 손으로 퍼내라는 명처럼 들렸다. _「월지에 엎드린 죽음」, 255쪽 정세랑이 탄생시킨 또하나의 독보적인 캐릭터, 설자은 “네가 쓰이지 않으면 신라가 잃는 것이라고 했지. 자, 내가 네게 쓰일 기회를 주겠다. 너는 이제 어쩔 것이냐?” 설자은은 『시선으로부터,』의 심시선, 『보건교사 안은영』의 안은영에 이어 정세랑이 탄생시킨 또하나의 독보적인 캐릭터라고 할 만하다. 7세기에 탐정이라는 말은 없었지만 신라 탐정 설자은이라고도 말해볼 수 있을 설자은이 지닌 진짜 능력은, 일어난 일의 구조를 간파하는 뛰어난 추리력이 아니라 사람의 안쪽을 깊이 헤아리는 능력일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른 탐정들과 설자은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그 따뜻한 마음에 있다. 설자은 외에도 이 이야기에는 매력적인 인물들로 가득하다. 언제나 생긍생글 웃는 얼굴로 능청을 떨지만 부탁한 건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손재주를 지닌 망국 백제 출신 장인 목인곤, 뛰어난 머리를 지녔지만 어딘지 한군데가 고장난 듯한 윤리관을 지닌 설호은, 산학에 능하며 반듯한 균형 감각을 가진 설도은, 누구보다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마음을 지닌 산아, 그리고 보는 이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왕까지. 이처럼 개성 강한 인물들이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우러져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설자은 시리즈’를 읽는 또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자은은 열흘 안에 네 여자 중 누가 간절히 금전의 모가 되고 싶어하는지, 그중에 또 누가 어떻게 베틀을 부술 수 있었을지 밝혀내야 했다. 길쌈 대회가 끝나면 여자들은 원래대로 집안으로 숨겨질 테고, 일어난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기 십상일 터였다. 다음 여름이 될 때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곪은 채로 둘 수는 없었다. 염을 품고는 좋아하는 일도 좋아할 수 없고, 아끼는 이도 아낄 수 없다. 처음엔 도은을 위해서 시작했지만, 자은의 염려는 어느새 육부 여자들 전체에게로 번지고 있었다. _「보름의 노래」, 205~206쪽 대학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한 정세랑은 오래전부터 본격적으로 과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자 하는 소망을 비춰왔다. 작가는 통일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을 구상하고 경주로 첫 조사 여행을 떠난 것이 2016년이라 밝혔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의 첫 에피소드이자 ‘설자은 시리즈’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갑시다, 금성으로」가 미스터리 소설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에 게재된 것이 2018년이니,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가 완성되기까지 최소 7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금성의 흔적을 찾아 경주로 수차례의 답사를 다녀오고, 수년간의 자료 조사를 거친 뒤에야 시리즈의 첫 권을 내놓을 수 있었다. 여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먼 과거를 살아간 사람들이 우리 앞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이게 된 것이다. 정세랑은 ‘작가의 말’에 과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을 쓰고자 했을 때 시기를 통일신라시대로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며, “풍요 속에 숨어 있는 붕괴의 씨앗”을 품은, “한껏 융성을 향해서 가다가 어느 순간 무너지기 시작”(‘작가의 말’)한 시대를 거울삼아보고 싶었다고 썼다. 그 말대로 평화로우면서도 혼란이 잠재되었던 시기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펼쳐지기에 안성맞춤인 무대일 것이다. 정세랑의 마법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추리소설에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적 쾌감을 주는 트릭들도 물론 등장하지만 정세랑은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작품의 배경은 680년대 후반, 1300년이나 과거의 이야기임에도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현재의 우리를 비춰보며 그 시대의 사건들을 지켜보는 일은 즐거운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설자은 시리즈’는 최소 세 권으로 기획된 시리즈로 2권 『설자은, 불꽃을 쫓다』(가제), 3권 『설자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가제)가 이어 출간될 예정이다. 작가는 열 권 이상의 시리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자 희망을 밝혔다. 앞으로 오래도록 이어질 새로운 시리즈의 탄생을 함께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이 책을 집어든 분들이 한순간만이라도 시간 여행의 감각을 느끼신다면 좋겠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 직접 간 듯한 낯선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다. 모두가 부를 줄 알았으나 이제는 한 마디도 남지 않은 노래를 함께 흥얼거릴 수 있다면, 지금 우리의 노래가 천 년 후에도 잊히지 않는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_「이야기가 발생한 틈새들─‘설자은 시리즈’가 탄생하기까지」, 『정세랑 작가 노트』에서 인물 소개 설자은 “이름을 얻은 걸까, 빼앗긴 걸까.” 원래는 열한 남매 중 여섯째 설미은이었다. 한 살 많은 다섯째 설자은이 당나라 유학을 앞두고 급환으로 사망하면서, 셋째 설호은의 책략으로 설자은이 되었다. 얼굴이 닮았고 비슷하게 머리가 좋다는 이유였으며 길게 고민할 틈은 없었다. 집안에 갇혀 살기 싫어 설자은이 되기로 택했으나, 이어진 날들이 순탄치 않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 듯하다. 유학을 그리 길게 갈 계획도 아니었는데, 나당 전쟁으로 두 나라 사이에 사신단이 오가지 않은 동안 그만 고립되고 말았다. 가지고 간 걸 다 팔고 학사의 스승과 동료들이 주는 일감을 얻어 겨우 살아남았다. 고독과 허기에 지친 채, 책 상자들을 짊어지고 신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엉겨붙은 식객이 백제인 목인곤. 금성에서 진정한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 목표이건만 거듭 불미스러운 일들과 맞닥뜨린다. 목인곤 “나를 더 쓰고 부리시오. 이 집에서 먹고 쓰는 것을 갚을 수 있게.” 탑을 짓는 기술이 있다고 주장하나 아직 확인할 길이 없는 백제 출신 장인. 큰 바다를 건너는 배 위에서 설자은을 만났다. 설자은보다 대여섯 살 많지만 대충 친우가 되기로 했다. 만듦새가 뛰어난 물건을 보면 일단 백제의 것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백제는 사라졌지만 백제 출신 장인에 대한 선호는 여전히 남아 있어, 설자은도 급하면 목인곤을 그런 식으로 내세운다. 눈이 정확하고 손이 빨라 만들거나 고치지 못하는 것이 없다. 다른 점은 다 자신이 나은데, 사람 사이의 일을 간파하는 것은 설자은이 낫다고 인정한다. 설자은의 성품을 재미있어하기 때문에 더 대단한 가문의 식객이 될 수 있지만 머무는 중이다. 설호은 “우리가 진짜 칼을 받았을 때 너는 나무칼을 쥔 채, 네가 쓰이지 않으면 신라가 잃는 것이라고 했지. 자, 내가 네게 쓰일 기회를 주겠다. 너는 이제 어쩔 것이냐.” 셋째로 태어났으나 위의 두 형이 전사하는 바람에 첫째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호은이 그럭저럭 영민하긴 하나 어딘가 머릿속이 비틀린 인물이라는 평을 듣는다는 것. 이미 치른 값이 아깝다는 이유로 미은을 자은으로 둔갑시킨 것도 호은의 별난 선택이었다. 누이인 자은과 도은마저 호은의 언행은 매번 상당히 경계하며 받아들인다. 위태로운 정국에 어떻게든 망하지 않고 계속해나가기 위해 자은을 활용하려는 욕심이 있다. 두 번의 파혼에 대한 소문이 돌아 서라벌 여자들의 적이 되었다. 인곤이 자은에게 붙어 있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설도은 “매일 똑같이 살면 한 계절을 돌아봐도,한 해를 돌아봐도 하얗게 기억이 나지 않아. 어쨌든 올해는 기억날 일이 가득이지.” 자은의 사정을 자세히 아는 바로 아래 여동생. 자은의 귀환을 반긴다. 산학에 밝아 집안의 큰 살림을 맡아 꾸려나가고 있다. 도은 모르게 들고 나는 물건은 있을 수 없다. 자은이 맡은 일에 대해 의논할 때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곧바로 핵심을 파악하는 산뜻한 상대다. 제멋대로인 호은에게 휘말리거나 이용당할까, 자은이 늘 걱정한다. 도은 쪽은 자은이 어렵게 얻은 자유로움을 부러워한다. 산아 “걱정하시는 것만큼 저는 약하지 않습니다.” 죽은 자은과 연인이었던 진골 여성. 그 내막을 몰랐던 자은은 산아가 주었던 증표인 작은 불상을 그만 어려운 시절 팔아먹고 말았다. 죽은 자은과의 좋은 기억과 애틋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자은의 명민함을 높이 평가해, 비밀스럽게 다뤄야 할 일이 생기자 해결을 부탁해온다. 자은이 장안에 있을 때 상대등의 아들 진오룡과 혼인했다. 자은은 늘 산아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복잡한 상황상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 왕 “내가 베라는 것을 베어라. 또 네가 베어야 할 것을 베어라. 보름마다 이곳으로 와 무엇을 베었는지 고하라.” 신문왕. 그러나 이 이야기 속의 묘사는 허구다. 즉위하자마자 반란을 진압하고 나라의 기틀을 새로 잡았다고 할 만한 여러 변화를 주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의 뒤를 이은 강력함과 단호함으로, 경탄만큼 두려움의 대상이지 않았을까? 자은은 처음 왕을 보았을 때부터 이질감과 공포를 느꼈으나, 뜻한 바와 달리 왕에게 독특한 방식으로 쓰이게 된다. 사건 소개 「갑시다, 금성으로」 “차갑게 식은 장신구 상인이 발견된 것은 해가 떠오르며 안개가 걷힌 직후였다.” 설자은이 만나는 첫번째 사건. 어린 시절 죽은 오빠를 대신해 남장을 하고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자은은 오랜 공부를 마치고 사신단을 따라 신라로 돌아오는 배에 오른다. 큰물을 건너는 일에 위험이 따르던 시기, 나라와 나라를 오가는 배에는 각기 다른 사정을 지닌 사람들이 탑승해 있다. 그런데 항해가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어느 아침, 한 남자가 목이 졸린 채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와 동승한 아내와 딸은 배 안에서 자취를 감춘 상황. 의문스러운 죽음의 비밀을 밝혀내려 하는 설자은에게, 목인곤이라는 생글생글 웃는 낯의 백제 출신 남자가 자꾸 끼어든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조사를 해나가는데, 과연 남자의 죽음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손바닥의 붉은 글씨」 “업화業火라 덮어놓고 지나가는 죽음을 제대로 들춰본다면, 정말 다 업화일까?” 목인곤을 식객으로 들여 함께 금성으로 돌아온 설자은. 자은의 앞에 죽은 오빠와 모종의 애정 관계가 있었던 듯한 지체 높고 아름다운 여성 산아가 나타난다. 산아는 어린 시절 총명했던 자은의 지략을 빌려 아버지에게 닥친 의문스러운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어느 날 손바닥에 떠오른 붉은 글씨와 함께 의식을 잃은 채 깨어나지 않고 있는 산아의 아버지. 사람들은 그가 지은 죄에 대한 업화로 쓰러진 것이라 수군거리는데, 과연 진실은? 자은은 산아를 돕기 위해 금성의 호화 저택이 모인 곳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대저택, 사혈택으로 향한다. 「보름의 노래」 “베틀이 엉망으로 부서져 있었어. 내 차례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이를 어째!” 매년 여름이면 금성에서 펼쳐지는 성대한 베 짜기 시합인 길쌈 대회. 두 편으로 나뉜 서라벌의 여성들은 이때만큼은 열의를 품고 상대보다 더 곱고 긴 베를 짜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그러던 중 자은의 동생 도은이 베틀의 북을 잡았을 때 누군가에 의해 베틀이 부서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자은은 동생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범인을 찾아나선다. 대회에서 우승해 궁궐로 들어가고 싶은 이들은 모두 넷, 그들 중에 범인이 있다! 「월지에 엎드린 죽음」 “그대들도 이 일의 수면 아래를 볼 때까지 돌아가지 못한다. 마침 재주가 있다 하는 이들을 불러모았으니 그 재주를 써 명명백백한 바닥을 드러내라.” 신라의 왕이 월지에서 연 연회에 초대를 받은 설자은.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연회가 아니라 왕이 자신의 곁에 둘 인재를 발굴하기 위한 평가의 장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자은에게 새로운 신분을 주고 당나라로 떠나게 한 장본인인 설호은은 가문을 위해 ‘지나치게 눈길을 끌지 말되 재치는 두드러지게 뽐내라’고 주문하지만, 자은은 왕의 눈에 띄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런데 연회가 진행되던 도중, 왕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흰 매를 부리던 매잡이의 시체가 연못에서 떠오른다. 그리고 왕은 매잡이의 죽음의 전말이 밝혀지기 전까지 연회의 밤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한다. 자은은 과연 ‘지나치게 눈길을 끌지 않고’ 사건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까?
저자 : 정세랑, , 출판사 : 문학동네 , 입수일자 : 2024.04.22 ]]>
정세랑, 2024-04-22
<![CDATA[열하일기 첫걸음 :조선 최고의 고전을 만나는 법]]> 우리 고전 최고의 모험 서사 열하일기 입문자를 위한 친절한 고전 읽기 지금, 여기, 열하일기 읽는 법 - 조선 최고의 고전 열하일기 안내서 _ 『열하일기』는 조선 후기의 한 지성인이 세계의 중심 중국을 여행하면서 깨달은 성찰과 반성, 새 세계에 대한 열망과 천하대세의 비전을 담은 글이다. 또한, 『열하일기』는 단순한 문학서가 아니라 역사와 지리, 풍속은 물론 문화와 경제, 문학과 예술, 건축과 의학, 종교에 이르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복합장르의 성격을 가진 책이다. _ 연암 박지원은 열하 체험 여행기를 쓰면서 자신의 공력을 한껏 쏟아, 모든 장르를 포괄하고 모든 분야를 담아내고 모든 사상을 아우름으로써 이전엔 전혀 없던 새로운 형식의 여행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열하일기』를 끝으로 연암의 새로운 실험 정신은 끝났고 우리나라의 문학은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_ 『열하일기』가 세계 최고의 기행문이라는 의견이 있고, 또 우리가 자랑할 만한 최고의 문학서라는 점에 많은 인문학자가 공감한다. 하지만 어떤 점이 우리가 자랑할 만한 문학적 성취인지에 대한 증거는 지금껏 잘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뛰어난 가치에 비해 『열하일기』는 여전히 고전의 학문 속에 갇혀 있으며, 지금 시대와 활발히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독자가 『열하일기』를 어떠한 시각에서 읽고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은 읽기일까? 『열하일기』를 읽는 법 (1) 『열하일기』는 기존의 중국이라는 공간이 아닌, 새로운 장소 체험이다. 우선 연암 박지원이 여행길에서 만난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감수성으로 대했는지 주목하자. 열하일기는 기본적으로 여행기다. 여행은 새로운 장소 체험이다.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배경이 아니며,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과 문화 관습이 담긴 실존의 장소다. 연암 당대의 중국은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잠시 그 나라를 차지한 청나라 오랑캐의 소굴이었다. ‘무찌르자 오랑캐’라는 말로 대표되는 조선 사대부의 북벌(北伐) 이데올로기는 중국 사행 공간에서의 진정한 장소 체험을 가로막고 이미 주입된 고정관념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표준화된 장소 체험을 하게끔 했다. 그러나 연암은 중국이라는 공간을 거대한 문명 체험의 장소로 바라보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새로운 체험의 공간으로 생각했다. 이미 압록강을 건널 때 진리는 물과 강기슭의 경계에 있다는 진리론을 설파한 연암은 경계인의 시선으로 중국의 땅을 밟는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중심과 보편의 자리에서 벗어나 주변과 개별의 자리에 서는 것이다. (2) 작은 것을 다르게 보는 연암의 시선을 따라가자. ‘작은 것’을 다른 눈으로 보는 연암의 시선을 따라가며 『열하일기』 속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져보자. 연암은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것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찾아낸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버리는 ‘기와 조각’과 냄새나는 ‘똥거름’이 문명의 진수임을 발견했다. 퇴락한 절에 들러 무심코 오미자 몇 알을 먹으려다 주먹다짐까지 갈 뻔한 상황에서는 “천하의 지극히 미미하고 가벼운 물건이라고 해서 하찮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라는 교훈을 얻는다. 중국 정원 바닥에 냇가의 돌을 깔아 진창을 막은 것을 보고는 “그들에게는 버리는 물건이 없음을 알겠다”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황교문답서」에서는 “한 조각 돌멩이로도 천하의 대세를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작은 것, 평범한 것, 쓸모없는 것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소중한 의미를 발견하는 연암의 시선은 『열하일기』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 따라서 『열하일기』는 예사롭게 말하거나, 그저 지나가는 듯 말하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는 장면도 더욱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열하일기』의 풍부한 형상성과 치밀한 묘사는 작은 것을 보이게 하는 연암의 눈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하찮고 작아 보여서 그냥 넘겨 버리는 대목들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하인과 역관들의 행동과 삶, 의식주 생활, 가다가 본 한족과 만주족의 풍습들, 중국에서 보고 들은 다양한 고사들을 하나하나 잘 읽어 내면 풍부한 생각거리를 찾게 될 것이다. (3) 『열하일기』를 박진감 넘치는 모험 서사로 읽어보자. 열하일기는 대체로 단순한 보고문이나 견문록 형식으로 된 다른 연행록과는 달리 모험 여정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열하일기는 여행기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모험 서사의 관점에서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열하라는 지역은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가는 역사적 공간이므로 모험의 의미가 더욱 드러난다. 북경에 도착한 연암 일행이 허둥지둥 열하로 떠나는 장면은 미지의 세계로 출발하는 모험에 해당한다.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너고 판첸라마를 만나는 소동은 특별한 세상에서 경험하는 시련의 과정이다. 하인과 중국인 친구들은 각종 시험에서 만나는 조력자가 되고,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북경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귀환’이다. 『열하일기』를 ‘모험 서사’로 바라보는 까닭은 오늘날 독자들과 더욱 가깝게 만나게 하는 통로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연암이 『열하일기』를 쓸 때 무의식적으로 모험 여정으로 구상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4) 『열하일기』는 우언문학(寓言文學)이다. 비유와 상징을 찾아보자. 연암은 자신이 몸담은 세계가 심각히 병들었다고 느꼈고, 그것을 꼭 바꾸고 싶었으나 자신에게 닥칠 피해를 염려해야 하는 양반 사대부였다. 『열하일기』에 우언(寓言)이 적극적으로 등장한 까닭이다. 비단 「호질」뿐 아니라 『열하일기』 전체가 우언으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암은 진실을 말하고 싶어서 일부러 허구의 언어를 사용하거나 빙 돌려서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심각할수록 직접 있는 그대로 말하기 힘든 것이다. 또 사실의 언어를 쓰더라도 그 안에 감추어진 의도가 있기도 하다. 『열하일기』에 기록된 수많은 사연과 경험들은 하나의 비유적 장치가 된다. 따라서 사실의 기록을 넘어선 상징과 우언의 의미를 찾으려 시도할 필요가 있다. 우언문학으로 접근하는 것은 드러난 사실 뒤에 숨은 연암의 의도 찾기가 될 것이다. 이 책의 구성 _ 이 책은 『열하일기』의 편년체 일기 순서를 따라가되, 유명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그 속에 담긴 연암의 생각과 당대 사상, 문화를 깊이 있게 다루었다. _ 책 이야기와 별도로 『열하일기』를 읽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을 박스글로 정리하였다. [열하일기 주요 등장인물 /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금불상 이야기 / 열하일기의 각권 구성] 1 연암의 삶과 열하일기의 창작 배경 : 본격적인 열하일기 읽기에 앞서, 연암 박지원의 생애와 사상을 살펴보고, 조선 시대 사행단의 규모 및 구성에 대해 정리했다. 2 그대 진리를 아는가? : 압록강을 건넌 이야기인 「도강록」을 다루었다. 열하일기는 첫 문장의 연호 표기부터 깊은 전략이 담겨 있다. 열하일기는 왜 출발지인 한양이 아닌 압록강부터 시작하는가? 시간, 공간, 인간에 대한 연암의 경계인의 마음가짐을 살펴보았다. 3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 2장에 이어 「도강록」을 다루었다. 이 장에서 연암의 유명한 ‘호곡장론’을 다룬다. 또한 열하 여정의 주요 등장인물, 그리고 이용후생의 발견 등을 다루었다. 4. 전쟁의 땅에서 맺은 만남과 우정의 서사 : 심양에 들러 중국의 번화한 도시를 자세히 살폈다. 심양은 병자호란 이후 우리 민족에게는 비극의 땅이다. 동아시아에서 필담(筆談)의 의미, 여행길에서 겪은 고생과 새로운 이방 사람들과 맺은 우정의 서사를 다루었다. 5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일신수필」을 다루었다. 열하일기에서 명문장으로 꼽히는 ‘일신수필서’를 자세히 소개한다. 또한 진정한 장관은 큰 탑도 아니고, 넓은 요동벌판도 아니며, 진짜 장관은 깨진 기와조각이요 쌓아놓은 똥거름이라는 연암의 ‘장관론’을 이야기했다. 6 인간의 의리와 문명을 비웃다 : 「관내정사」를 다루었다. 유명한 「호질」(虎叱) 이야기가 여기 나온다. 백이는 어떻게 조선의 의리가 되었는가? 연암은 왜 백이를 상대화하는가? 백이숙제 사당에서 생긴 일을 다루었다. 7 눈과 귀를 믿지 말고 명심하라 : 「막북행정록」을 다루었다. 북경에서 건륭제의 명을 받고 허둥지둥 열하로 가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조선 500년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불리는 「야출고북구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8 조작된 효자, 만들어진 열녀 : 「태학유관록」을 다루었다. 열하에서 숙소인 태학에 머물 때 쓴 글로, 조선의 효자와 열녀의 허구를 중국인의 입을 빌려 대신 이야기하였다. 9 판첸라마 소동기 : 열하에서 황제의 명으로 억지로 판첸라마를 만나게 된 연암 일행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판첸라마를 대접하는 건륭제의 모습에서 당시의 세계정세를 파악하고, 아울러 황교라는 종교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었다. 또한 구리불상 하나도 용납 못하는 당대 조선인들의 모습을 재미있게 소개한다. 10 관우는 왜 공자보다 인기를 얻었나? : 「환연도중록」을 다루었다. 오미자 몇 알로 벌어진 싸움을 보며, 지극히 작은 것 하나로 큰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관우가 공자보다 인기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밝혔다. 11 허생이 꿈꾼 세상, 우리가 꿈꾸는 세계 : 「옥갑야화」를 다루었다. 열하에서 북경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긴 이야기들. 「허생전」은 북경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쓴 작품이다. 옥갑(玉匣)이라는 공간과 허생의 진짜 정체를 풀어본다. 12 지금 여기에서 열하일기 읽는 법 : 지금, 우리는 『열하일기』에서 무엇을 배우고 적용할 수 있을까? 『열하일기』에 담긴 사상과 문화, 현재 『열하일기』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열하일기』를 통해 연암이 들려주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리고, 오늘날의 독자는 『열하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자 : 박수밀 , 출판사 : 돌베개 , 입수일자 : 2024.04.30 ]]>
박수밀 2024-04-30
<![CDATA[젊은 느티나무]]> 1950~1960년대 젊은이들의 사랑을 말고 세련되게 묘사한 강신재의 대표작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가슴속으로 저릿한 것이 퍼져나간다.” 「젊은 느티나무」로 대표되는 강신재의 작품들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싱싱하고 풋풋하다. 공들인 작가의 문체적 노력과 성취가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작품을 살아남게 한 것이다. 눈썰미 있는 인간 관찰, 인정 기미의 섬세한 포착, 그리고 은은한 서정성. 이러한 면에서 강신재의 작품들은 독보적이다. 한 단편의 제목처럼 강신재의 작품은 ‘황량한 날의 동화’이다. 여기서의 ‘동화’를 ‘메르헨’으로 읽는다면 말이다. 우리가 그 ‘황량한 날’을 얼마만큼 넘어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다시 일어볼 가치가 있는 소설집이다. ―유종호(연세대학교 특임 교수, 문학평론가)
저자 : 강신재 , 출판사 : 민음사 , 입수일자 : 2024.05.07 ]]>
강신재 2024-05-07
<![CDATA[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우다영·조예은·문보영·심너울·박서련의 SF 세계를 미리 경험하다 시리즈 출간 예정작의 세계관과 연결된 5편의 프리퀄 앤솔러지 프리퀄은 특정 작품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내용을 다루는 작품을 일컫는 말로, 일반적으로 이미 만들어진 작품의 속편을 뜻한다. 그러나 이 책에 수록된 프리퀄 작품들은 출발점이나 기준으로 삼을 전작이 없다. 즉, 미래에만 존재했어야 할 SF 세계가, 중·단편소설의 형태로 미리 탄생한 것이다. 그리하여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에게 도달한 다섯 작가의 SF가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다. 기존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유토피아·디스토피아를 초월한 SF 세계, 그리고 갓 탄생하여 혼란스럽고 불안한 세계에서 불안을 견디며 배우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유토피아는 인간의 잠재력을 칭송하는 세계이고 디스토피아는 인간의 악마성을 부각하는 세계라고 한다면, 한국 문학의 젊은 작가들이 선보이는 세계는 유토피아도 아니고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피할 수 없는 대재앙이 임박한 또는 인간의 욕심이 초래한 재앙 탓에 죽어가는 세계일지라도, 다섯 작가가 창조한 주인공들은 온 힘을 다해 살아가고 서로와 연대하며 사랑한다. 그렇기에 염세적인 세계일지라도, 주인공들의 미래는 낙관적이다. 최소한 희망적이다. 이렇듯 희망의 목소리가 담긴 SF 세계가 젊은 작가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것은, 지금의 한국 문학 독자들, 특히 젊은 세대 독자들이 호출한 결과로 보여진다. 앞서 기존의 위계와 차별을 지우면서 서로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고 연대하는 SF 세계를 ‘김초엽’을 위시한 젊은 작가들이 그려냈고, 그 세계에 젊은 세대의 독자가 큰 관심과 사랑을 보내왔다. 즉, 문학의 젊은 세대가 공감과 연대를 다루는 SF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음을 투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그리하여 앞서 SF에 관심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다섯 작가는,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묶을 수 있는 각기 다른 SF 세계를 구축했다. 허블은 이번 앤솔러지가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적절한 응답이 되리라 기대한다. 우다영·문보영·박서련, “초월”처럼 갓 태어난 SF 세계의 출발점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 차오르는 세계의 사랑 이번 앤솔러지에 참여한 다섯 작가 중 SF의 라벨을 단 소설을 처음 발표한 작가가 있는데, 바로 우다영, 문보영, 박서련이다. 세 작가의 SF 세계는 인간과 비인간(각각 신, 로봇, 외계인) 사이에서 차오르는 사랑을 다룬다. 우다영의 「긴 예지」는 대재앙이 임박한 미래를 보게 된 수많은 예지 능력자들이, 자신들이 본 미래를 데이터화해 예지 능력을 갖춘 AI를 만들어 재앙을 피하려 노력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세상에 대한 애정이 없었던 한 예지자가 예지 능력을 가진 동료들과 관계를 유대를 쌓아가고, 그렇게 다시금 세상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어 종말을 막고자 미래를 초월한 어떤 세계로 나아가려는 이야기다. 문보영의 「슬프지 않은 기억칩」은 인간처럼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하는 AI 로봇들이 인간의 유년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SF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인간처럼 기억 데이터가 점차 사라지도록 만들어진 감쇠기가 함께 장착된 로봇들이, 로봇 동료들끼리 모여 기억의 공백을 채우고 수수께끼를 해결해 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가는 이야기다. 박서련의 「이다음에 지구에서 태어나면」은 우주관광이 상용화된 미래에 지구가 어떤 외계 행성의 내세인 SF?세계를 그리고 있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지구인으로 환생한 모습을 보러 온 외계인 관광객을 접대하게 된 우주관광 회사 직원이, 매력적인 외모와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느끼는 외계인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리하여 자신에 대해서 나아가 외계인에 대한 사랑까지 깨달아 가는 이야기다. 조예은·심너울, “만월”처럼 가득 차오르는 SF 세계의 분기점 비틀린 일상에서도 차오르는 세계의 사랑 이번 앤솔러지에 참여한 다섯 작가 중 앞서 SF의 라벨을 단 소설을 발표한 경험이 있는 작가는 조예은과 심너울이다. 두 작가의 SF 세계는 SF적 사건으로 비틀린 일상에서도 인간 사이에 차오르는 사랑을 다룬다. 조예은의 「돌아오는 호수에서」는 무엇이든 집어 삼키는 신비로운 호수와 그 호수에 온갖 것을 버리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결국 임계점에 다다른 호수가 폐기물로 뒤섞인 괴물을 뱉어내는 SF 세계를 그리고 있다. 호수에 자신을 힘들게 하는 물건을 버리며 사랑과 우정을 쌓아가던 두 소녀가, 괴물의 탄생하는 대재앙 속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지켜나가는 이야기다. 심너울의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운석 충돌 이후 퍼져나간 외계 바이러스에 의해 괴물의 형상과 초능력을 가지게 된 소수의 사람들이 탄생하고 그들의 막강한 초능력을 이용하기에 위해 정부 기관이 초능력자들을 통제하는 SF 세계를 그리고 있다. 운석 충돌 사건으로 부모를 잃고 괴물이 된 두 남매가, 사회에 적응할 것이냐 말것이냐로 갈등하는 과정에서 각자 자신의 소통 문제를 깨닫고 서로에 대해 이해해 나가는 이야기다.
저자 : 우다영 , 출판사 : 허블 , 입수일자 : 2024.05.07 ]]>
우다영 2024-05-07
<![CDATA[카카듀 :경성 제일 끽다점 :박서련 장편소설]]> 새 시대를 위한 역사소설 설령 망하더라도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모든 것을 낱낱이 기억하고……. 기억해서 어쩔 것인가는 모르겠으나, 다만 기억하고……. -157쪽 작가는 《체공녀 강주룡》에서 보여주었듯 소수자의 기록 한 줄로 스쳐 지나갈 법한 역사적 사실에서 서사적 진실을 길어 올린다. 전작이 평양의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경성의 청년 예술가, 보헤미안, 코뮤니스트 들의 이야기다. 카카듀의 동업자 이경손과 현앨리스 모두 실존 인물일뿐더러, 나운규, 김명순, 이음전(이애리수) 등 그 시대 문화 예술인과 심훈, 김구, 박헌영 인물이 소설 속에 다채롭게 등장한다. 이경손은 나운규의 우정을 나누는 동시에 그만의 명작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현앨리스는 가부장적 사회에 선연히 반기를 들고 자신만의 사상을 채워나간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와 활동, 웃음과 침묵 모두 애처롭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망국의 청년이기 때문이다. 모두 식민지의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박서련은 실제 그 시기를 살았던 예술가 청년들을 호명해 소설의 전당에 세운다. 짧은 역사적 기록에 충실하되 기록의 빈칸을 서사적 상상력으로 채운다. 그리하여 《카카듀》는 역사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진실에 가닿는다. 그것은 거대한 사건, 위대한 인물, 상징적 배경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부산항에서, 경성 영화사 사무실에서, 작디작은 끽다점에서, 상해 조계지 거리에서 역사는 한 걸음, 그도 아닌 반걸음씩 걸어 여기까지 닿았고, 지금의 우리가 그 걸음걸음의 기억을 읽는다. 퇴폐가 만연한 가파른 시국에 그들은 ‘카카듀’에 모였다. 100년이 지난 여기에서 우리는 어디에 모여 무엇을 도모할 것인가? 새로운 시대의 역사소설 《카카듀》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예술과 거짓의 전당에서 마침내 앨리스에게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사랑하는 것이 생겼다. 그것은 인물도 사물도 아닌 사상이었다. -260쪽 작가는 주인공 이경손의 행적을 비교적 상세하고 차분히 따른다. 그가 참여한 작품과 함께한 동료들의 이름만 나열하더라도 그 시대의 예술사를 읽는 것과 같다. 의관의 집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자랐으나 식민지 현실에 방황하고 결국 예술가가 되고자 한 인물, 이경손은 스스로를 보헤미안으로 정의한다. 만세 운동에 가슴이 뜨거워지지만, 어쩔 수 없는 타협에 쉽게 응하기도 한다. 그는 예술가로서 실패하고 실패를 잊으려 애쓰고 실패로부터 도망가길 반복한다. 열망과 비관 사이에 싹튼 불안이 그를 잠식할 때쯤, 오촌 조카 현앨리스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카페 동업을 제안한다. 예술가의 쉼터이자 작업실이 될 수도 있는 카카듀, 조선인을 위한 문예 카페 카카듀……. 카카듀에서 그는 조금씩 안식을 느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에 젖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현앨리스의 삶은 이경손에 비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미국 여권을 얻었고, 경성과 상해, 하와이에서의 삶을 모두 경험했으며 목사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그에게는 남편과 아이가 있었고, 망설이는 사랑과 굳건한 신념이 있었다.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고, 어디든 홀연 나타날 수 있는 여성, 현앨리스는 친척 아저씨인 이경손 앞에 예전처럼 갑작스레 등장한다. 현앨리스는 이경손에게 끽다점 동업을 제안한다. 빨간 바가지 셋을 문에 걸고, 데카당스한 인테리어로 치장한 서양식 카페 카카듀는 그렇게 문을 열고, 관훈동의 문예 카페로, 미모의 마담이 있는 커피 하우스로 서서히 알려지게 되는데……. 그곳의 마담 현앨리스는 아무래도 수상쩍다. 코뮤니스트 현앨리스가 보헤미안 이경손을 데리고, 누구도 연극이라 눈치채지 못할 연극을 벌이고 있었으니.
저자 : 박서련 , 출판사 : 안온북스 , 입수일자 : 2024.05.02 ]]>
박서련 2024-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