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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육대학교 도서관 : 최신소장자료 ko2025-03-11T00:01:01+09:00Copyright (c) 전주교육대학교 도서관 All right reserved<![CDATA[갱부]]>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한 “갱부”, 강상중이 아낀 “산시로”,
김경주가 옮겨 적은 “그 후”, 너무나 사랑받은 “우미인초”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이야기
해답이 없는 물음을 던지고 고민하는 청춘의 ‘창백한 고뇌’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차분, 그 난처한 주인공들을 만나다
“그 우울한 청춘의 시대, 옆에서 늘 속삭이듯 말을 걸어준 것은 나쓰메 소세키였습니다”
자유를 구가하고 독립을 주장하며 자아를 내세우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왜 이렇게 다들 고독한가. 부모자식, 부부, 친척, 친구, 연인, 사제……인간관계 안에 숨어 있는 에고이즘과 고독,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을 그려낸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 봐도 선구적인 작가임에 틀림없다.
_ 강상중(세이가쿠인 대학 총장, 전 도쿄대 명예교수)▣ 나쓰메 소세키가 100년 전에 움켜쥐고 고민한, 지금도 유효한 물음
나쓰메 소세키가 문학과 학문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하고자 천착한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이며 이는 곰곰이 생각해볼 인생의 화두가 된다. 그중 2차분 네 권(『우미인초』, 『갱부』, 『산시로』, 『그 후』)에서는 불안과 불만으로 “바싹 말라버린 청춘”을 사유하도록 이끈다. 삶과 죽음, 사랑과 고통 등 청춘이 마땅히 누려야 할 ‘발랄’과는 거리가 먼, 번민만이 흩어져 있던 “불행한 시대”의 100여 년 전 이야기는 일본이라는 공간을 넘고 시대를 넘어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100년 동안 수없이 많은 독자가 가슴속에 간직해온 ‘살아 있는’ 소세키를 읽을 수 있도록 고심해서 각 권 마지막에 우리 문학가들의 ‘소세키 독후감’을 담았다. 소설가 강영숙이 읽은 우미인초의 자줏빛 ‘봄날의 산행’, 소설가 장정일이 말하는 『갱부』로 거듭나기, 소설가 김연수가 담은 『산시로』의 잃어버린 청춘의 한 조각, 시인 김경주가 찾은 『그 후』의 그윽한 문장들…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우리 작가들이 그들만의 소세키를 ‘해설 아닌 해설’의 자유로운 형식으로 담아 한국 독자들의 소세키 읽기에 즐거움을 더했다.
2016년은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이 되는 해다. 당시 소설이 연재되었던 《아사히 신문》에서는 소세키보다 먼저 100주년을 맞은 소설들을 당시 그대로의 지면으로 연재하고 있다. 문단의 학자들, 비평가들의 글을 함께 실으며 지금은 2014년 4월에 시작한 『마음』의 연재가 이어지고 있다.▣ 처음 만나는 ‘고양이의 아버지’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016년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을 앞두고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전집을 차례로 펴냅니다. 단단한 번역, 꼼꼼한 편집과 디자인으로 새롭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은 깊숙한 재미와 진진한 삶의 관찰로 가득합니다. 소설을 읽고 쓰는 까닭을 기껍게 체험하게 할 ‘고민하는 힘’ 속으로,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의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일본 근대 문학의 출발, ‘소설이 없던 시절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는 근현대 일본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20세기의 대문호, 일본의 셰익스피어 등으로 불린다. 일본에서는 1984년에서 2004년까지 1천 엔권 지폐에 그의 초상이 사용되었고, 이와나미쇼텐에서 1907년 소세키 전집이 간행된 이후 시대를 달리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발간되어 현재까지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여러 출판사에서 대표작에 치우쳐 중복 출간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출간되는 소세키 소설 전집은 12년 동안 집중적으로 써내려간 소세키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며 ‘지금의 번역’으로 만날 수 있는 국내 첫 전집이다. 우리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진 작품뿐 아니라 소세키의 연보에서도 가끔 빠져 있는 숨어 있던 소설까지 온전히 담았다. 소세키는 길지 않은 창작 기간 동안 한시, 하이쿠, 수필,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작품을 썼다. 그 작품 각각이 개성 있게 분출하는 분위기, 내용에 따른 문체 변주의 독특함 등 소세키의 작품을 고전이라 일컬음에 이론은 없을 것이다.
“필요 없는 문장은 단 한 줄도 없다”며 소세키의 문체를 생생한 우리말로 잘 살린 송태욱의 꼼꼼한 번역에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완역한 노재명의 소세키에 대한 깊은 이해가 더해져, ‘우리 시대 소세키 번역’으로 거듭났다. 또한 소세키의 작품을 온전히 풀어놓으며 지금 여기에 되살리는 작업은 송태욱(『고양이』 외 11권)?노재명(『태풍』 및 『그 후』)의 라이프워크이기도 하다.
나쓰메 소세키의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부터 위궤양과 신경쇠약으로 고통 받으며 마지막까지 써내려간 『명암』까지, 총 14권의 장편소설을 2015년까지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갱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서 가출한 카프카 소년은 도서관에서 사서와 나쓰메 소세키의 갱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소설에는 “뭔가 교훈을 얻었다느니, 그래서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느니,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느니, 사회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느니 하는 것은 별로 쓰여 있지 않다”, 그래도 신기하게 “뭘 말하려는지 알 수 없는” 것에 끌린다고 말한다.
_옮긴이의 말에서
잠이 들면 문득 시간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시간의 경과가 고통이 될 때는 자는 게 최고다. 죽는 것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죽는 것은 쉬운 일 같아도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평범한 사람은 죽는 대신 수면으로 임시변통하는 것이 간편하다.
_본문에서
집을 나와서부터 그저 걸었을 뿐 사람으로서 마땅히 먹어야 할 것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금세 배가 고파왔다. 아무리 기분이 좋지 않아도, 번민이 있어도, 영혼이 달아날 것 같아도 배만은 어김없이 고파오는 법이다. 아니, 그보다는 영혼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밥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당할지도 모른다.
_본문에서
“아무튼 한창 영혼이 도망치다 실패하던 중이었으므로”
-좌절한 청춘의 자살 대처법
죽으려고 집을 뛰쳐나온 부잣집 도련님 ‘나’는 “결국 자살은 아무리 연습해도 능숙해지지 않는 것”이라며 ‘자멸’을 차선책으로 내세우고 지겹도록 긴 소나무 길을 걷는다. 가다가 갱부 알선책인지 사기꾼인지 모를 조조의 따뜻해(?)보이는 말에 기대고는 자멸도 버리고 어두운 곳이 지향점이었다고 생각을 고쳐먹고는 갱부가 되기 위해 광산으로 떠난다. 그러고 나서는 갱부를 하기가 다시 어려워지고 만다. 이 책은 결국 죽으려다, 자멸하려다, 갱부가 되려다 실패한 ‘나’의 경험담이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에 따르면 ‘나’는 “적어도 겉에서 보기에는 광산에 들어갔을 때와 거의 같은 상태로 밖으로 나오는 것”(해변의 카프카)이고, 작가의 말에 따르면 ‘소설도 되지 못한’ 소설이다.
‘가장 소세키답지 않은 소설’
『갱부』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들 가운데 문체나 구성의 결이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다른 소설에서 조금은 익숙한 관계나 인물의 여러 갈래 ‘길’들이 교차한다면 『갱부』는 도련님이 가출해서 광산으로 향하는 외길이다. 단 한 사람, ‘나’를 잘게 쪼개서 분석하고, 조소하다가 연민하고, 꾸짖다가 칭찬한다. 끊임없이 걷거나, 몸을 움직이며 내면을 ‘역동적으로’ 들여다본다.
▣ 『갱부』는 《아사히 신문》에 1908년에 연재된 소설이다. 『갱부』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은데, 소세키의 부인이 회고하기를 어느 날 젊은이가 찾아와 소세키에게 갱부가 되었던 경험담을 들려준 것이 계기가 된 소설이라고 한다. 또한 그의 제자이기도 한 후지무라 미사오가 번민 끝에 자살한 것에 대한 석명이기도 하다. 저자 : 하목수석, , 출판사 : 현암사 , 입수일자 : 2025.02.11 ]]>하목수석,2025-02-11<![CDATA[검은 튤립]]>저자 : Dumas, Alexandre, , 출판사 : 민음사 , 입수일자 : 2025.02.11 ]]>Dumas, Alexandre,2025-02-11<![CDATA[골목이 골목을 물고 :최종천 시집]]>2025-02-11<![CDATA[교사 선생 스승]]>케이-교사2025-03-10<![CDATA[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장편소설]]>누네즈, 시그리드2025-03-07<![CDATA[그 후]]>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가
백 년 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지금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후,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당시, 《그 후》 만큼 독자가 공감한 작품은 없었다.
《그 후》는 한 시대를 동요케 한 성격을 창조해냈다.“_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는 《산시로》, 《문》과 함께 ‘나쓰메 소세키 전기 삼부작’으로 불린다. 이 작품은 대학을 졸업하고 본가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룸펜’으로 살아가던 주인공 다이스케가 자신의 오래된 친구 히라오카의 부인 미치요를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삼각관계 형태의 연애소설로만 볼 수는 없다. 나쓰메 소세키는 주인공 다이스케를 통해 ‘자연’과 ‘문명’ 사이에서 고민하고, 자본주의에 휩쓸린 일본의 시대적 모습을 비판하는 근대 지식인의 고뇌를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이스케의 모습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현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
자본주의 속 현대인의 불안과 방황
주인공 다이스케는 ‘룸펜(고등유민)’이다. 일본 최고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분야의 지식과 교양을 섭렵한 다이스케는 그 무엇에도 놀라지 않는 ‘닐 아드미라리(nil admirari)’의 태도로 살아가며 본가의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
소설은 다이스케의 오랜 친구, 히라오카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히라오카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이스케의 주선으로 미치요와 결혼해 은행계에서 일했으나, 횡령 사건으로 일을 그만두고 도쿄로 돌아온다. 그러나 “먹기 위해” 일하다가 실패한 히라오카와 “생활 이상의 일을 해야 명예”가 있고 성실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다이스케는 예전처럼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없다.
메이지 시대의 일본은 금융 자본주의가 정착되던 때였다. 나쓰메 소세키는 히라오카의 횡령, 어쩔 수 없이 번역을 통해 생활을 이어나가는 소설가 데라오, 아버지 나가이와 형 세이코의 의심스런 행적, ‘닛토(대일본제당) 정경유착 사건’ 등 돈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일본 현대인의 모습에 주목하고, 이들을 다이스케의 시선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이들을 비판하던 다이스케도, 소설 말미에서 자신이 자연의 본능과 주체적 의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공급이 반은 해결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쓰메 소세키는 무력한 지식인이자 이상주의자였던 다이스케가 결국 일자리를 찾으러 가는 모습을 제시하며 신흥 자본주의 속 현대인의 불안과 방황을 깊은 통찰로 그려내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 비로소 자연의 옛날로 돌아간다”
자기 존재의 목적을 찾아가는 주체적 현대인 다이스케
《그 후》의 핵심 사건은 미치요와 다이스케의 이야기일 것이다. 다이스케는 히라오카와 미치요가 도쿄에 돌아온 뒤, 지난 시절 친구를 위해 포기했던 미치요에 대한 감정이 다시금 살아남을 느낀다. 한편 아버지와 형, 형수는 지방 유지의 딸과 다이스케의 혼인을 성사시키기 위해 애쓴다. 결혼 문제의 압박과 미치요에 대한 감정 사이에서 고민하던 다이스케는 결국, 미치요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고 아버지에게는 혼인 거절 의사를 밝힌다. 이때, 다이스케는 “오늘 비로소 자연의 옛날로 돌아간다”고 선언한다. 미치요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는 것은 “자연에 저항했던” 것이며, 그는 이 사건을 통해 “의지의 사람”이 아니라 “자연의 사람”이 된다고도 말한다. 이는 다이스케가 주체적인 삶을 위해 내린 결단이고 관문이다. ‘도금’으로 점철되어 있던 자신의 삶을 새로이 ‘순금’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후》가 발표된 시점은 1909년이다. 구시대의 관습을 자연스럽게 따르던 당시, 다이스케의 행보는 꽤나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현대인은 단지 오늘만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현대적 가치와 이념, 정신을 갖추고 독립을 쟁취하는 개인임을 나쓰메 소세키는 말하고 있다. 다이스케는 사회가 무조건적으로 주입했던 ‘목적’으로 인해 ‘앙뉘(권태감)’에 빠져 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 결정과 경험을 통해, 그가 찾고자 했던 자기 존재의 목적과 주체적 삶의 방향을 찾아나갈 것이다.
문예출판사는 나쓰메 소세키 선집을 주목받는 신인 작가이자 <월간 윤종신>의 ‘Cafe LOB 10월의 작가’(2016)에 선정된 박혜미 일러스트레이터의 아름다운 표지 일러스트와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저자 : 나쓰메 소세키, , 출판사 : 문예출판사 , 입수일자 : 2025.02.11 ]]>나쓰메 소세키,2025-02-11<![CDATA[금각사]]>일본 문학의 정수를 담은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제3권, 《금각사》
노벨문학상 후보에 세 차례나 오른 ‘작가들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남긴 탐미 문학의 절정을 만나다!
“남에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 나의 유일한 긍지였다.”
금각의 아름다움과 정반대에서 억눌려 살던 말더듬이 추남의 고뇌
탄탄한 서사, 치밀한 구성을 가능하게 한 실화의 힘
추남인 데다 말더듬이에 내성적인 성격의 주인공 미조구치는 유년 시절부터 고독한 삶을 살아왔다. 작은 절의 스님이었던 아버지는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라고 말하곤 했고, 미조구치는 추한 자신과는 정반대에 있는 ‘금각’을 미의 상징으로 여기며 남다른 애정과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그 방식은 실로 독특했다. 이제껏 아름다움에서 소외되어 있었다고 자부하던 그는, 예상치 못한 폭격이 난무하는 전쟁 상황에서 비로소 절대미의 상징인 금각과 한낱 추한 말더듬이에 불과한 자신이 동일한 존재로 거듭난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금각은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채 여전히 견고하고 빛나는 자태로 존재감을 과시했고, 미조구치는 다시 혼자가 된 기분에 휩싸이며 좌절한다.
인물들의 심리가 복잡하게 시시각각 변함에도 불구하고 구성이 치밀하고 서사가 탄탄하게 이어질 수 있던 것은, 바로 《금각사》가 1950년 일어난 방화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어 창작된 ‘시사 소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시마 유키오는 약 5년에 걸쳐 금각사 방화 사건과 범인인 하야시 쇼켄의 삶을 면밀히 취재했고, ‘인간의 소외’와 ‘미에 대한 질투’라는 하야시의 증언에 주목했다. 물론 이는 하야시 쇼켄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30대를 맞이한 미시마 유키오가 육체미 운동에 집착한 이유 역시, 허약하게 태어난 데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결국 극 중에서 미조구치가 몸의 콤플렉스로 인해 열등감에 휩싸이고, 아름다움에서 소외된 자신의 처지를 견디다 못해 금각을 파멸시키려는 일련의 과정은 작가 자신의 맨얼굴이기도 한 셈이다.
‘논란 속의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후보에 세 차례나 오른
미시마 유키오가 문학적 전환기에 써 내려간 ‘고백 소설’
‘쇼와의 귀재’라는 별명에 걸맞게, 미시마 유키오는 23년의 집필 기간 동안 180편의 소설과 60편의 희곡 그리고 막대한 분량의 수필 및 평론을 발표했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금각사》는 미시마 유키오를 당대 최고의 작가로 거듭나게 한 역작이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1957년 요미우리문학상을 수상한 데 이어, 1963년부터 1965년까지 연달아 세 차례나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일본의 문학평론가 우스이 요시미가 “이렇게 자신을 가득 채워 소설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랍다”라고 평했던 것처럼, 《금각사》는 미시마 유키오의 문학적 전환기에 쓰인 ‘고백 소설’이다. 타고난 불안 심리와 예민한 감수성에 초점을 맞춰 창작 활동을 이어온 초기와는 달리, 30대에 접어든 그는 능동적으로 ‘자기 개조를 시도’하는 육체적 지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시도가 처음 행해진 것이 《침몰하는 폭포》였고, 궁극적으로 완성된 형태를 이룬 작품이 《금각사》였다.
“나는 너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구. 이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인식이라고. 알겠냐, 다른 것들은 무엇 하나 세계를 바꾸지 못해. 인식만이 세계를 불변인 채로 그대로의 상태에서 변모시키지. 이 삶을 견디기 위해서 인간은 인식을 무기로 삼게 됐다고 할 수 있지.”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절대로 인식이 아니야”라고 나는 얼떨결에 고백에 가까운 위험을 무릅쓰고 반박했다.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행위야. 그것밖에 없어.”
-본문 중에서
극 중에서 주인공 미조구치가 안짱다리인 가시와기의 도움으로 인식의 세계에서 벗어나 ‘행위자’로 거듭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약했던 지난날의 자신을 내던지고 육체미 운동에 열중하여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작가의 의지와 맞닿아 있다. 《금각사》가 간행된 지 14년 후, 미시마 유키오는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신을 개조시키면서까지 삶을 살아내려던 그가 어쩌다 극단적인 죽음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여전히 미시마 유키오가 말년에 걸었던 행보는 짙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개인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중요한 분기점에 쓰인 《금각사》가 지닌 가치는 여전히 생생하다. 작품에는 젊은 시절의 고뇌와 더불어 극우 사상에 심취하기 전 그가 거쳤을 내적 갈등의 실마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세월의 흐름을 넘어선 감동이 있다.
마지막 한 줄까지 음미해야 하는 작품이다.” _일본 아마존 독자 서평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탐미 문학의 절정!
인간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로 그려내다
《금각사》와 미시마 유키오에 따라붙는 수식어들은 다양하지만, 그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탐미주의 문학의 대가라는 것은 모두가 합의하는 사실이다. 미시마 유키오가 말년에 걸었던 극우적 행보와는 별개로, 그의 독특한 미의식과 유려한 문장, 치밀한 구성, 섬세한 심리 묘사를 평가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의 근대 비평을 확립한 문학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는 《금각사》를 두고 “소설이라기보다 매우 아름다운 서정시”라고 극찬하며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기풍에 거듭 감탄했다. 베스트셀러 《냉정과 열정 사이》를 쓴 작가 쓰지 히토나리 역시, “《금각사》만 수십 번 넘게 읽었다”라고 말하며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미라는 관념은 천박하고 바보 같지만 국보에 방화하는 범죄 동기로는 충분할지도 모른다.
-미시마 유키오, 《누드와 복장-일기》(1959)
미시마 유키오 문학에서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는, 자신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일치시킬 수 없어 자기혐오에 빠지고 마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인 이상, 완전무결한 대상에 매료되면서도 한없이 위축되기 마련이다. 금각 같은 절대미를 선망하지만 그에 못 미치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다 끝내 우상을 파멸시키려는 미조구치나 하야시 쇼켄 같은 면모를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금각사》는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가 품은 심연을 적나라하게 내보이고 있다. 문장은 한 편의 서정시처럼 더욱 돋보이고, 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미세한 떨림이 전해질 정도로 섬세하며, 아름다움 자체를 표현할 땐 화려하지만 결코 과하지 않다. 그렇기에 출간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금각사》는, 수많은 작가들이 습작하는 ‘소설의 바이블’이자 전 세계 독자들의 감성을 건드리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탐미 문학의 걸작’으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저자 : Mishima, Yukio, ,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 입수일자 : 2025.02.11 ]]>Mishima, Yukio,2025-02-11<![CDATA[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산문]]>김금희2025-03-10<![CDATA[로스트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 :찰스 디킨스 장편소설]]>미스터리로 남은 찰스 디킨스 논란의 유작!!
과연 당신은 이 책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인가?
“이전 작품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구상과 성취의 통일은 물론이고
최상에 도달한 언어의 구조적 사용을 보여 준다.” -윌리엄 골딩
순수 문학에 추리가 절묘하게 녹아든 찰스 디킨스 문제의 유작『로스트 :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가 B612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은 이 작품은 처음부터 범인이 어느 정도 공개된다는 점에서 도서형 추리소설에 속한다. 작가는 범인의 입장에서 그의 심리를 추적하고 사건이 발생한 사회적 배경에 주목한다. 하지만 범인의 확정에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결말이 미완성으로 끝나면서 다양한 가능성들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표지화와 창작노트에 숨은 결말의 단서들!
이 다양한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 것이 바로 책의 표지화와 작가의 창작노트다. 총 12부를 예정으로 잡지에 연재 중이던 작품은 작가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6부로 막을 내린다. 결말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긴 부분이긴 하지만, 책의 표지화와 작가 사후 발견된 창작노트는 미완의 결말을 해결하는 데 새로운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표지화와 창작노트에 담긴 단서들은 독자들과 평론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그들의 호기심은 소설의 결말 해결을 위한 다양한 시도로 이어지며 수많은 논란거리를 재생산한다.* 당신은 누구를 범인으로 하고 어떤 결말을 낼 것인가!?
소설의 결말 해결을 위한 다양한 시도는 1985년 최고조에 달한다. 그해 여름, 뉴욕시 센트럴파크 야외극장에서 『로스트 :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가 뮤지컬로 공연되어 엄청난 호평을 얻는다. 이 공연이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히 또 하나의 새로운 결말을 고안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몇 명의 범인과 몇 가지의 해결을 준비해 놓고 그날 그날 관객의 투표에 따라 다른 결말을 만들어갔다는 점이다. 열린 결말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취한 이 공연은 최근까지도 그 인기를 유지하며 재공연을 거듭하고 있다. * 가장 신성한 장소에서 펼쳐지는 탐욕의 극치!
실제 영국의 로체스터에서 발생한 삼촌이 조카를 살해한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고 전해지는 이 작품은 뒤엉킨 의식의 흐름을 보여주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첫 장을 시작한다. 디킨스는 이전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술탄, 인도, 최면술, 아편 등과 같은 다소 생소한 소재들을 선보이며 악인의 극치로 평가 받는 인물 존 재스퍼를 탄생시킨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 존 재스퍼는 에드윈 드루드의 삼촌이다. 그는 성가대 지휘자로 엄격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편에 탐닉하고 조카의 약혼녀 로사를 은밀히 사랑한다. 마침내 에드윈 드루드가 사라지고 탐욕과 광기로 무장한 악의 실체가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악과 비밀이 지닌 매력을 파헤치다!
마지막 작품에서 다양한 실험을 감행한 작가는 논리와 추리로 악을 추적하고 사회적으로 지탄 받는 자의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또한 그는 건전하다고 자부하는 박애주의자들과 성직자들의 위선과 허위를 통렬히 비판한다. 선과 악의 경계는 어디쯤인가. 우리는 그 경계를 지을 수 있을까. 오히려 선과 악은 그 모습을 달리하며 우리 주변을 맴돌지도 모른다. 424 페이지 이후 당신의 결말이 기다린다. 저자 : 정의솔, , 출판사 : B612 북스 , 입수일자 : 2025.03.10 ]]>정의솔,2025-03-10<![CDATA[마스코트가 된 파랑이]]>영미2025-03-10<![CDATA[만엔 원년의 풋볼]]>■ 책 소개
일본 문학의 정수를 담은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제4권, 《만엔 원년의 풋볼》
인간의 실존을 끊임없이 고민해온 ‘시대의 지성’
오에 겐자부로의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일본의 문화와 정서가 담긴 문학을 엄선해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을 깊이 이해하자는 취지로 20년 만에 새 단장을 시작한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의 네 번째 작품이 출간된다.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자 인간의 실존을 끊임없이 고민해온 ‘시대의 지성’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의 대표작 《만엔 원년의 풋볼》이다. 시코쿠 산골 마을로 귀향한 미쓰사부로와 다카시 형제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내밀한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작품에서는 크게 세 종류의 시대가 맥을 이루며 교차된다. 시코쿠의 산골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난 1860년(만엔 원년)부터 태평양전쟁이 패배로 막을 내린 1945년, 일미안보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안보 투쟁’이 있었던 1960년을 말한다. 약 100년에 걸쳐 한 가문의 역사 그리고 폭력으로 얼룩진 근대 일본의 민낯이 오에 겐자부로 특유의 굵직한 서사와 장대한 스케일로 그려진다. 평화 헌법 수호에 앞장서며 ‘일본의 양심’으로 불리는 오에 겐자부로의 역작답게, 《만엔 원년의 풋볼》에는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한데 담겨 있다. 인간의 상처와 치유의 문제를 한 개인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차원에서 조명하며, 진정한 자기 구원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독보적인 서사와 공동체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인간을 긍정하는 휴머니즘으로 전후 일본 문학의 포문을 연 《만엔 원년의 풋볼》은 전 세계 독자들을 공명하며 출간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의미 있는 시사를 던지고 있다.
■ 출판사 서평
“나는 갈기갈기 찢겨 있다고 느꼈어요.”
100년에 걸쳐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두 형제의 ‘침묵의 외침’
장대한 스케일, 굵직한 서사로 되살아난 수치의 시대
광기의 전쟁이 패배로 막을 내린 후, ‘안보 투쟁’이 일어나 또 다른 혼돈 속에 놓인 1960년 일본. 추한 외모에 사고로 한쪽 시력을 잃은 주인공 미쓰사부로는 친구의 엽기적인 자살을 접하고는 깊은 충격에 빠진다. 그에게도 가족은 있다. 안보 투쟁에도 참여했던 전향한 학생운동가 동생 다카시, 견디기 힘든 현실을 위스키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아내 나쓰코 그리고 머리에 혹이 달린 채 태어나 보호시설에 맡겨진 아이…….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미쓰사부로는 ‘새 생활을 시작하자’는 다카시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내와 동생과 함께 시코쿠의 고향으로 떠난다. 그곳은 만엔 원년(1860년)에 농민 봉기가 일어났던 골짜기 마을이다. 100년 전 증조부 형제가 연관된 농민 봉기의 역사와 패전 직후 조선인 부락 습격으로 S 형이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 두 형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스스로를 증조부의 동생과 동일시하던 다카시는 마을의 경제권을 장악한 조선인 ‘슈퍼마켓 천황’에 대항하기 위해 풋볼 팀을 만들고, 형제의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장대한 스케일과 굵직한 서사가 돋보이는 작품인 만큼, 《만엔 원년의 풋볼》에서는 크게 세 종류의 시대가 등장한다. 시코쿠의 산골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난 1860년(만엔 원년), 태평양전쟁이 패배로 막을 내린 1945년 그리고 일미안보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안보 투쟁’이 있었던 1960년의 상황이 커다란 맥을 이루며 교차된다. 저자는 약 100년의 시대에 걸쳐 메이지유신을 앞두고 빗발쳤던 농민 항쟁과 전 세계를 비극으로 몰고 간 전쟁, 패전 후 일어난 혁명 속에서 희생된 이들의 소리 없는 비명과 고통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미쓰사부로와 다카시 형제로 이어지는 한 가문의 갈등의 역사뿐 아니라 폭력으로 얼룩진 근대 일본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만엔 원년의 풋볼》은 ‘그로테스크한 리얼리즘’ 문학으로 일찍이 자리매김했다.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전후 일본 문학의 포문을 연 거장 오에 겐자부로,
폭력과 고통으로 점철된 근대 일본을 성찰하다
《만엔 원년의 풋볼》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오에 겐자부로의 대표작이다. 소설이 발표되자마자 일본 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으며, 탐미 문학의 대가 미시마 유키오가 “전후 일본 문학의 새로운 정점이 나타났다”라고 평했을 만큼 근대 일본이 낳은 최고작으로 손꼽혔다. 1971년에는 영문 번역을 거쳐 ‘침묵의 외침(The Silent Cry)’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해외에서도 통한 작품의 인기와 그 진가를 반증하듯, 1994년 오에 겐자부로는 아시아인으로는 세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인간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불안과 실존의 문제를 섬세하게 다뤄왔다”라며 극찬했고, 시상 연설 3분의 1 이상을 《만엔 원년의 풋볼》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른 어떤 저작보다도 높이 평가했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인 명작으로 이 작품이 인정받은 데에는, 폭력이나 고통, 인간의 상처와 치유의 문제가 개인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차원에서 다뤄졌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극 중 다카시의 상처와 폭력성은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큰형의 부재 속에서 S 형의 처절한 죽음과 마주한 결과였다. 다카시가 성장한 후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스스로를 단죄하게끔 이끌었던 것도 그의 내부에서 영웅화되고 있는 그의 조상과 S 형에 대한 기억이다. 돌이켜보면 그런 영웅의 탄생은 메이지유신이라는 근대 혁명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구조의 산물인 셈이다. 작은 골짜기 마을이 다카시를 비롯해 혈기 왕성한 젊은 청년들을 폭력배로 내몰았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전쟁이라는 폭력으로 내몰았던 것이 근대 일본의 모습이었다.
만 2년 동안 우울한 준비 기간을 거치고 나서 그동안 써두었던 노트와 초고를 모두 태워 버리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도 내게 들러붙어 있는 이미지들을 모두 구겨 넣다시피 하여 《만엔 원년의 풋볼》을 썼던 것이다. 학생 작가로 일한 지 이미 10년이 지났고 정치적 과제로서 이른바 안보 투쟁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렇게 써낸 《만엔 원년의 풋볼》은 작가로서 나에게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만엔 원년의 풋볼》〈후기〉
오에 겐자부로는 전쟁의 황폐함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전형적인 전후 세대로, 국가나 공동체보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중요하다는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줄곧 ‘전후 민주주의자’를 자처하며, 일본의 무장을 제한하는 평화 헌법 제9조를 옹호하고 미국의 병참 기지였던 오키나와나 원폭 피해 지역인 히로시마에 대해 소신 있는 발언을 이어오기도 했다. 그는 구조화된 폭력과 그로 인한 고통의 실체를 깊이 천착했고, 그 고민들은 《만엔 원년의 풋볼》이라는 작품으로 집대성된다. 이를 입증하듯 《만엔 원년의 풋볼》에는 구조화된 폭력 속에 갇혀 살았던 일본인 그리고 그런 시대를 직간접적으로 관통해온 인간의 고뇌가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미시마 유키오처럼 서양에 알려진 일본 문인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오에 겐자부로의 문학이 보다 보편적으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오에 겐자부로가 빚어내는 희망과 절망의 다양한 모습을 볼 때마다,
그가 도스토옙스키의 필치를 지닌 것처럼 느껴진다.” _헨리 밀러
‘기대’라는 이름의 ‘풀로 만든 집’을 찾아서……
이 시대 최후의 휴머니스트가 남긴 회생을 위한 진혼곡
휴머니즘(Humanism), 오에 겐자부로의 문학에서 반드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긍정이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삶과 인간의 어두운 이면을 심층적으로 파고들기로 유명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을 이해하고 희망이라는 위안을 건넨다는 점에서 ‘휴머니스트’로서의 면모도 지니고 있다. 실제로 1994년 오에 겐자부로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유년 시절 《닐스의 모험》에 푹 빠졌던 일화를 소개하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나도 언젠가 새의 언어를 이해하게 될 것을 예감한다.” 여기서 ‘새의 언어’란 같은 언어를 공유하지 않는 완벽한 타자의 언어를 의미한다. 그에게 ‘새와의 소통’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절대적 타자뿐 아니라 온전히 알기 어려운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행위인 셈이다. 그러한 갈망은 오에 겐자부로가 60년이 넘는 집필 기간 동안 인간의 실존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도 글쓰기를 지속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휴머니스트로서 그의 면모가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단연 《만엔 원년의 풋볼》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순간에 직면한다. 많은 경우 죄책감과 고통스러운 나날을 견디기 어려워, 미쓰사부로처럼 곳간채에 갇혀 지내며 자신을 남들과 격리하거나 다카시처럼 악인을 자처하거나 자살 같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과연 죄의식과 고통에 휩싸인 인간에게 구원이란 없는 것일까?’ 하는 물음에 작가는 ‘기대’라는 이름의 ‘풀로 만든 집’을 찾아 다시 살기를 결심하는 미쓰사부로의 모습으로 희망의 여지를 남겨 둔다. 살면서 늘 행복이라는 결말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카시처럼 자신의 지옥을 정면에서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사람과 미쓰사부로처럼 막연히 불안하게 살아가는 존재 모두를 포용하며, ‘쥐새끼 같은’ 인간이라도 얼마든지 회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독보적인 서사와 공동체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인간을 긍정하는 휴머니즘으로 전후 일본 문학의 포문을 연 《만엔 원년의 풋볼》. 출간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을 공명하며 의미 있는 시사를 던지고 있다. 저자 : 오에 겐자부로 ,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 입수일자 : 2025.03.10 ]]>오에 겐자부로2025-03-10<![CDATA[먼 산의 기억]]>Pamuk, Orhan,2025-02-11<![CDATA[명암]]>“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이야기”
일본의 셰익스피어이자 천년의 문학가
나쓰메 소세키가 꿰뚫어 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
2016년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 기념
국내 최초 장편소설 전집(전 14권) 완간
《아사히 신문》, ‘지난 천 년간의 일본 문학자’ 투표 1위
무라카미 하루키와 강상중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
‘한국출판문화상 편집상 최종 후보’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그 우울한 청춘의 시대, 옆에서 늘 속삭이듯 말을 걸어준 것은 나쓰메 소세키였습니다”
자유를 구가하고 독립을 주장하며 자아를 내세우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왜 이렇게 다들 고독한가. 부모자식, 부부, 친척, 친구, 연인, 사제……인간관계 안에 숨어 있는 에고이즘과 고독,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을 그려낸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 봐도 선구적인 작가임이 틀림없다.
_ 강상중(도쿄대 명예교수)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전집, 국내 최초 완역 출간
“2016년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을 앞두고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전집을 차례로 펴냅니다. 단단한 번역, 꼼꼼한 편집과 디자인으로 새롭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은 깊숙한 재미와 진진한 삶의 관찰로 가득합니다. 소설을 읽고 쓰는 까닭을 기껍게 체험하게 할 ‘고민하는 힘’ 속으로,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의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 2013년 9월 전집 출간사
2013년 9월부터 출간하기 시작한 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전집이 4차분『마음』,『한눈팔기』,『명암』 출간으로 마침내 완간되었다. 일본 근대 문학의 출발, ‘소설이 없던 시절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는 근현대 일본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20세기의 대문호, 일본의 셰익스피어 등으로 불린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1,000엔권 지폐에 가장 오랫동안 그의 초상이 실려 있었고,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뒤에는 나쓰메 소세키가 있다”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작가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일본의 대표 작가이기도 하다.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 ‘국민 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 사후 100주년을 맞아 현암사에서 국내 최초로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을 완역 출간했다. 우리나라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여러 출판사를 통해 대표작에 치우쳐 중복 출간되어 왔으나 현암사에서 출간하는 소세키 소설 전집은 나쓰메 소세키가 12년 동안 집중적으로 써내려간 장편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며 ‘지금의 번역’으로 만날 수 있는 국내 첫 전집이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산시로』,『문』,『마음』,『명암』 등 우리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진 작품뿐 아니라 소세키의 연보에서도 가끔 빠져 있는 숨어 있던 소설까지 온전히 담았다. 소세키는 길지 않은 창작 기간 동안 한시, 하이쿠, 수필,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작품을 썼다. 그 작품 각각이 개성 있게 분출하는 분위기, 내용에 따른 문체 변주의 독특함 등 소세키의 작품을 고전이라 일컬음에 이론은 없을 것이다.
“필요 없는 문장은 단 한 줄도 없다”며 소세키의 문체를 생생한 우리말로 잘 살린 송태욱의 꼼꼼한 번역에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완역한 노재명의 소세키에 대한 깊은 이해가 더해져, ‘우리 시대 소세키 번역’으로 거듭났다. 또한 소세키의 작품을 온전히 지금 여기에 되살리는 작업은 송태욱(『고양이』 외 11권)ㆍ노재명(작고,『태풍』 및 『그 후』)의 필생 작업이기도 하다. 100년 전의 나쓰메 소세키에게 묻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
나쓰메 소세키는 메이지 시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지만 그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의 우리들’에게 닿아 있다. 그는 인간의 문제에 깊이 천착했고, 인간 마음속 심연까지 접근해 들어갔다. 고독과 불안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탐구로 생생한 보편성을 확보했다.
소세키는 자전적 성격이 강한 작품들을 썼고, 그의 생애가 작품처럼 드라마틱하고 비극적이었다. 그는 후처의 아들로 태어나 두 번이나 양자로 보내졌다가 양부모의 이혼으로 파양되었다. 중학생 때 어머니를 잃고, 큰형과 둘째형을 폐결핵으로 잃었으며 결혼한 뒤에는 아내가 유산의 충격으로 투신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 자신은 평생 위통을 앓았고 신경쇠약, 두통에 시달렸다.
그는 이러한 무수한 상실과 고통에 대한 기억을 작품 속에서 소름끼치도록 차분하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고통과 불행, 궁핍의 연속이고 반복임을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론 삶을 믿을 수 있기를, 불안하지 않기를 갈구했다. 성장 제일주의 사회, 군국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시대를 꿰뚫어 보고 타인의 욕망에 휩쓸리지 않는, 자유롭고도 윤리적인 ‘개인’이 되고자 한 나쓰메 소세키. 그는 “개인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시대에 고독한 영혼끼리 공명하는”(강상중) 길을 모색했고, 불안하고 나약한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끈질긴 희망을 놓지 않으며 죽을 때까지 인간을 연구했다. 『명암』
그들은 그런 긴장 관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그럴수록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기만 한다. 관계의 올가미는 점점 더 조여오기만 하고 그 올가미가 미처 풀릴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소세키는 영원히 가고 말았다. 그리고 훌쩍 백 년이 지났다.
_옮긴이의 말에서
두 사람 사이에 몇 번이나 되풀이된 과거의 장면이 쓰다에게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무렵의 기요코는 쓰다라는 이름의 한 남자를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지식을 그에게 의존했다. 온갖 의문의 해결을 그에게 요구했다. 알 수 없는 자신의 미래를 내걸고 그에게 기댄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그녀의 눈은 움직여도 조용했다. ……자신이 있기에 이 눈도 존재하는 거라는 생각까지 했다.
_본문 중에서
미완으로 끝난 『명암』은 그런 소세키의 문학적 시도의 도달점이고 그 최고봉에 위치한다고 해도 좋다. 물론 행인지 불행인지 이 작품은 미완성이고, 남겨진 형태로서는 문학적 상상력의 날개가 갑자기 닫힌 채다.
_강상중(도쿄대 명예교수)두 사람이 그리는 명(明)과 암(暗)의 세계
쓰다와 노부는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임에도 도무지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는다. 쓰다는 아내의 눈빛에 아무 이유 없이 돌연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고, 노부는 남편을 자신에게 끝없는 희생만 요구하는 ‘까다로운 남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해를, 사랑을 갈구한다. 쓰다는 쓰다대로 아집에 사로잡혀 아내는 물론이고 어릴 때 자신을 키워주다시피 한 작은아버지 일가와도 화목하지 못하고, 노부는 또 노부대로 결혼하기 전에 함께 살았던 고모네 가족에게 자기 부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그 밖에도 줄줄이 등장하는 쓰다의 옛 연인 기요코나 친척, 지인들은 모두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인정하고 인정받기 위해 고투한다. 인간의 실존을 둘러싼 문제가 응축되어 작품 전반에 긴장감이 흘러넘친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이 작품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면서 소세키는 관계의 지옥이라는 것을 작품의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펼쳐나간다.칠흑 같은 관계의 지옥 속에서
아무리 더듬거려도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절망
『명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 힘껏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다.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서로를 잘 모르면서도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즉 상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들의 욕구는 끝까지 채워지지 않는다. 소세키는 그들의 심리를 치열하게 묘사하고 감정선을 세밀하게 좇아나간다.『명암』은 다른 소세키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주인공 한 명의 심리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관점을 드러내어 다면적인 세계를 형성했다. 작품 속에서 마주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오해, 기대의 차이, 그리고 그것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들이 현대인들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고독감을 어루만진다.
『명암』은《아사히 신문》에 1915년에 연재되다가 소세키의 사망으로 미완으로 끝난 작품이다. 이후 미즈무라 미나에, 나가이 아이 등 일본의 다른 소설가들이 이어 완결 편을 쓰기도 했다. 저자 : 나쓰메 소세키 , 출판사 : 현암사 , 입수일자 : 2025.03.10 ]]>나쓰메 소세키2025-03-10<![CDATA[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미시마 유키오2025-03-10<![CDATA[바티칸에서의 아침을: 한만수 스케치 드로잉 제2시집]]>한만수2025-02-11<![CDATA[사양]]>서서히 파멸해가는 존재의 유구한 아름다움에 관하여
높이 떠올라 온 세상을 비추었다가 빛을 잃고 한 편으로 스러져가는 태양처럼 몰락해간 사람들……. 《사양》은 2차 세계대전 직후 무너져가는 귀족 집안과 시대 의식을 그린 작품이다. 초판이 출간되자마자 종전의 히트를 기록한 다자이 오사무 생전 최고의 인기작이자, 사후 출간된 《인간 실격》과 더불어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는 대표작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가즈코는 몰락한 가난한 귀족으로 남편과 헤어지고 임신 중 아이를 사산한 아픔을 지닌 스물아홉 살의 여자다. 가즈코는 이혼 후 기품있고 아름다운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 병으로 쇠약해진 어머니를 돌보며 지낸다. 남동생 나오지는 마약중독자로 집에 큰 빚을 안기고 전쟁에 나갔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소식을 알 수 없는 상태다. 가즈코와 어머니는 집안 형편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시골의 작은 집으로 이사한다. 갑작스러운 나오지의 귀환으로 조용하던 모녀의 생활에 ‘지옥 같은 나날’이 시작된다. 과거 나오지의 마약 빚을 갚느라 돈을 마련하기 바빴던 가즈코는 나오지가 스승으로 따르는 소설가 우에하라를 만나게 된다. 짧지만 강렬했던 첫 만남에서 가즈코 자신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우에하라는 가즈코가 훗날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어머니가 결핵으로 결국 세상을 떠나고 점차 삶의 의욕을 잃어가던 가즈코는 우에하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내기를 세 차례, 답장은 오지 않는다. 그를 만난 것은 6년 전으로 그것도 딱 한 번이었지만 그를 만나야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즈코는 우에하라를 다시 찾아간다.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술에 빠져 사는 우에하라를 만난 가즈코가 그의 아이를 가진 바로 이튿날 동생 나오지가 자살한다. 나오지는 가즈코에게 순수함과 고귀함이 존중받지 못하는 위선적인 세상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괴로웠던 자신의 처지를 고백하는 편지를 남긴다. 나오지의 사망 후 한 달여 산장에서 혼자 지내던 가즈코는 우에하라에게 마지막이 될 편지를 쓴다. 가즈코는 편지에서 자신이 우에하라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자신의 도덕적 혁명의 완성이라 말하면서 작품은 끝을 맺는다.
모래 속에 묻힌 사금을 추어내듯,
절망의 어둠 속에서 밝은 희망을 길어 올리는 이야기
소설의 주인공 가즈코와 남동생 나오지는 과거에 귀족으로서 누렸던 모든 지위와 특권을 잃고 몰락한 현실에 맞닥뜨려 끊임없이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해 생각한다. 작가는 이 두 사람을 통해 상실의 슬픔과 삶의 허망함을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문체로 그려낸다.
작년엔 아무 일이 없었다.
재작년엔 아무 일이 없었다.
그 전 해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
이런 재밌는 시가 종전 직후 어느 신문에 실렸는데,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 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에 공감하게도 된다. 전쟁의 추억이란 건 말하기도, 듣기도 싫다.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이 죽었는데도 진부하고 지루하다. (44~ 45쪽)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어제 함께 이야기하고 밥을 먹던 이웃이 죽어나간다. 그런데 아무 일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죽음에 무감각해졌다는 것. 삶의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고 곧 인간성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어쩌면 전쟁이 초래한 가장 큰 비극이 아닐까.
순수를 희구하던 나오지는 참혹한 전쟁을 겪고 아편 중독자가 되어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왔다. 허례허식에 젖은 예술가와 구시대 식자(識者), 귀족들에게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서도 그들과 어울려 방탕하게 생활한다. 그러다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던 작가 우에하라의 부인에게서 가식과 사심 없이 배려하는 순수한 인간성을 발견하고 탐닉한다. 죽는 순간까지 발버둥 쳤지만 결국 귀족 신분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는 자신의 결심을 밀고 나가기에 너무 나약했던 시대의 낙오자였다. 반면 가즈코는 낡은 도덕과 사상을 무시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힘든 현실을 타파하고자 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낳아 혼자서라도 키우겠다는 뜻을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이뤄 스스로 생의 씨앗을 심었다.
《사양》은 제목에서 연상되는 바와 같이 단순히 스러져가는 것, 몰락해가는 것을 주제로 한 작품이 아니다. 마치 모래 속에 묻힌 사금을 추어내듯, 진흙탕 같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자기 의지의 혁명을 꿈꾸고 이뤄나가는 아름다운 인간의 이야기다.
“혁명을 꿈꾸었던 적도 없고 사랑도 몰랐다.
우리는 이 세상 어른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다자이의 작품들을 혹평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그가 “다자이 오사무 작품 중에서 여성을 가장 탁월하게 그려낸 역작”이라며 칭찬한 작품이 바로 《사양》이다. 이처럼 《사양》은 일본의 패전과 몰락 계급의 비극적인 삶을 여성의 목소리로 그린 페미니즘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물론 이 작품이 발표된 지 70년이 넘게 흐른 데다 특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었던 당시 일본 사회상과 분위기가 작품 곳곳에 배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간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어온 현대 독자들의 감수성에 비추어본다면 이 작품을 페미니즘 작품으로 높이 칭송한 평가가 다소 퇴색되어 보일지 모른다.
도대체 나는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 혁명을 꿈꾸었던 적도 없고 사랑도 몰랐다. 지금까지 이 세상 어른들은 혁명과 사랑, 이 두 가지를 가장 어리석고 흉측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주입해, 전쟁 전이나 전시에나 우리는 배운 대로만 알고 있었는데 패전 후, 우리는 이 세상 어른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뭐든 그 사람들이 말하던 것과는 반대로 하는 것이 진정 살길이라 여기게 됐다. (…)
나는 확신하고 싶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살아왔다고. (127쪽)
희망찬 새천년을 맞이하며 지난 역사의 과오를 반성하고 평화로운 세계의 재건을 다짐했던 인류가 또다시 잔혹한 전쟁을 일으킬 거라 누가 예상했던가. 지금 우리는 시시각각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된 덕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매일 생생하게 전해 듣는다. 이란에서 한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했다는 무시무시한 사실도 안다. 그러나 쉬이 잊고, 무덤덤해지는 우리 마음은 머지않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 전 해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게 될지 모른다. “우리는 배운 대로만 알고 있었는데 패전 후, 우리는 이 세상 어른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문장은 침몰하는 배에서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마땅한 어린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말하고 제 살길만 찾았던 어른들, 축제를 즐기러 갔다가 많은 사람이 참변을 당했지만, 실은 희생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안타까운 인재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여전히 책임 회피에만 바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떠올리게 한다. “뭐든 그 사람들이 말하던 것과는 반대로 하는 것이 진정 살길이라 여기게 됐다”는 문장에 우리는 가슴 아픈 공감을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후 격변의 시기를 겪으며 불안과 암울이 만연한 일본 사회를 밝게 비추고 방황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다자이 오사무의 이 작품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독자의 가슴에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저자 : 다자이 오사무 , 출판사 : 문예출판사 , 입수일자 : 2025.03.10 ]]>다자이 오사무2025-03-10<![CDATA[슌킨 이야기]]>이번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은, 육십여 년에 이르는 문학 역정 내내 경이로운 우주를 펼쳐 보이며 왕성하게 활동한 대작가의 작품 세계를 일대기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끔 열 권의 책을 마련해 구성하였다.
다니자키의 전 작품을 예고하며 장차 싹틀 모든 맹아를 품은 데뷔작 「문신」(『소년』에 수록)부터 초기 대표작 『치인의 사랑』,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여뀌 먹는 벌레』(근간), 『요시노 구즈』, 그리고 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틴토 브라스 등 해외 거장들의 격찬을 받은 에로티시즘 문학의 절정 『열쇠』, 작가의 고유한 미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에세이집 『음예 예찬』(근간)에 이르기까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문학을 한눈에 음미할 수 있다.
한편 정교하고 우아한 문체 탓에 번역하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다니자키의 작품은,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명예 교수 김춘미 선생의 진두지휘 아래,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및 고려사이버대학교 교수진, 고단샤에서 수여하는 ‘노마 문예 번역상’에 빛나는 양윤옥 선생까지 국내 최고의 번역가들이 모여 우리말로 옮겼다. 더불어 책의 표지는 이빈소연 일러스트레이터가 총책을 맡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치명적이고 농염한 문학 세계를 독특하고 섬세한 이미지로 풀어냈다.
해당 ‘선집’ 열 권의 표지를 한데 모으면 한 폭의 병풍 그림이 되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본문은 새로 출시될 산돌정체로 디자인하여, 그야말로 읽고 보고 모으는 재미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도록 했다.
미증유의 문학 세계를 개척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나라 독서계의 폭과 깊이가 진일보하기를 바라 본다.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의 일곱 번째 권은 『순킨 이야기』다. 발표 당시, 이 작품을 마주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그저 탄식할 뿐, 더할 나위 없는 걸작”이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문학가 마사무네 하쿠초 또한 “인간의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는 작품”이라 감탄하였다.
역시나 이 소설은 작가가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천착해 온 일본 고전 미학의 정수를 구현한 작품이자 다니자키의 문학적 전회, 즉 일본 전통 문화에의 관심을 종합하는 대표작이다.
이야기의 구조 면에서도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을 뿐 아니라, 행갈이와 문장 부호, 심지어 구두점마저 생략한, 이를테면 도발적일 만큼 대담한 문체 실험을 시도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자키 문학의 핵심 주제라 할 수 있는 여성 숭배, 마조히즘, 발 페티시즘은 초지일관 중요하게 다뤄진다.
『?킨 이야기』(1933)는 소설의 화자가 모즈야 고토, 즉 ‘?킨’이라 불리는 칠현금과 샤미센의 명인을 탐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화자는 순킨의 묘소를 참배하며 그 옆에 자리한 사스케라는 인물의 묘지도 함께 둘러본다.
사스케는 화자로 하여금 ?킨의 존재를 조사하게끔 이끈 『모즈야 ?킨전』, 즉 ?킨의 일생을 기록한 책의 저자로 ?킨과는 (실질적인) 부부이자 (명목상) 사제 관계로 지내며 한평생 그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기이한 남성이다.
『?킨전』은 천부적인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순킨이 무슨 까닭으로 맹인이 되고, 어찌하여 최고의 예술가가 되었으며, 말년에 어떤 변을 겪었는지를 소상히 기록한다.
이처럼 『?킨 이야기』는 순킨을 마치 신처럼 떠받들며 오로지 그녀를 위해 기꺼이 일생을 바친 사스케의 증언과 화자의 추측만이 격자무늬처럼 교차할 뿐 어떠한 내면도, 심상도 묘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고요한 호수처럼 잠잠하게 가라앉은 이야기 속에, ?킨과 사스케의 기묘한 관계가 절절한 사랑의 향취를 풍기며 깊디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다니자키의 우주 속에서 절정의 순애보를 차지하는 소설이자, “일본 근대 소설 중 열 작품을 꼽으라 하면 반드시 들어가야 할 걸작”(나카무라 미쓰오)이라 평가받는 불세출의 작품이다. 저자 : 谷崎潤一郞 , 출판사 : 민음사 , 입수일자 : 2025.02.11 ]]>谷崎潤一郞2025-02-11<![CDATA[쓰가루]]>[옮긴이의 말]
어떻게 보면 그가 깨달았다는 ‘어설픈 쓰가루의 모습’은 자신의 존재 기반을 그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어설픈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위 문장에서 다자이는 통상적으로 긍정적인 뉘앙스로 쓰는 ‘문화’라는 말을 부정적인 뉘앙스로 반전시키고, 그에 반해 어설프고 졸렬하며 서투르기도 한 쓰가루의 모습에 긍정적인 뉘앙스를 담아 말하고 있다. 더불어, 어설프고 졸렬하며 서투른 자신의 모습 또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역설은 「쓰가루」뿐만 아니라 다른 다자이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열쇠라 볼 수 있다. ‘배신당한 청년’이자 ‘고향을 빼앗긴’ 소설가의 고독은 위와 같은 가치 기준에서 긍정적인 것이 된다. 그러한 ‘부정에의 긍정’이 있었기에 다자이는 독자를 향해, ‘살아 있다면 다음에 또 만나자. 씩씩하게 살아가자. 절망하지 마. 그럼, 이만 실례.’라는 씩씩한 인사말을 건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부정에의 긍정’은 오로지 소설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으니, 그 희망찬 인사의 근저에는 그의 고독감과 절망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작품해설 중에서) 저자 : 다자이 오사무, , 출판사 : 도서출판b , 입수일자 : 2025.03.10 ]]>다자이 오사무,2025-03-10<![CDATA[얼마나 닮았는가 :김보영 소설집]]>제5회 SF 어워드 중단편부문 대상 수상작 〈얼마나 닮았는가〉
제2회 SF 어워드 중단편부문 우수상 수상작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을 비롯, 과작(寡作)으로 소문난 김보영 작가가 10년간 쓴 주옥같은 중단편 모음집!
우주 예찬을 하고 싶어서 인간 세상에 방문한 중단편의 신
문학의 전당에는 아담한 통로가 하나 따로 나 있어야 한다. 느리지만 꾸준히 일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왔을 때 독자가 버선발로 뛰쳐나와 마중 갈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 이제 김보영의 신간이 나왔으니, 환호하며 버선발로 뛰어나갈 순간이 왔다.
여러 선집의 형식으로 출간된 김보영 작가의 다양한 단편들을 챙겨 읽은 독자들은 이 소설집이 최신작으로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로 서점 산책을 통해 책을 만나는 독자라면 쉽게 발견하지 못했을 〈엄마는 초능력이 있어〉, 〈빨간 두건 아가씨〉, 〈니엔이 오는 날〉, 〈걷다, 서다, 돌아가다〉, 〈같은 무게〉가 새롭게 읽힐 것이고, 무엇보다 여러 권의 단편 선집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값진 단편들이 한 권의 책으로 깔끔하게 묶였으니 흡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엔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수작들이 빼곡하다. 물론 일부 단편들은 수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0과 1 사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얼마나 닮았는가〉는 (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수작이라 할 수 없다. 이 세 편은 걸작이기 때문이다.
- 문목하, 소설가
[추천의 글]
우주 예찬을 하고 싶어서
인간 세상에 방문한 중단편의 신
문학의 전당에는 아담한 통로가 하나 따로 나 있어야 한다. 느리지만 꾸준히 일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왔을 때 독자가 버선발로 뛰쳐나와 마중 갈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 아마 전 세계 대부분의 애독자가 이 통로를 자신의 것으로 삼겠지만, 나는 조용히 통로 끄트머리에서 하나의 이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김보영의 신간이 나왔으니, 환호하며 버선발로 뛰어나갈 순간이 왔다.
여러 선집의 형식으로 출간된 김보영 작가의 다양한 단편들을 챙겨 읽은 독자들은 〈0과 1 사이〉, 〈고요한 시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로그스 갤러리, 종로〉, 〈얼마나 닮았는가〉와 같은 기존작이 대부분의 페이지를 차지한 이 소설집이 최신작으로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로 서점 산책을 통해 책을 만나는 독자라면 쉽게 발견하지 못했을 〈엄마는 초능력이 있어〉, 〈빨간 두건 아가씨〉, 〈니엔이 오는 날〉, 〈걷다, 서다, 돌아가다〉, 〈같은 무게〉가 새롭게 읽힐 것이고, 무엇보다 여러 권의 단편 선집에 뿔뿔이 흩어져있던 값진 단편들이 한 권의 책으로 깔끔하게 묶였으니 흡족하지 않을 수 없다.
전율을 주는 초기 중단편들이 최근 하나둘 새 판본으로 나오고 있는데, 이 책에는 그 중 〈0과 1 사이〉가 실렸다. 이 단편만 따로 뽑아내 금칠한 종이에 은으로 글자를 새겨 작은 책 한 권을 만들어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다른 단편들 사이에 섞여 비교적 겸허한 형태로 출간된 듯하다.
이 책엔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수작들이 빼곡하다. 물론 일부 단편들은 수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0과 1 사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얼마나 닮았는가〉는 (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수작이라 할 수 없다. 이 세 편은 걸작이기 때문이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독자들이 걸작을 세 편 연속으로 읽다가 과도한 희열에 충격받지 않도록 중간중간 수작을 끼워 넣은 배려가 엿보인다.
*
작가의 모든 출간작을 통틀어 상당수의 작품은 스포일러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반전과 트릭이 잘 사용되기도 하지만 꼭 반전이 있지 않아도 김보영의 작품은 사전지식 없이 깨끗한 눈으로 읽을 때 더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김보영 작품의 불가사의는 감정에 호소하는 의도적 장치를 많이 넣지 않았는데도 온갖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이 작가는 감정으로 감정을 증폭시키는 게 아니라 사건으로 감정을 북받치게 하는 방법을 잘 안다. 몇몇 걸작의 경우는 고작 삼십여 페이지를 읽는 동안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대부분의 주요한 감정을 모두 느끼게 해준다. 슬펐다가 분노했다가 감동적이었다가 애절하다가 충격적이었다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가슴이 울리는 경험을 했는데 그 엄청난 게 삼십 페이지 때문이라니 기가 찰 따름이다.
김보영은 단편 하나에 아주 많은 심상과 다양한 감정을 배치해 (두려울 정도로) 조화롭게 엮어내는 작가인데, 그 때문인지 장편보다 중단편을 더 밀도 높게 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도 바로 그 특유의 밀도를-모든 문장 한 줄 한 줄이 자기 역할을 가지고 있고, 모든 장면이 의미와 재미와 감동 중 최소 하나 이상을 품고 있는 엄청난 밀도를- 자랑한다. 거의 신기에 가까운 밀도를 보여주는 단편들과 그보다 좀 더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가볍게 쓰인 엽편들이 주는 감동과 충격은 만만치가 않다. 밀도 있는 잘 쓴 글이 주는 행복이야말로 우리가 서점을 찾고 애타게 책 사이를 누비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김보영의 작품은 우리가 책을 사랑하는 이유,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그 이유 자체가 되어준다.
*
논리정연한(그래서 아름다운) 자연적 현상을, 비논리적인(마찬가지로 그래서 아름다운) 삶의 현상과 연결 지어 그 둘이 전혀 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서로 이어진 하나의 현상임을 김보영만큼 탁월하게 이야기하는 작가는 여러 시대를 통틀어 찾기 어려울 것이다. 과학은 자연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안엔 인간도 포함되는데, 김보영이 그리는 인물들을 볼 때마다 이 사실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과학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과학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들을 보는 작가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은 인간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적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우리가 흔히 인간성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복잡한 변덕과 애정과 고뇌는 우주적 스케일로 보면 작은 과학적 현상의 하나인 것이다. 김보영의 작품에서 인간은 과학의 일부이기에 아름답다. 달리 말하자면, 무언가의 일부여야만 인간은 아름다울 수 있다. 김보영의 세상에 홀로 아름답고 홀로 고매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그리고 그것은 진실이다).
SF가 경이감을 주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그 중 특히 ‘규칙을 다르게 설정하는 것’과 ‘기준을 다르게 설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김보영은 그 둘 다 잘 쓰는 작가다. 한 작품에서 저 중 하나만 잘해도 좋은 작가인데 저 둘을 동시에 해내니 솔직히 어떤 작가라고 호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와 다른 규칙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 이곳과 다른 규칙으로 돌아가는 세상, 우리의 기준과 전혀 다른 기준이 ‘정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아주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니 심히 놀랍다. 불화하는 규칙과 기준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 그저 격랑 속에 흩어지는 게 아니라 아주 아름다운 장면으로, 그보다 더 감동적인 다음 장면으로 이어진다. 마치, 우주는 외롭고 무섭고 아름다운 곳이니 그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들 또한 외롭고 무섭더라도 한편으론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달리 무어라 더 쓸 수 있을까? 이미 완벽하게 아름다운 작품에 대고 어떤 상찬을 늘어놔봤자 넋 빠진 감탄사밖엔 안 될 것이다. 단권으로 묶이길 오매불망 기다렸던 단편들이 드디어 통일된 모습을 갖춰 출간돼서 기쁘다. 다른 초기작들도 늦지 않게 복간되어 새로이 독자들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김보영 작가가 빛나는 신간을 선물해줄 그 날을 늘 기다릴 따름이다.
- 문목하, 소설가 저자 : 김보영 , 출판사 : 아작 , 입수일자 : 2025.02.11 ]]>김보영2025-02-11<![CDATA[에도가와 란포 결정판.1]]>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의 정수
- 란포의 직계손, 란포 연구의 권위자들이 인정한 정본
- 국내판 독점 수록: 각 판본 비교분석, 첫 투고편지, 당시 신문광고 및 초판본 표지 등 희귀 화보(릿큐 대학 제공), 자작 해설, 작가 해설, 한국 독자를 위한 일본추리작가협회의 축사
일본을 미스터리 대국으로 이끈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
일본 미스터리를 접할 때 반드시 듣게 되는 이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혹은 ‘대란포(大亂步)’라고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다.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에서 착안한 필명 ‘에도가와 란포’로 평생을 추리문학에 헌신했던 그는 실로 다양한 작품을 대거 발표, 일본 문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명실공히 국민 작가가 되었다. 란포가 창조한 일본 최초의 사립탐정 캐릭터 ‘아케치 고고로’는 범행 동기와 범죄를 저지르기까지의 심리적 추론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현재까지도 독창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으며,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다카기 아키미쓰의 ‘가즈미 교스케’와 함께 일본의 3대 명탐정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란포라는 이름을 알고, 그의 소설 한두 권쯤은 읽는다. 열성적인 독자는 지금도 많아 란포의 작품은 끊임없이 새로운 장정으로 출간되고 있으며, 한 세기가 바뀐 지금도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로 재탄생되고 있다.
란포의 등장으로 당시 일부 애호가들만 즐기던 탐정소설 즉 추리소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여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는 문학 장르가 되었다. 한편 란포는 소설을 쓰는 데 그치지 않았다. 추리소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일본 최초의 추리평론집 《환영성》을 간행하는 한편, 현재 작가 곤노 빈이 대표이사로 있는 ‘일본추리작가협회’를 만들어 작가들의 권익도 살폈다. 그의 이름을 딴 ‘에도가와 란포 상’은 일본 최대 출판사인 고단샤와 후지TV의 후원 아래 신인작가의 등용문으로서 여전히 명성이 높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요코미조 세이시, 시마다 소지, 미나토 가나에 등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들이 모두 란포의 세례를 받았고, 그의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강력하다. 일본 추리문학의 기반을 닦고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평생을 바친 란포는 현재 일본이 미스터리 대국으로 발전하는 데 초석을 다진 대작가다. 란포의 직계손, 란포 연구의 권위자들이 인정한 정본
에도가와 란포의 정수를 담은 결정판 출간
란포의 위상과 인지도에 비해 국내 정식 출간된 작품은 아동, 청소년용 소설과 저작권 계약이 종료된 단편집뿐이었다. 이는 워낙 방대한 작품 수와, 탐정, 환상, SF, 호러, 통속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란포의 작풍으로 인해 기획이 쉽지 않다는 점, 일본 내에서도 다양한 판본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그러던 중 참신한 문고판으로 성공한 고분샤가 란포 연구로 명성 높은 추리 평론가들과 전문편집자, 란포 직계손의 뜻을 모아 총 30권에 이르는 《에도가와 란포 전집》을 기획, 다수가 정본으로 인정하는 판본을 출판하였다. 검은숲에서 출간되는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시리즈’는 고분샤판 《에도가와 란포 전집》을 정식 계약하여, 란포 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핵심작품을 중심으로 재기획한 것이다.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문학사적으로도 가치 있는 작품들 중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장편소설과, 작가 및 평론가, 한일 독자들이 손꼽는 최고의 단편소설을 포함한 총 4편을 엄선하였다. 일본 추리소설 권위자이자 전문번역가 권일영의 충실한 번역과 풍부한 주석으로 내실에 힘을 쏟았으며, 초판 한정으로 누드제본과 단권용 케이스를 제작, 외향적으로는 현대적인 고전미를 살렸다.
검은숲의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시리즈’는 란포의 정본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 외에도 다양한 특전이 있다. 각 작품의 초판본 표지 이미지와 당시 신문에 실린 광고, 란포가 처음으로 잡지에 원고를 투고했을 때의 친필 서신 등 희귀자료는 물론, 그동안 일본에서 출간되었던 각 판본의 정리와 차이점에 대한 설명,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한 상세한 해설을 실었다. 또한 일본 본격 추리소설의 거장 니카이도 레이토(《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권 수록)와 란포 연구에 있어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평론가 야마마에 유즈루(《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2권 수록)가 한국 독자만을 위해 새로이 집필한 ‘에도가와 란포 작가 해설’은 란포에 대한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해줄 것이다. 또한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시리즈’에는 특별히 란포가 직접 쓴 모든 판본 버전의 자작 해설을 실었는데, 이는 작가만큼 작품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란포의 자작 해설에는 창작 의도, 집필 당시 개인적 또는 역사적 환경, 에피소드 등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 독자는 작가의 생생한 고백을 통해 작품의 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란포가 창설하고 초대 대표이사를 역임했던 일본추리작가협회의 현 대표이사 곤노 빈의 한국판 출간을 축하하는 인사를 비롯, 검은숲의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시리즈’는 그야말로 란포 추리문학을 즐기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가장 결정적인 열쇠만을 담은 또 하나의 정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최초 소개되는 장편소설 《거미남》
작가, 평론가, 독자 모두 손꼽는 대표 단편소설 3선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1권에는 총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국내 최초로 번역 출간되는 《거미남》과 란포의 대표 걸작으로 이견이 없는 〈오시에과 여행하는 남자〉, 〈애벌레〉, 〈천장 위의 산책자〉가 그것이다. 《거미남》은 란포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연재한 첫 번째 장편소설로, 활극적 통속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탐정소설의 인기가 한풀 꺾였던 당시, 란포는 ‘남녀노소 두루 즐길 수 있는 소설’을 지향하는 잡지 《고단쿠라부》에 《거미남》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란포 스스로의 우려와는 달리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중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지만 란포 특유의 그로테스크함과 에로티시즘은 잃지 않았으며, 특히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던 범인 설정으로 인해 현대의 쾌락형 사이코패스나 시리얼킬러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은 마치 변사가 관객에게 이야기를 하듯 작가가 독자들에게 직접 사건과 인물을 서술하는데, 옛 소설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정겹다.
환상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작가 스스로 최고작으로 손꼽은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는 분위기, 묘사, 이야기 등 모든 면에서 낭비가 없이 뛰어나 같은 시대의 문학 소설도 능가하는 완성도를 보인다. 전쟁으로 팔다리를 잃은 남편과 아내의 기이한 애증을 다룬 〈애벌레〉는 출간 당시 일본 군부의 검열을 우려하여 소설의 상당 부분을 출판사가 임의로 삭제했는데, 이후에도 반전(反戰)소설로 낙인 찍혀 판매금지를 당한 문제작이다. 우연히 발견한 천장 위 공간에서 타인을 훔쳐보며 쾌락을 느끼는 남자를 그린 〈천장 위의 산책자〉는 란포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명탐정 아케치 고고로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수차례 영화,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작가의 모든 걸작선마다 반드시 소개되는 걸작이다.■ 내용소개
거미남 (국내 최초 공개)
연재 당시 폭발적인 인기로 잡지가 증쇄되는 등,
에도가와 란포를 대중에게 사랑받는 히트작가로 부상시킨 활극 탐정소설의 대표작.
1차례 영화화, 2차례 드라마화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천으로 만든 공예액자, ‘오시에’ 속 여인에게 반한 남자.
그는 미치광이일까 아니면 환각 속 인물일까?
에도가와 란포가 선택한 최고작 중 하나. 영어, 독어로 번역 출간된 환상소설의 걸작
애벌레
전쟁으로 팔과 다리, 청각과 언어까지 잃은 군인과
그런 남편에게 집착하는 부인의 파멸로 치닫는 애증.
그로테스크와 에로티시즘, 작가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가장 잘 묘사된 강렬한 이야기.
반전소설로 알려져 판매금지되었던 문제작
천장 위의 산책자
우연히 발견한 천장 위의 공간, 그곳에서 타인을 훔쳐보며 쾌감을 느끼는 남자의 위험한 욕망.
모든 걸작선마다 반드시 소개된 작가의 대표 단편소설.
4차례 영화화, 3차례 드라마화 저자 : 강호천난보, , 출판사 : 검은숲 , 입수일자 : 2025.02.11 ]]>강호천난보,2025-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