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 서비스 http://lib.jnue.kr/JNUE 전주교육대학교 도서관 : 최신소장자료 ko 2024-11-19T00:01:01+09:00 Copyright (c) 전주교육대학교 도서관 All right reserved <![CDATA[8월은 악마의 달]]> O'Brien, Edna 2024-11-05 <![CDATA[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수용소의 피해자가 40년이 흘러 관찰자의 입장에서 나치즘과 인간의 위기를 치밀하게 분석한 문제작 프리모 레비는 1987년에 토리노의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사실상 유서에 해당하는데, 거기에는 40여 년에 걸친 그의 사상적 고투가 알알이 맺혀 있다. 본서에는 강제수용소 체험에 대한 매우 투철한 고찰, 인간 존재에 대한 한 점의 타협도 없는 인식이 관통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끝 모를 깊은 절망감이 배어 있다. 이 책은 프리모 레비 문학의 도달점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되돌아가야 할 사상적 좌표축이라고 할 수 있다. 나치즘이나 유대인 학살에 관한 서적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개중에 굳이 딱 한 권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권할 것이다. - 서경식(도쿄케이자이 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인생의 마지막 대목에서, 레비는 홀로코스트의 가르침이 역사의 일반적인 잔혹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로 그렇게 잊힐 것이라고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이 책은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쓴 나치의 절멸 체제에 관한 어두운 명상이다. - 『뉴욕타임스』 북 리뷰 ▶ 아우슈비츠를 통해 인간 존재의 위기를 들여다본 20세기 증언문학의 걸작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생애 마지막 작품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1986)가 국내에 첫 번역·소개된다. 프리모 레비는 증언문학의 고전 반열에 오른 『이것이 인간인가』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레비가 수용소에서 풀려난 지 40년, 『이것이 인간인가』를 집필한 지 38년 만에 쓴 책으로, 아우슈비츠 경험을 바탕으로 나치의 폭력성과 수용소 현상을 분석한 탁월한 에세이다. 특히 레비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한 해 전에 쓰고, 생환자로서 그의 삶의 핵심 주제였던 아우슈비츠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유서遺書와도 같은 작품이다. 레비는 이 책에서 강제수용소 안에서 벌어졌던 현상들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가라앉은 자(죽은 자)와 구조된 자(살아남은 자)를 가로지는 기억과 고통, 권력 관계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에서는 계통적이고 조직적으로 유대인, 집시, 장애인, 성적 소수자, 정치적 반대파 등을 박해하여 대학살로 몰아넣었다. 이 사건은 규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인류사에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이 책은 상상을 뛰어넘는 폭력의 피해자이자 ‘인간성 파괴’의 희생자인 당사자가 그날의 사건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대인 학살을 증언하는 책들 가운데서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보통은 증언자와 분석자(연구자)는 불가피하게 분리되어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둘 사이에는 왜곡이나 거리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레비는 철저한 자기성찰과 비판정신을 통해 그와 같은 왜곡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을 포함한 생존자에게도 가차 없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생환자의 기억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왜곡 문제, 해방의 순간 그들이 경험했던 수치심과 죄책감의 근원을 깊숙이 파고든다. 레비는 아우슈비츠 경험에서 나치에 한정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위기를 보았다. 레비가 그려 보이는 수용소 세계는 인간 세계의 축소판이다. 그 안의 포로들 한 줌의 권력을 위해, 또 자신보다 더 낮은 계층을 만들려고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레비는 폭력의 체제에 노출된 인간이 어떻게 그 체제와 닮아가는지 수용소라는 실험실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서문, ‘1장 상처의 기억, 2장 회색지대, 3장 수치, 4장 소통하기, 5장 쓸데없는 폭력, 6장 아우슈비츠의 지식인, 7장 고정관념들, 8장 독일인들의 편지’의 8장과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주제들은 비단 아우슈비츠 문제에 머물지 않고, 인간 존재를 둘러싼 굉장히 논쟁적인 질문을 품고 있다. 폭력(이토록 끔찍한 폭력이, 왜?), 책임(그 책임은 누구에게, 어디까지?), 기억(이 사건은 어떻게 기억에 남을 것인가?), 증언(이 사건은 증언 가능한가, 그 증언은 전해질 수 있는가?), 윤리(극한의 피폐와 갈증 속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물 한 모금을 동료와 나누지 않은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등등, 실로 아우슈비츠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위기적 물음을 던져준다. ▶ 억압이 만들어내는 회색지대 - 인간은 어떻게 권력에 현혹되는가? 출간 당시 가장 논란을 일으킨 부분이 2장 「회색지대」이다. 여기에는 수용소의 포로들이 자신보다 약한 희생자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분석이 담겨있다. 레비는 흔히 영웅의 귀환으로 표현되는 생환자들에 대한 수사修辭에 저항하면서, 그 이면에 감추어진 그들의 수동적이고 폭력적인 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신입 포로들은 불행을 같이하는 동료들의 연대감을 기대하며 입소했지만, 최초의 폭력은 특권을 지닌 동료 포로로부터 온 것이었다. 이들은 “최종 해결책”(가스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또는 죽 한 그릇을 더 먹기 위해 당국에 협력함으로써 크고 작은 특권을 손에 쥔 자들이었다. 특권층 포로는 수용소 전체 인구 중에서 소수였지만 생존자들 가운데서는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레비는 우치 게토의 위원장 하임 룸코프스키의 이야기를 통해, 억압의 체제 속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그 체제와 닮아가는지 생생하게 묘사한다. 실패한 기업가이자 유대인 자선단체들의 책임자로 알려진 룸코프스키는 사악한 나치식의 조롱에 의해 게토 위원장에 오른다. 그는 절대 왕정의 군주를 흉내 내기 시작한다. 화폐를 만들고, 자신의 친위대를 세우는 한편, 뛰어난 예술가들과 장인들을 시켜 자신의 초상을 넣은 우표를 인쇄한다. 또 학생들에게는 자신을 칭송하는 작문 과제를 내주기도 했다. 그 와중에 그는 점점 자신이 메시아이자 자기 민족의 구원자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1944년 9월, 러시아 전선이 가까워오자 나치는 우치 게토를 해산하기 시작했다. 수만 명의 포로들이 아우슈비츠로 강제 이송되었다. “겁쟁이든 영웅이든, 겸손하든 오만하든 독일의 수중에 있던 유대인들의 운명은 오직 하나였다.” 유대인의 왕 룸코프스키의 운명도 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룸코프스키는 권력과 위신에 쉽게 현혹되는 우리 인간의 나약함을 표상한다. 레비가 보기에 이것은 역사 속에서 되풀이되는 광경이다. 레비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히틀러의 궁정에서, 살로 공화국의 장관들 사이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암투를 떠올린다. 그들 역시 회색 인간들로, 처음에는 맹목적이었다가 나중에는 범죄자가 되었고, 죽어가는 사악한 한 줌의 권력을 나눠가지려고 맹렬히 싸웠다. 레비는 룸코프스키의 이야기가 곧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한 체제를 위해 일하고 그 체제의 죄에는 자진해서 눈감아버리는 하위 권력층들의 이야기이다. 서명에는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모든 것에 죄다 서명을 하는 중간간부들의 이야기이다. 고개를 가로젓지만 묵인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며, “내가 하지 않으면 나보다 더 못한 다른 사람이 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 우리 모두 게토 안에 있다는 것을 (……) 그 밖에는 죽음의 주인들이 있으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자발적이든 아니든 간에 권력과 타협하게 되는 것이다.(79~80쪽) 그러나 레비의 관심은 거대한 억압기구의 각 층위에서 어쩔 수 없이 죄에 가담한 한 사람 한 사람을 단죄하는 일이나 용서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러한 체제 자체의 범죄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선악의 이분법으로 갈라낼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이 억압기구의 범죄에 의해 가담자나 공범자가 되어버리는 메커니즘에 주의를 기울였다. ▶ 나치의 폭력성의 본질 - ‘적’은 죽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고통 속에 죽어야 한다 레비는 히틀러주의를 규정하는 하나의 특징으로 쓸데없는 폭력을 들고 있다. 살인자는 보통 돈 때문이든, 적을 진압하기 위해서든 살인을 위한 분명한 동기를 갖고 있다. 전쟁 또한 나쁘거나 사악한 목표라 하더라도 어떤 목표를 겨냥한다. 그 자체로 고통을 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치 체제하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례들은 포로들에게 쓸데없는 잔인함을 보여준다. 강제이송자들은 식량, 물, 심지어 요강까지 아무 준비 없이 열차에서 태워졌다. 며칠, 몇 주간 이어진 지옥여행으로 미쳐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수용소에 도착한 후에도 매일 저녁 이뤄지는 집계점호(죽은 자도 누워서 나타나야 했다), 일상적인 벌거벗겨짐, 맨손으로 죽 먹기 등 포로들은 자신들이 동물화되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레비는 이와 같은 나치의 잔혹함에 몸서리를 친다. 왜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 대문 역시 치고 들어가야 했단 말인가? 왜 그들을 머나먼 곳에서, 무의미한 여행 끝에 폴란드의 가스실 문턱에서 죽게 만들려고 굳이 끌고 가 기차에 태우는 그 고생을 해야 했단 말인가? 내가 탄 열차에는 (……) 다 죽어가는 아흔 살 노파 두 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딸들이 곁에서 돌봤지만 헛되이 여행 중에 죽었다. 열차 안의 집단적인 고통 속에 그들의 고통을 보태 넣기보다, 그들을 자신들의 침대에서 그냥 죽게 내버려두거나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것이 더 간단하고 더 ‘경제적’이지 않았을까? (145쪽) 이와 같은 나치의 폭력성은 주로 유대인들로 구성된 특수부대 존더코만도스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끔찍한 임무는 수용소의 화장터를 관리하는 것이다. 가스실로 보내야 할 사람들 사이에 질서를 부여하고, 가스실에서 시체들을 꺼내 화장터로 운반하고, 재를 꺼내 없애는 일련의 작업을 해야 했다. 곧 “유대인을 화로 속에 넣어야 했던 것도 유대인이었다.” 나치는 이러한 기관을 통해서 희생자들에게 죄의 짐을 떠넘기려고 시도했다. 레비는 특수부대의 존재로부터 하나의 메시지를 읽는다. 지배 민족인 우리는 너희들의 파괴자이지만, 너희들은 우리보다 나은 것이 없다.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 우리에겐 너희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을 파괴할 능력이 있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파괴한 것처럼. (61쪽) 레비는 히틀러 체제가 위로부터 강요한 선택은 포로들에게 “최대한의 괴로움, 최대한의 정신적·도덕적 고통을 짜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적’은 죽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고통 속에 죽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레비는 트레블링카 전 사령관 프란츠 슈탕글의 인터뷰 속에서 나치의 잔혹행위에 담긴 경악스러운 진실을 마주한다. “그들을 어차피 다 죽일 것이었는데… … 굴욕감을 주고 잔혹행위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나요?” 뒤셀도르프의 감옥에서 종신형에 처해 있던 슈탕글에게 작가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실질적으로 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사람들을 길들이기 위해서. 그들에게 자신들이 하고 있었던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152쪽) 나치가 포로들에게 대하여 잔혹행위를 벌인 기저에는 죽이는 자의 죄책감을 덜려는 목적도 있었다. 죽이는 자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게끔, 희생자는 죽기 이전에 인간 이하로 비하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 생환자가 겪는 수치심과 죄책감 -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레비에 따르면 포로들에게 해방이 무조건 기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유를 되찾음과 동시에 치욕감과 죄책감에 휩싸였다. “어둠에서 나왔을 때, 사람들은 자기 존재의 일부를 박탈당했다는 의식을 되찾고 괴로워했다.” 그 죄의식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생환자들은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자신들이 휩쓸려 들어간 체제에 대항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데 인식이 미쳤다. 또한 연대감의 실패라는 측면에서도 그랬다. 생환자들은 그때 도움을 베풀지 않은 데 대해 자신이 유죄라고 느꼈다. 더 약하고 더 서툰 옆자리의 동료는 도움을 청함으로써, 또는 단순히 ‘있다’는 사실만으로 집요하게 괴롭혔다. 보통은 자신들도 매우 도움이 필요한 처지에 있었지만 그 죄책감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레비를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한 또 다른 수치심이 있다. 레비는 자신이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고 살아남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다른 사람 대신에 살아남았기 때문에 부끄러운가? 특히, 나보다 더 관대하고, 더 섬세하고, 더 현명하고, 더 쓸모 있고, 더 자격 있는 사람 대신에? (95쪽) 이와 같은 뿌리 깊은 의심, 곧 “다른 사람을 희생하여 내가 살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사실상 죽인 것일 수도 있다”는 의혹은 바로 수용소의 ‘구조된 자’는 최고의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최악들의 사람들이었다는 데서 비롯한다.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그들이 못나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가진 용기라는 미덕 때문에 죽은 것이다. 반면 이기주의자들, 회색지대의 협력자와 같은 수용소 체제에 적응한 자들, 최악들의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서 레비는 자신이 구조된 사람들 무리에 어쩌다 섞여 들어간 것처럼 느낀다. 진짜 증인들은 우리 생존자가 아니다. 우리 생존자들은 근소함을 넘어서 이례적인 소수이고, 권력 남용이나 수완이나 행운 덕분에 바닥을 치지 않은 사람들이다. 바닥을 친 사람들, 고르곤을 본 사람들은 증언하러 돌아오지 못했고, 아니면 벙어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바로 “무슬림들”, 가라앉은 자들, 완전한 증인들(……)이다. 그들이 원칙이고 우리는 예외이다.(98~99쪽) 이와 함께 레비는 우리 가운데 의로운 사람들이 느끼는 좀 더 광범위한 수치심을 이야기한다. 많은 이들이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그리고 자신들이 거기에 연루됐다는 생각 때문에 가책과 수치심이라는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주위와 눈앞, 그리고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레비는 이 고통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 사람들은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기를 거부한다 레비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독일인들이 자신에게 보내온 편지로 장식한다. 레비는 한 독일 출판사가 『이것이 인간인가』의 번역권을 계약했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한다. 이 책의 진정한 수신자이자 무기처럼 겨냥하고 있던 사람들은 바로 독일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보내진 40여 통의 편지들 가운데서 몇몇은 “나는 몰랐다”, “어쩔 수 없었다”와 같은 여전한 변명과 기만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 해설을 쓴 서경식의 지적처럼 종전이 후 얼마 안 된 시기에는 나치 지도자들을 ‘광기’에 사로잡힌 ‘악마’로 지목하여 설명하려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연구가 심화되어 갈수록 그러한 단순한 논리는 무효화되고, 독일 국민을 비롯하여 다른 유럽 국가의 국민까지 포함한 일반인의 적극적인 동조가 있었기 때문에 ‘홀로코스트’가 실현되었다는 ‘불편한 진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레비는 “당시의 거의 모든 독일인들의 진정한 죄는 말할 용기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라거에 대한 진실을 확산시키지 않았다는 것이야말로 독일 민족이 저지른 가장 중대한 집단 범죄의 하나이며 히틀러의 테러로 인해 독일 민족이 다다른 비겁함을 가장 명백하게 증명해주는 것이다. 관습 속으로 들어와버린 비겁함, 너무나 깊어서 남편이 아내에게, 부모가 자식에게도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드는 비겁함이다. 이 비겁함이 없었더라면 그토록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고 유럽과 세상은 오늘날 달라져 있을 것이다. (14쪽) 이 책의 제목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레비가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서 뽑아왔다. “가라앉은 자”란 수용소의 전멸 체제에 휩쓸려버린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레비는 그들이야말로 “완전한 증인”이라고 말한다. 살아남은 자들, 곧 구조된 자들은 그들 대신 증언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레비는 인생의 마지막 대목에서 홀로코스트의 가르침이 역사의 일반적인 잔혹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로 그렇게 잊힐 것이라고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레비의 마지막 유언과 같은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우슈비츠란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 사건은 과연 종결된 것인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것으로부터 얼마나 안전한지에 대한 물음은 오늘날의 한국 독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고민을 안겨줄 것이다.
저자 : 레비, 프리모 , 출판사 : 돌베개 , 입수일자 : 2024.10.28 ]]>
레비, 프리모 2024-10-28
<![CDATA[군화가 간다]]> 한중일 공동기획 평화그림책은 어린이들이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 ? 중 ? 일 세 나라의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함께 만드는 그림책 시리즈입니다. 한 ? 중 ? 일 세 나라는 가까운 이웃 나라들이지만 서로 동등하고 평화롭게 지내 오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근대에는 힘을 앞세운 제국주의 세력의 욕심 때문에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괴롭히는 불행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 나라 사람들이, 나아가 온 세계 사람들이 평화로이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그림책 시리즈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날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오늘의 아픔을 서로 나누며, 평화로운 내일로 함께 나아갈 것을 목표로 서로 의논하고 격려하면서 한 권 한 권 정성껏 만들고 있습니다. 2005년 10월, 다시마 세이조, 다바타 세이이치 등 일본 원로 그림책 작가 4명의 발의로 시작, 2007년 난징에서의 기획회의를 기점으로 본격 진행되어 7년이 지난 지금 6번째 그림책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군화가 간다] 작품 소개 평화그림책을 발의한 일본 할머니 작가의 첫 마음 책을 집어 들면,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여자아이와 마주하게 됩니다. 아이는 짧은 단발머리에 몸뻬 바지를 입고 게다를 신었습니다. 어깨에 대각선으로 멘 것은 아마도 구급낭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 여자아이는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군국소녀’입니다. 부릅뜬 눈과 앙다문 입술이 제법 야무져 보이지만, 아이의 자세는 약간 기울어져 어딘가 살짝 위태로운 느낌을 줍니다. 빨간색 제목 글자 아래 표기된 작가의 이름은 와카야마 시즈코. 군국주의의 광기가 전쟁을 향해 치달아가던 1940년 교토에서 태어나, 딱 표지의 아이 만했을 6살 무렵에 조국의 패망을 맞고, 곤궁한 패전국의 소녀로 유년기를 보낸 일본의 여성작가입니다. 그는 이순의 할머니가 된 2005년, 역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있던 동료 작가 3명과 함께 한중일 공동기획 평화그림책 시리즈를 발의했습니다. 자신의 손자와 같은 ‘어린이들이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지요. 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 그가 만든 평화그림책 한국어판이 출간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그림책은 9년의 숙성을 거쳐 어린이들에게 건네진, 할머니 작가 와카야마 시즈코의 평화그림책에 대한 초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첫마음은, 배경을 제거하고 핵심적인 요소만 굵고 검은 선으로 분명하게 표현한 그의 그림만큼이나 간결하고 명료합니다. “나의 미래에 전쟁 따위는 필요 없다.” 이 선언의 바탕은 역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그의 역사 인식입니다. 군화가 간 곳은 어디인가? 책장을 열면, 척, 척, 척, 척, 군화소리를 표기한 히라가나 글자들이 떼를 지어 어디론가 몰려갑니다. 군화소리는 곧 군화로 바뀌고, 이제 군화들이 말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리고 스스로 대답합니다. 척, 척, 척 “우리는 전쟁을 하러 간다.” “바다를 건너 이웃 나라로” “이웃 나라 사람들을 짓밟아 뭉개 버렸다.” “처억! 처억! 처억! 다음 전쟁터로” “처억! 처억! 처억! 우리는 무얼 한 걸까?” “이웃 나라 사람들을 처억, 처억 짓밟아 슬픔의 구렁텅이로 떠밀어 버렸다.” 군화가 짓밟고 지나간 곳은 조선과 중국, 그러는 동안 군화는 저도 모르게 차츰차츰 망가져 갑니다. 그러면서도 남쪽의 섬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일대와 남태평양 지역들마저 전쟁터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제 군화의 말인지 작가의 말인지 구분되지 않는 고백이 이어집니다. “우리를 신고 있던 병사들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이 죽어 갔다.” 전쟁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다. 작고 어린 생명마저. “우리는 결국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우리에게 명령을 내린 국가도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군화들. 고백이 이어짐에 따라, 작고 어린 생명마저 짓밟아 버렸던 군화들의 모습은 점차 너덜너덜해져 가고, 마침내 군화를 신었던 병사들과 함께 희미하게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바람에 날아가는 모자 하나.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 모자의 주인은 다시 어린아이입니다. 표지의 소녀를 꼭 닮은 작은 소녀. 그러나 소녀는 몸뻬도 게다도 구급낭도 걸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거수경례를 하지도 않습니다. 천진한 아이의 표정으로 두 발을 자연스레 딛고 있는 모습에서 차분한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소녀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나는 나의 미래를 살아간다. 나의 미래에 전쟁 따위는 필요 없다.” 군화 신은 선조들이 저질렀던 오류를 결코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마지막 장에 들꽃이 피어 있습니다. 군화들이 사라져간 들판에 피어난 꽃들입니다. 이제 책장을 덮으면 뒤표지, 소녀가 모자에 들꽃을 담아 놓았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메시지일까요? 작가는 이 장면에 대해 이런 설명을 보내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이자 극작가 테라야마 선생님이 노랫말을 쓴 <전쟁은 몰라요>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랫말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들판에 피어 있는 꽃의 이름은 몰라요. 하지만 들판에 피는 꽃이 나는 좋아요. 모자에 한 가득 따 담으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마지막 장면은 이 노랫말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저자 : 와카야마, 시즈코 , 출판사 : 사계절출판사 , 입수일자 : 2024.11.13 ]]>
와카야마, 시즈코 2024-11-13
<![CDATA[귀여움 수집가]]> 신지영 2024-11-05 <![CDATA[난 거기 가 본 적 없어]]> 페어, 다니엘 2024-11-05 <![CDATA[낭만 수의사, 희망을 처방합니다]]> 린리신 2024-10-28 <![CDATA[내 책은 결재가 필요 없다:공무원의 업무 능력과 독립적인 삶을 위한 책 쓰기 전략(Book writing strategy for civil servants' work skills and independent live]]> 이동윤 2024-11-15 <![CDATA[눈, 뇌, 문학: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문학적 성찰]]> 석영중 2024-10-28 <![CDATA[눈아이:안녕달 그림책]]> 안녕달 2024-10-28 <![CDATA[다름 :다르지만 같은 우리]]> 우리와는 다른 문화와 정서를 가진 세계로 '다름 문화 여행'을 함께 떠나 봐요! 친구에게 인사를 할 때 뺨을 때려도 괜찮다고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칭찬을 하면 상대방이 심하게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요? 이 책은 한국과 세계의 문화를 비교하는 그림책으로, 어린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가 존재함을 이해하게 도와준다. 또한 어떤 문화는 좋고, 어떤 문화는 나쁘다는 문화적 편견과 차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한다.“틀린 게 아니라 단지 다른 거야!” - 독특한 제본 형식으로 놀이하듯 만나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 - 우리는 인사를 할 때 고개를 숙이는데, 왜 이누이트족은 뺨을 때릴까? 우리는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 어른들께 혼이 나는데, 인도에서는 왜 손으로 밥을 먹어도 될까? 바로 문화의 차이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의미로 하는 행동이 다른 나라에서는 금기시되거나,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부정적으로 비쳐지는 행동이 다른 나라에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여러 예를 살펴보며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소개한 그림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제본 방식을 통해 그린란드, 인도, 호주, 케냐, 그리스, 중국, 멕시코, 이란, 일본, 사우디아라비아의 문화를 우리나라 문화와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이전 페이지의 그림과 만나 새로운 그림이 완성되는 재미를 선사할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문화를 인식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다름’과 ‘틀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 가지 않더라도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 학업이나 일자리를 위해 온 사람들, 여행 온 사람들, 결혼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러 온 사람들 등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만남이 어렵지 않다.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들 나라의 문화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배워야 한다. 서로 인종도, 문화도, 자라온 환경도 다르지만 그 어떤 것도 맞고 틀린 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손으로 밥을 먹는다고 해서, 이야기할 때 침을 튀긴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예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문화가 다를 뿐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하나의 지구촌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음을 인정ㆍ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을 통해 글로벌 시대의 필수 교양인 문화의 다양성을 익혀 보자.
저자 : 박규빈 , 출판사 : 다림 , 입수일자 : 2024.11.13 ]]>
박규빈 2024-11-13
<![CDATA[단단한 사랑이 있는 한, 넘어지지 않는다 :끝까지 견뎌 기적을 만든 너에게 전하는 세상의 목소리]]> 륀후이, 2024-10-28 <![CDATA[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장편소설]]> 김금희, 2024-10-28 <![CDATA[데루코와 루이:인생 2회차, 두 여자의 통쾌한 질주]]> 윤은혜 2024-10-28 <![CDATA[말투만 바꿨을 뿐인데 :찰나의 말투 하나로 당신의 인생이 놀랍게 달라진다!]]> 김민성 2024-10-28 <![CDATA[못 말리는 친구 사건]]> 정은정 2024-11-05 <![CDATA[무엇이 삶을 부유하게 만드는가:돈이 전부인 시대의 도스토옙스키 읽기]]> 석영중 2024-10-28 <![CDATA[별을 사랑하여]]> 소영 2024-10-28 <![CDATA[빙글뱅글 무슨 바퀴]]> 자동차 바퀴부터 지구 한 바퀴까지! 바퀴라는 열쇠 말로 넓고 풍부하게 세상을 탐구해요 아기들이 세상에 태어나 맨 처음 시도하는 ‘덕질’의 대상이 바로 탈것과 공룡이에요. 아직 세상이 너무 버겁기만 한 아기들이 빠르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탈것과 커다랗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공룡에 마음을 빼앗기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아기들이 좋아하는 탈것 그림책은 정말 많고도 다양하지만, 이 책 《빙글뱅글 무슨 바퀴일까?》는 조금 다르답니다. 탈것과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바퀴’를 다루거든요. 탈것이 다양한 만큼이나 바퀴의 모양과 쓰임새도 무척 다양해요. 크고 작은 바퀴, 빠르고 느린 바퀴, 여럿이 함께 가거나 혼자 굴러가는 바퀴, 오랜 옛날에 쓰인 수레바퀴부터 최첨단 로봇에 쓰이는 바퀴까지, 이 책에는 무척 다양한 바퀴가 줄줄이 등장합니다. 더 나아가 아기들이 알면 깜짝 놀랄 사실! 바퀴는 탈것에만 쓰이는 게 아니에요. 바퀴의 사전 정의를 보면 ‘돌리거나 굴리려고 축에 장치한 둥근 테 모양의 물건’이라고 나와 있지요. 자동차에 있는 운전대나 배의 방향을 바꾸는 타륜도 영어로는 ‘steering wheel’이라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바퀴의 하나랍니다. 놀이공원에 있는 대관람차(Ferris wheel)나 회전목마도 마찬가지고요! 이런저런 바퀴를 찾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시계 속 톱니바퀴, 귀에 있는 귓바퀴, 우리 집 강아지가 좋아하는 동네 한 바퀴, 심지어 바퀴벌레까지! 이처럼 바퀴의 속성을 공유하는 물건과 개념부터 멀리는 동음이의어까지, ‘바퀴’라는 열쇠 말 하나를 가지고 넓고도 풍부하게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세계를 탐험하지요. 이게 바로 아기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덕질’ 아닐까요? 작은 실마리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 사고력와 지식을 확장하는 올바른 배움의 태도를 보여 주기도 하고요. 수수께끼 말놀이로 즐겁게 언어 감각을 길러요 이 책은 전체가 재미있는 수수께끼 말놀이로 이루어져 있어요. 뱅글뱅글 돌아가는 물건들이 가득한 첫 장면에서 “동그랗고 잘 굴러가는 게 뭘까?” 묻고 나서 페이지를 넘기면 “바로바로 바퀴!”라고 답이 나와요. “세상에서 가장 바쁜 바퀴는 뭐게?” 하고 물은 다음 페이지에는 소방차와 경찰차, 구급차 바퀴가 나오고, “반대로 빈둥빈둥 한가한 바퀴도 있다고?” 물은 다음에는 하늘에 올라가면 쏙 들어가 쉬는 비행기 바퀴가 나오는 식이지요. 책의 맨 뒷장에는 “똥으로 만들어진 바퀴는? 쇠똥구리 경단.” 같은 난센스 깜짝 퀴즈도 덤으로 들어 있답니다. 또한 생동감 넘치는 의성어 의태어가 가득하고 살가운 입말투의 글로 되어 있어, 양육자와 아이가 서로 묻고 답하며 즐겁게 책장을 넘길 수 있어요. 자동차 바퀴부터 톱니바퀴, 귓바퀴, 동네 한 바퀴, 바퀴벌레로 이어지는 동음이의어 말놀이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지요! 이 책은 애니메이터, 통번역사, 카페 주인 등 여러 직업을 거친 지승희 작가가 늦깎이 그림책 작가로 데뷔하며 세상에 내놓는 첫 그림책입니다. 더 좋은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같은 장면을 수없이 반복해 그리면서 구석구석 요목조목 풍부한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채워 넣은 작가의 정성이 듬뿍 담겨 있지요. 호기심 가득한 모험가의 태도로 살아온 작가가 어린이들이 주변 세상을 즐겁게 탐구하며 살아가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다정한 그림책이랍니다.
저자 : 지승희 , 출판사 : 노란상상 , 입수일자 : 2024.11.05 ]]>
지승희 2024-11-05
<![CDATA[빠르게 생각하고 똑똑하게 말하라 :스탠퍼드대 최고의 말하기 강의]]> Abrahams, Matt 2024-10-28 <![CDATA[살색은 다 달라요 :다인종·다문화를 이해하는 그림책]]> ▶ 다인종·다문화 시대, ‘살색’은 무슨 뜻일까?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에는 큰 힘이 숨겨져 있다. 언어는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도구인 동시에 사회 구성원들 간의 약속이기 때문에 사회와 문화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이 언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거나 지배하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살색’과 같은 낱말을 예로 들 수 있다. ‘살갗의 색깔’을 뜻하는 이 낱말은 우리나라에서 꽤 오랫동안 황인종의 피부색을 일컫는 ‘색이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살색은 인종에 따라 다 다르고, 그 빛깔 또한 오묘하기 때문에 콕 집어 어떤 색이라고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 그래도 그동안 편의상 우리 민족의 피부색을 ‘살색’이라고 불렀는데, 이로 인해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다른 피부색을 한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 의식이 싹텄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는 이주 노동자의 유입과 국제결혼 등의 요인으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면서 빠른 속도로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살색’이라는 단어의 사용과 그로 인해 형성된 그릇된 가치관은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갈등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특정색을 살색으로 지정하는 것은 인종 차별적이라는 지적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색이름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살색은 연주황, 연한노랑분홍으로 바뀌었다가 지난 2005년에 살구색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이로써 퇴출될 뻔한 위기에 몰렸던 살색은 피부색을 뜻하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여전히 색이름으로 잘못 쓰여 반감을 사기도 하고, 차별적인 낱말이라는 미운털이 박혀 평소에 보다 적극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보물창고에서 출간된 『살색은 다 달라요』는 ‘살색’이라는 낱말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로잡고,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살색이 지닌 아름다움과 매력을 발견하게끔 도와주는 의미 있는 그림책이다. 밝고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개성 있는 그림으로 표현해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온 작가 캐런 카츠는 과테말라 태생의 딸을 입양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어린이 그림책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인종의 전시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뉴욕에 살면서 딸을 키우는 동안 얻은 영감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의 생김새와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우리 모두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서로 다름’에 매력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다인종·다문화의 최전방에 있는 작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이 책이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독자들에게 ‘다름이 지닌 특별한 매력’을 발견하는 방법까지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 ‘색 다름’에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화가인 엄마를 둔 일곱 살짜리 여자 아이 레나의 살색은 계피 같은 적갈색이다. 갈색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는 레나에게 엄마는 조금씩 빛깔이 다른 여러 가지 갈색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산책을 나가자고 한다. 산책을 하는 동안 레나는 많은 친구들과 이웃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살색이 다 다르고, 저마다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은 주변을 관찰하고 또래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세상을 배운다. 그래서 자신과 ‘같거나 비슷한 것’에 동질감을 느끼고, ‘다르고 낯선 것’은 경계하며 거리를 두기 마련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다르고 낯설’기만 했던 것들이 나중에는 ‘나쁘고 틀린 것’으로 잘못 인식되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만들어진 편견의 벽은 쉬이 허물어지지 않는데, 나와 다른 살색에 대한 편견 역시 마찬가지다. 다인종·다문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지 않는 현명함과 ‘다름’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줄 아는 유연한 사고방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독자들은 『살색은 다 달라요』를 통해 레나처럼 나와 다른 친구들의 살색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의 맛과 향기, 즐거웠던 추억, 그 사람의 장점과 매력 등을 떠올리고, 그것을 아름답고 특별하게 여길 줄 아는 열린 마음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과 다른 살색 때문에 놀림을 받았거나 소외당한 아픈 경험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용기와 위로를 넌지시 건네줄 것이다.▶ 주요 내용 일곱 살짜리 여자 아이 레나의 살색은 계피 같은 적갈색이다. 레나는 화가인 엄마에게 갈색이면 다 똑같은 갈색이지 적갈색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엄마는 여러 가지 물감을 알맞은 비율로 섞으면 레나의 살색과 같은 적갈색을 만들 수 있다고 알려 주면서, 조금씩 빛깔이 다른 여러 가지 갈색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산책을 나간다. 레나는 엄마와 산책을 하면서 소니아, 이자벨, 미나, 카일, 펠레그리노 씨 등 수많은 이웃과 친구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살색이 땅콩버터 잼 같은 연한 황갈색부터 생일 파티에서 먹었던 초콜릿빛 갈색, 낙엽 같은 다갈색, 캐러멜맛 사탕처럼 연한 갈색 등 모두 다른 데다 저마다 아름다운 빛깔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레나는 물감을 꺼내 계피, 초콜릿, 벌꿀, 커피맛과 캐러멜맛 사탕 등 맛깔스럽게 들리는 친구들의 살색을 읊조리며 멋지게 그들의 얼굴 그림을 완성한다. ▶ 옮긴이의 말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크레용 속에 ‘살색’이 들어 있었지요. 이젠 ‘살구색’이라 불리는 이 색깔은 우리나라 보통 사람들의 피부색과 비슷하여 ‘살색’이라 불렸어요. 그래서 그보다 좀 검거나 다른 피부색을 한 사람들은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단일 민족’이라는 의식이 강하던 우리나라도 이젠 다인종·다문화 사회가 되어, 이 그림책에 나오는 것처럼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레나가 겉모습이 서로 다른 이웃과 친구들의 빛깔에서 다양한 맛과 향기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보며, 많은 이들이 풍부한 감성과 활짝 열린 마음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옮긴이 신형건(시인, 비평가)
저자 : Katz, Karen , 출판사 : 푸른책들 , 입수일자 : 2024.11.13 ]]>
Katz, Karen 202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