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 서비스 http://lib.jnue.kr/JNUE 전주교육대학교 도서관 : 최신소장자료 ko 2024-12-25T00:01:01+09:00 Copyright (c) 전주교육대학교 도서관 All right reserved <![CDATA["자유로운 정신의 공화국"과 병든 마음의 글쓰기 :18/19세기 독일 문학살롱과 낭만주의 여성작가들의 글쓰기에 관한 연구]]> 저자 : 최문규, , 출판사 : 연세대학교 출판문화원 , 입수일자 : 2024.11.26 ]]> 최문규, 2024-11-26 <![CDATA[(발견, 영감 그리고) 원의독백]]> 임승원 2024-12-09 <![CDATA[(정본완역)소동파시집.5]]> 저자 : 소식, , 출판사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입수일자 : 2024.11.26 ]]> 소식, 2024-11-26 <![CDATA[(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 :캐릭터부터 주제까지, 지브리로 배우는 마법 같은 이야기 쓰는 법]]> 이누해, 2024-12-09 <![CDATA[18세기 야담 연구]]> 저자 : 이채경, , 출판사 : 학자원 , 입수일자 : 2024.12.23 ]]> 이채경, 2024-12-23 <![CDATA[관객모독]]> 실험적 글쓰기의 대가 페터 한트케의 초기 희곡 「관객모독」은 1966년 초연 때부터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고 오늘날까지도 널리 공연되고 있다. 1960년대 정체된 독일 문단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등장한 한트케는 「관객모독」을 통해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 줌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한트케는 「관객모독」에서 시간, 장소, 행위의 통일 그리고 감정 이입과 카타르시스 같은 전통적 연극의 요소들을 뒤엎고, 내용과 형식에서 분리된 언어 자체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특히 관객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음으로써 현대 사회의 허위와 위선을 조롱하고 풍자한 마지막 부분은 이 작품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이후 한트케 문학의 출발점이 된 「관객모독」은 희곡 역사에서 가장 도발적인 작품 중 하나다.▶ 줄거리도 사건도 없는 희곡 아닌 희곡 무대 위 등장인물은 배우 넷이 전부고 극을 이끄는 줄거리나 사건은 없다. 배우들은 관객을 향해 직접 말하고 배우와 관객, 무대와 객석, 연극과 현실 사이 경계는 사라진다. 급기야 배우들은 관객들을 “여러분” 대신 “너희들”이라 부르며 거친 욕설을 퍼붓는다. 이것을 과연 희곡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관객모독」에서 배우들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아직 들어 본 적 없는 것은 여기서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본 적 없는 것은 여기서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곳 극장에 오면 늘 보았던 것을 여기서는 전혀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곳 극장에 오면 늘 들었던 것을 여기서는 전혀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17쪽) 이것은 연극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이미 일어났던 사건이 반복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는 지금이 있을 뿐입니다. 현재가 있을 뿐입니다. 오직 한 번 있을 뿐입니다.(32쪽) 연극을 보기 위해 극장에 온 관객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며 “이것은 연극이 아닙니다.”라는 과격한 말은 계속 관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보통 연극에서는 무대 위 배우들이 어떤 사건을 재연하거나 배역을 연기하고 관객들은 그것을 조용히 바라본다. 관객은 연극의 시공간을 현실 세계와 분리해서 인식하고, 연극을 관람할 때만큼은 무대 위 세계를 마치 실제 세계처럼 여기며 작품 속 사건과 인물 들에 빠져든다. 고대 그리스 이래로 서양 연극을 규정해 온 감정 이입, 카타르시스 같은 개념들은 바로 이런 상황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관객모독」에서 관객과 배우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존재하며,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사건 같은 것은 없다. 관객들은 무대 위 연기를 보는 대신 배우들이 끊임없이 쏟아 내는 말을 직접 들으며, 허구가 아닌 현실로서 새로운 연극을 ‘체험’한다.▶ 다양한 언어 실험이 돋보이는 혁신적 작품 한트케의 희곡들은 ‘언어극’이라 일컬어지며 언어를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 한트케는 「나는 상아탑에 산다」라는 글에서 연극이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거나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로 착각하게끔 하지” 않고, “오직 현실에서 쓰이는 단어와 문장”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한트케는 「관객모독」에서 어떤 사건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거나 무대 위에서 보여 주려 하지 않으며, 오직 언어에 집중한다. 여러분은 생각 없이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함께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함께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면서 여러분의 생각을 파고듭니다.(19쪽) 「관객모독」의 대사에서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대사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유사한 문장 구조와 단어 들이 반복되면서 묘한 리듬감이 생겨난다. 마치 비슷한 리듬과 박자가 반복되고 변주되는 음악처럼, 대사들은 형식을 바꿔 가며 계속 이어진다. 극 막바지에 이르러서 대사는 욕설로 바뀐다. “전쟁광들아, 짐승 같은 인간들아, 공산당 떼거리들아,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들아, 나치의 돼지들아.”(60~61쪽) 배우들은 자신들이 누군가를 겨냥해 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욕설을 말하고 이로써 청각 이미지를 만들어 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욕설 중 상당수는 독일의 나치 과거에 대한 비판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관객들에게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욕설의 의미를 하나하나 따져 볼 여유가 없다. “내 희곡은 단어와 문장으로만 구성되었고, 중요한 것은 의미가 아니라 그 단어의 다양한 사용”이라는 말처럼, 한트케는 「관객모독」에서 의미와 분리된 언어가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실험함으로써 독창적인 희곡 작법을 제시한다.▶ 파격과 실험의 미학, 한트케의 문학 세계를 잘 보여 주는 대표 희곡 「관객모독」은 1977년 국내 초연된 후 삼십여 년 동안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한국 연극계를 뒤흔들었다. 과격하고 전위적이며 논쟁적인 이 작품이 한국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고정 관념을 깨부수는 파격과 신선함 때문이었다. 안정적이고 완결된 형식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실험을 향해 나아가는 작가 한트케의 열정이 관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이다. 「관객모독」은 2012년 12월 6일 일흔 번째 생일을 맞이한 대가 한트케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문학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전통극의 형식을 뒤엎고 사회와 예술의 통념에 욕설을 퍼부음으로써 현대극에 충격을 안긴 「관객모독」은 도발과 파격 그리고 실험이라는 표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희곡이다.
저자 : Handke, Peter, , 출판사 : 민음사 , 입수일자 : 2024.11.25 ]]>
Handke, Peter, 2024-11-25
<![CDATA[그들의 말 혹은 침묵:아니 에르노 장편 소설]]> 가끔 내게 비밀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비밀은 아니다. 그것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없고,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니까. -본문에서 “내 삶에서 불가피하게 직면해야 했던 시기가 있습니다. 바로 1958년의 여름, 나의 열일곱 살 무렵 말입니다. 나는 그 시기를 사회ㆍ역사적으로 그려 내기를 바랐고, 이를테면 오토픽션의 방법으로 『그들의 말 혹은 침묵』을 썼습니다.” -아니 에르노 프랑스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이자 독보적 문체와, 사회적 영역과 개인적 체험을 가로지르는 대담한 주제 의식으로 비평적 성공은 물론, 전 세계적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아니 에르노의 초기 장편 소설 『그들의 말 혹은 침묵』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격렬한 성적 체험과 무절제한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이며 문단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단순한 열정』, 『탐닉』을 비롯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냉철하게 회고한 『남자의 자리』와 『한 여자』, 프롤레타리아 가정에서 태어난 자신의 운명과 거기서 벗어나고자 분투하는 부끄러운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 낸 『부끄러움』, 이미 한 편의 작품을 넘어 하나의 문학적 사건으로 기록된 『세월』로 프랑스 유수의 문학상과 2016년 스트레가 유럽 문학상을 석권하고, 2019년 맨부커 국제상 최종심에도 오른 ‘아니 에르노’의 이름은 우리 독자들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다. 그리고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심사 위원장을 맡았던 2021년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레벤느망」(오드리 디완 감독)도 바로 아니 에르노의 『사건』(민음사 출간)을 각색한 작품이다. 마침내 2021년, 아니 에르노는 그간의 문학적 성취에 힘입어 노벨 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점쳐지면서 또 한 번 큰 주목을 받는다. 『그들의 말 혹은 침묵』은 아니 에르노의 두 번째 장편 소설로, 작가의 초기작 중에서도 가장 실험적인 글쓰기와 문체를 선보인 독특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문학적 관심사와 주제 의식은 데뷔작 『빈 옷장』, 세 번째 장편 소설 『얼어붙은 여자』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니 에르노는 『그들의 말 혹은 침묵』에서도 여지없이 ‘여성’과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는 자신의 조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즉 문학을 통해 이 두 가지 지위(계급과 성)가 사회적 규범 속에서 어떠한 역학 관계를 가지고 표리부동하게 작동하는지를 잔인할 정도로, ‘사회학적 자기 성찰’이자 ‘문학적 사회 과학’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신랄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고 조형해 내는 ‘말’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작가의 이름을 가리고 읽어도 대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음성, 스타일을 지닌다. 이른바 ‘칼 같은 글쓰기’, ‘밋밋한(평평한) 글쓰기’라고 불리는 그것 말이다. 언젠가 “나는 경험하지 않은 것을 쓰지 않”고, “노동자 계급에 속한 부모님에게 편지를 쓸 때의 언어로 글을 쓴다.”라고 작가 스스로 밝힌 바 있듯이, 그의 독창적 문체는 주제 의식(자신의 계급과 성 정체성)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아니 에르노의 문학적 신조를 그대로 반영하듯, 이번 작품의 화자, 즉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사춘기 소녀 ‘안’의 이야기는 딱 그 시기의 언어(비속어와 은어, 준말 등), 의식의 흐름(가다듬어지지 않은 성마른 충동)을 따라서 경이로울 만큼 핍진하게 그려진다. 『그들의 말 혹은 침묵』은 바로 이러한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 그 시작과 발전 과정을 오롯이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할 뿐 아니라, 거장의 문학적 변곡점(혹은 전환점)을 목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흥미롭다. 우리 부모는 노동자니, 난 그들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여전히 지금도 교사가 되고 싶긴 하지만, 거기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늘 걱정스럽게 바라보면서, 정말 신경질 나게 해, 아버진. 맨날 책에 코를 처박고 있으면 골치가 안 아프냐? 독서가 그의 강점은 아니다. 기껏해야 지역 신문 《파리-노르망디》나 읽고 중앙 일간지 《프랑스 수아르》를 조금 읽는 정도니. 가끔, 글을 읽을 때 방심하면 입술을 우물거린다. 어쩌면 그가 옳을지도. 공부는 너무 힘들다. -본문에서 난 그가 이렇게 거칠게 행동하는 까닭이, 이를테면, 그가 다른 사람의 뒤를 이어받은 셈이어서 그러는 것임을 깨달았다. 틀림없이 그는 내내 생각했던 거였다. 난, 그가 이전에 함께 잤던 여자들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가 그러는 이유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에게 난 남자를 밝히는 여자로만, 그것 말고는 다르게 보이지 않음을 느꼈다. 숙소로 날 만나러 와. 거절했다. 돌아가는 길에, 그는 내 마음에 들었던 그 여자 교관이 자기 여자라고 말했다. 걔 귀에 아무런 말도 들어가지 않는 편이 낫겠지만, 오, 뭐, 중요하지 않아. 처음으로 남자애들과 나 사이에 무시무시한 구렁이 생겨났다. -본문에서 『그들의 말 혹은 침묵』은 사회적 성공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한 주인공 ‘안’이 작문 과제를 받으면서 시작한다. 항상 글을 쓰고 싶어 함에도 노동자 계급의 부모로부터 아무런 언어(이른바 문학적이고 교양적이며 학식 있는 언어)를 물려받지 못한 주인공은 자신이 뿌리박혀 있는 조건(경험)과 고등 교육 기관의 담론 사이에서 비틀거린다. ‘안’은 가까스로 지난 여름 방학의 기억을 길어 올린다. 부르주아와 엘리트를 경멸하는 듯 굴다가도 정작 그들에게 벌벌 떨며 동경하고 숭배하는, 노동자 계급의 삶을 딸에게 결코 대물림할 수 없다면서 발악하는 주인공의 부모는 매일같이 ‘안’을 닦달하고, 혹시나 (계급의 사다리 위에서) 삐끗할까 봐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이미 부모의 품, 그들의 언어와 사유로부터 놓여나기 시작한 ‘안’은 부모의 모순적 태도에서 연민과 염증을 느낀다. 그러던 중 성에 눈을 뜬 화자는 그동안 철저히 금지되어 있던, 그래서 더욱 간절한 자기만의 ‘쾌락’을 거머쥐고자 매 순간 골몰한다. 어느 날 ‘안’은 동네 근처의 방학 캠프에서 강사로 근무하는 대학생 무리와 어울리게 되고, 마침내 오래도록 고대해 온 성 경험을 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들(남성들)은 계급 투쟁, 소외, 해방 등 온갖 이론을 설파하며 자유연애와 육욕을 긍정하면서도 막상 ‘안(여성)’에게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일종의 물건처럼 취급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제 ‘안’의 눈앞에는 작문 과제를 적어야 할 종이 한 장이 놓여 있고, 기억 저편으로는 지난여름의 메아리가 진동하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같은 작품을 갈망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 ‘안’의 손끝, 텅 빈 백지 위에는 자신의 출신과 고등 교육 사이의 불화, 성을 둘러싼 모순과 차별만이 떠돌 뿐이다.
저자 : 에르노, 아니, , 출판사 : 민음사 , 입수일자 : 2024.11.25 ]]>
에르노, 아니, 2024-11-25
<![CDATA[기묘한 이야기들]]> Tokarczuk, Olga, 2024-11-25 <![CDATA[꿈꾸었던 동화의 나라와 작별]]> 이 책은 3권으로 구성된 책들을 1권으로 엮었다. 첫 번째는 이 책의 제목으로 「꿈꾸었던 동화의 나라와 작별」(Abschied des Tr?umers vom Neunten Land)로 사라져간 현실 : 슬로베니아에 대한 추억(1991년 6월 ‘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 분리된’ 독립국가 슬로베니아)이다. 동화의 나라, 즉 모두가 동경하는 목적지를 가리키는 말로 슬로베니아에서는 ?아홉 번째 나라?라고 말한다. 페터 한트케는 1986년에 출판된 책 『반복』에서 슬로베니아를, 특히 슬로베니아의 석회암 지대(Karst)를 자유의 땅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1991년 7월27~28일에 독일신문 〉〉쥐트도이치 차이퉁〈〈에 〈Abschied des Tr?umers vom Neunten Land〉라는 제목으로 기사화한 것을 얼마 후에 책으로 엮었다. 1991년 6월 독립국가 슬로베니아의 성립이 한트케에게 이 땅에서의 체험을 슬픔과 분노 속에서 뒤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한트케는 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 슬로베니아가 분리 독립될 때 그의 모계에 “지나간버린 현실”로 이어져오는 슬로베니아를 회상하면 「꿈꾸었던 동화의 나라와 작별」을 썼다. 페터 한트케는 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 슬로베니아가 독립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 입장을 견지한다. 슬로베니아가 독립함으로써 작은 나라가 되고 그 국민들은 2등 국민이 된다는 것이다. 거대한 유럽 속에 작은 나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한트케는 유고연방이 지속되어야 거대한 유렵 속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티토주의를 열망하고, 다시 유고연방으로 가려는 세르비아의 밀로세비치를 옹호했던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서 민족의 도살자라는 밀로세비치를 옹호했다. 그 결과 유럽과 미국에서 배척을 받았으며, 노벨문학상의 수상도 늦은 시기에 받았다. 페터 한트케는 이 책에서 자신에게 제기한 의문제기와 그에 대한 해답을 말하고 있다. “슬로베니아 국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유고슬라비아로 가는 길에서 단지 하나의 발전단계라고 이야기되어진다. 그러나 나라에서 ?독립?이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순환되는 사실을 다시 역행시킨 것은 무엇인가?” “...... 드러나는 암살의 표정과 함께, 격노한 살해 현장을 눈으로 보았던 이런 것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위 말하는 ?역사 저주?에서 탈출했던 유고슬라비아가 이제 특별한 저주를 받은 걸까?” “?지금까지의 슬로베니아 역사에서 변함없이 존재했던 것은 어머니였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언제나 잠들어 있었다. 산 내부에서, 너는 이미 알고 있다. 기껏해야 몽유병자처럼 잠깐 나타날까. 어제는 여기, 내일은 저기에. 너는 이미 알고 있다. 동화 나라의 왕을, 그리고 곧 다시 사라져 버린다. 이제 아버지가 깨어 나셨다.? 그리고 나의 동료는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 웃었다. 제네랄 레클레르 애비뉴에서 집으로 가는 동안 내내. 점점 작아지는 것은 슬로베니아 소년, 점점 많아지는 것은 그곳에 흔한 요정: ?그러나 그것이 항상 그곳 소년들의 소망이었을까??” 두 번째 책은 「도나우강, 사베강, 모리나강, 드리나강으로 겨울여행 혹은 세르비아의 정당성」(Eine winterliche Reise zu den Fl?ssen Donay, Save, Morawa und Drina oder Gerechtigkeit f?r Serbien) 한트케는 그의 부인 소피 세민 그리고 두 사람의 여행 동반자 차르코, 츨라트코와 함께 1995년 10월 말에서 약 4주에 걸쳐 자동차로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를 기점으로 세르비아를 여행했다. 여행을 하면서 문학적 수단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와 분쟁에 대한 그의 입장을 말하고 있다. 또 나라, 풍경, 사람들에 대한 그의 인상을 서술하고 있다. 텍스트의 출판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프랑스와 독일의 주요 신문은 저자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위장한 세르비아인 친구로 분류하고 스레브레니차(Srebrenica) 학살을 부인했다고 암묵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이것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스레브레니차 지역에 살고 있던 보스니아인들이 스릅스카 공화국 군대에 의해 인종 청소의 일환으로 학살당한 사건이다. 세 번째 책은 겨울여행에 대한 여름 후기(Sommerlicher Nachtrag zu einer winterlichen Reise) 한트케는 1995년 말 세르비아의 겨울여행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서술하고 있다. ** ‘발칸반도와 유고슬라비아연방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 안내’ 옮긴이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유고슬라비아연방의 역사와 현재까지의 현실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본문의 낯설은 지명 및 역사, 인물에 대해 주석을 달았다. 출판사는 독자들이 이 부분을 우선 읽은 후에 작품으로 들어가기를 요청드립니다. ----------------------------- 2019년 노벨문학상이 그에게 수여되자 미국 펜클럽(PEN America)은 "전(全)세계에 민족주의와 권위주의적 지도력, 광범위한 허위정보가 기승을 부리는 시점에, (그의 수상자 선정이) 문학계의 기대에 못 미친다"며 "노벨위원회의 문학상 선정에 깊이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1995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학살의 생존자들도 "학살을 부인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11일 문학상 선정 취소를 요구했다. 내전 피해자인 코소보 측 역시 "훌륭한 작가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노벨위원회는 하필 인종적 증오와 폭력의 옹호자를 수상자로 선정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에 대해 스웨덴 한림원의 마츠말름 사무차장은 뉴욕타임스에 노벨문학상은 "선정위원회가 문학적·미학적 기준에 따라 선정했다"며, "한림원의 권한은 문학적 우수성을 정치적 배려와 비교해 헤아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림원 일원인 안데르스 올손도 "이는 정치적인 상이 아니고 문학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트케는 "스웨덴 한림원이 그 같은 결정을 한 것은 매우 용기 있는 일"이라며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오스트리아의 뉴스 통신사 APA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작품이 이제 빛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트케와 함께 노벨문학상(2018년) 수상자로 선정된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1962~)는 한트케에 대해 "개인적으로 매우 높이 평가하는 작가"라며 치켜세웠다.
저자 : Handke, Peter, , 출판사 : 종문화사 , 입수일자 : 2024.11.25 ]]>
Handke, Peter, 2024-11-25
<![CDATA[나는 내가 결혼 못할 줄 알았어:읽으면 결혼하고 싶어지는 이야기]]> 아로치카 2024-12-09 <![CDATA[남자의 자리]]> 1984년 르노도상 수상작 "어떤 작품과도 닮지 않은 압도적인 걸작" - 패리스 매치 "감정을 억제하고 필요한 단어만으로 쓰인 강렬한 작품이자 훌륭한 문학적 성공" - 르몽드 시처럼 쓴 추억도 환희에 찬 조롱도 없을 것이다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2022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가 그리는 아버지의 삶과 죽음 "몇 시간 만에 아버지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 있었다. 오후가 끝날 무렵 방에 혼자 남겨졌다. 차양을 통과한 햇살이 장판 위로 슬며시 들어왔다. 그것은 더 이상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 퀭한 얼굴에 코만 보였다. 흐물흐물한 파란색 양복에 감싸인 그가 마치 누워 있는 한 마리의 새처럼 보였다. 눈을 커다랗게 부릅뜬 남자의 얼굴은 그가 숨을 거두자마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다시 그 얼굴조차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보편적 차원으로 확장해나가는 독보적인 글쓰기와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가 1984Books에서 출간되었다. 관계 후 남겨진 흔적을 사진 찍고 그 흔적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을 글로 적은 『사진의 용도』, 개인의 역사를 공동의 역사로 확장하며 커다란 문학적 성취를 이뤄내 프랑스 유수의 문학상과 2019년 맨부커 국제상 최종심에도 오른 대표작 『세월』, 글쓰기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밝힌 『진정한 장소』, 날 것 그대로의 폭력성을 감추지 않고 드러낸 강렬한 첫 소설 『빈 옷장』에 이어, 이번 소설 『남자의 자리』에서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의 생애를 다룬다. 아버지의 삶을 회고하며 그의 말과 제스처, 취향, 인생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 자신과 함께 나눴던 한 존재의 모든 객관적인 표적을 사실을 바탕으로 '필요한 단어'만을 사용해 옮겨 적은 이 작품은, '어떤 현대 문학과도 닮지 않은 압도적인 걸작'이라는 평과 함께 1984년 르노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설은 중등교사자격시험에 합격하고 정확히 두 달 후에 있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비명도 오열도 없이 진행되었던, '고상한 세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덤덤하게 흘러가는 장례식과 사망 이후의 형식적이고 통상적인 절차들을 끝내고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이 모든 것을 설명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작가에게 찾아온다. "아버지와 그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사춘기 시절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이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다. 계층 간의 거리나 이름이 없는 특별한 거리에 대해. 마치 이별한 사랑처럼." - 본문 중에서 『남자의 자리』 에는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의 삶이 있다. 그는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농가의 일꾼이었던 할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공장 노동자로 살다가 같은 노동자였던 어머니를 만나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한다. 노동자보단 상인이기를 원했고, 쾌활한 사람이었으나 부부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미술관 같은 곳은 가본 적이 없고, 사는 데 책이나 음악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물질적 필요에 얽매인 삶이다. 이것이 그녀가 기록한 아버지의 삶이며, 한 남자의 자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교양있는 부르주아의 세상으로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두고 왔던 유산이기도 하다. 작가는 '시처럼 쓴 추억도 환희에 찬 조롱도' 없는 '단조로운 글쓰기' 방식으로 아버지의 생애를 서술한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밝힌 ‘물질적 필요에 굴복하는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술적인 것, 무언가 〈흥미진진한 것〉 혹은 〈감동적인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글쓰기 태도는 특히 인상적이다. 인터뷰집 『진정한 장소』에서 아니 에르노는 아래와 같이 말한 바 있다. "저는 아버지가 겪은 지배에 - 실제로 - 글에 의한 지배를 더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 지배에 덧붙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사회적 참상 묘사주의 - 적대감만을 보여주기, 묘사를 비관적으로 하기 - 와 포퓰리즘 - 경제적인, 문화적인 지배에 속하는 모든 것들을 감추고 지우는, 노동자 신분의 위대함이라는 찬사를 보여주기 - 이죠. 이 양쪽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제가 생각했던 유일한 방법은, 제가 썼던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단조로운" 글쓰기였어요. 그렇지만 기사 형식의 글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었죠.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는 확인된 사실의 글쓰기, 가치에 대한 판단을 철저하게 없앤, 현실에 가장 가까운, 정서를 벗겨낸 글쓰기. 그것은 저의 것이었던, 결국 더 이상 저 자신을 분리하지 않게 된 세계의 바람과 한계를 느끼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단어만으로 아버지의 세계에 뛰어드는 일이었죠. 그렇게 남자의 자리에서는 더 이상 폭력성이 표현되지 않았어요. 말하자면 그것을 감정처럼 "억누른 거죠" - 『진정한 장소』 중에서" 그렇다면 문학적 요소를 뺀 문학의 가치는 무엇일까? "기억 속 불투명한 혹은 어두컴컴한 곳에 불을 밝히는 것, 나는 그것이 작가, 아니 에르노의 문학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그저 보여주는 것, 화자의 감정에 붙잡히지 않도록 칸막이를 없애는 것. 이 모든 것은 불투명한 인생을 밝히기 위함이다. 쓰지 않으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느 불투명한 삶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완벽한 오마주가 어디 있을까? 그녀의 글은 아버지를 향한, 그녀가 내려놓고 떠났던 세상을 향한 오마주다. 그리고 이 오마주는 예술의 편에 서 있지 않다. 삶이 먼저, 문학은 그다음이다. 삶이 문학이 되기 위해 꾸며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옮긴이의 말) 소설은 쓰지 않으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느 불투명한 삶을 구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벌어진 나와 아버지와의 거리, 계층 간의 거리 역시 드러낸다. 언제나 '두 강 사이를 건너'게 해준 '뱃사공이자, 자신을 멸시하는 세상에 자식이 속해 있다는 사실이 커다란 자부심, 심지어 존재의 이유였던 '한 아버지, 한 남자의 자리'는 다시 한번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우리 옆의 '자리'를 돌아보게 할 것이다.
저자 : Ernaux, Annie, , 출판사 : 1984books , 입수일자 : 2024.11.25 ]]>
Ernaux, Annie, 2024-11-25
<![CDATA[낮의 집, 밤의 집 :올가 토카르추크 장편소설]]> ■ 다시 떠오른 ‘별자리 소설’ 두 개의 집, 낮의 집 밤의 집 올가 토카르추크의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방랑자들』에 이어 또다시 만나게 되는 ‘별자리 소설’ 『낮의 집 밤의 집』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연대기적 흐름을 거부하고, 단문이나 짤막한 에피소드들을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빚어내는 특유의 내러티브 방식. 단편의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닌 모티브를 결합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의미를 드러내며 마치 성좌와 같이 눈앞에 펼쳐진다. 토카르추크는 『방랑자들』에서 ‘별자리 소설(Constellation novel)’이라는 새로운 모형을 통해 문학과 철학 사이를 유랑하듯 넘나들며 관계 지향적인 사유를 강조한 바 있다. 『낮의 집 밤의 집』은 토카르추크가 『방랑자들』을 쓰기 십 년 전에 쓴 작품인 만큼 작가의 서사적 기법 실험과 풍요로운 상상력의 모태가 되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책은 1998년 출간 즉시 폴란드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으며, 2002년에 권위 있는 문학상인 브뤼케 베를린 문학상을 수상했다. 과거 폴란드와 독일,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였던 실롱스크에 있는 작은 도시 노바루다. 그 도시에 접해 있는 피에트노 마을로 이주한 나는 신비로운 인물 마르타를 만나게 된다. 시간도 공간도 꿈처럼 이어져 있는 듯 살고 있는 마르타를 통해 나는 노바루다의 역사와 인물들, 그리고 콧수염을 지닌 성녀 쿰메르니스의 전설과 그 성녀의 일대기를 기록한 수도사 파스칼리스, 한 다리는 체코 땅에 한 다리는 폴란드 땅에 걸친 채 죽어간 독일인 병사의 이야기 등을 수집하게 되는데……. 『낮의 집 밤의 집』의 시간적 배경은 1990년대, 공간적 배경은 폴란드 작은 마을 피에트노와 그 주변 지역인 ‘검은 숲’, 등산로, 노바루다, 밤비에지체, 쳉스토호바 및 브로츠와프다.(폴란드와 체코 국경 지대에 위치한 노바루다는 작가가 매년 여름마다 머무는 집필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물들의 기억은 2차 세계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성녀 쿰메르니스가 살던 옛적으로 가기도 한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동행인 R과 몇 달간 노바루다에 머물며 마을과 주변인을 관찰하고, 가발을 만드는 신비로운 이웃 마르타와 교류하며 끝없는 이야기 타래로 빠져든다. 시간적 정합성 없이 파편적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에피소드들. 사실과 전설이 얽혀 있는 이 단편들은 과연 무엇을 향해 흘러가는 것일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성좌처럼 흩어진 이야기들 속에서 몇 가지 단서를 가늠케 되고, 그 단서들을 통해 연결점들을 이어 나가게 된다. 성좌의 별들을 이어 줄 모티브는 무엇일까? ■ 집, 자연, 꿈, 우주, 경험 『낮의 집 밤의 집』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집’이다. 주인공은 피에트노에 이주해 새로운 집에 거주하며 이웃을 만나고, 손님을 초대한다. 낮에는 특별할 것 없는 삶의 공간인 집, 하지만 밤이 되면 주인공은 서서히 되살아나는 이 집의 숨소리를 듣는다. 주인공의 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집은 마치 그의 내면과 같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지하실과 넓은 방, 1층과 다락방이 있는 건물로 상상한다. 집은 아무개 씨처럼 텅 비어 있기도 하고, 마렉 마렉과 에르고 숨처럼 괴물이 살면서 그 안에 함께 사는 이들을 파괴하기도 한다. 집은 마르타의 이야기처럼 낮과 밤이 혼재된 비현실적 공간이기도 하다. 소설 속 노바루다는 현실과 꿈 사이에 멈춰 있는 세상이며, 영원히 비현실적인 장소이며,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장소다. 주인공은 마르타에게 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마르타에게 우리는 각자 두 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한 실체가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하고, 주소도 없고, 건축 설계도로 영원히 남을 기회도 사라진 집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두 곳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321쪽) 언덕과 숲으로 둘러싸인 피에트노는 마치 살아 느끼는 존재와 같이 미스터리하게 묘사된다. 『낮의 집 밤의 집』에서는 ‘자연’ 또한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정원을 가꾸고 잔디를 깎거나 버섯을 따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일상적이고 목가적인 자연이다. 다른 하나는 접근하기 어렵고 꿈처럼 신비로운 자연이다. 주인공의 꿈에서 균사체가 되는 여성, 물속 괴물에 대한 아무개 씨의 이야기 속에서 이러한 자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의 변화 속에서 인물들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동시에 존재의 영원함 또한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두 개의 집이 존재하듯 두 개의 자연 또한 공존해야 한다. 낮의 집은 밤의 집이 있기에 존재하고, 낮의 자연은 밤의 자연이 있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낮이 있어야 밤을 경험하듯이 이 모든 것에는 존재함의 이유가 있다. 밤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어둡지 않다. 그 안에 하늘에서 산과 계곡으로 흐르는 부드러운 조명을 품고 있다. 지구 역시 빛을 발한다. 맨 뼈와 항아리의 광채처럼 차가운 회색빛의, 살짝 인광성이 도는 광채다. 이 희미한 빛은 낮에도, 달 밝은 밤에도, 조명이 밝게 켜진 도시와 마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진정한 어둠 속에서만 지구의 빛이 보인다. (261쪽) 두 개의 집과 두 개의 자연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모티브는 ‘꿈’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꿈을 기록하고 분석해 인터넷에 기록된 꿈과 비교한다. 주인공은 집과 마르타, 자신의 피부에 대한 꿈을 꾼다. 꿈은 주인공이 자신과 바깥세상을 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이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도 해당된다. 꿈의 모티브는 성녀 쿰메르니스의 이야기에도 등장하는데, 그녀는 환상 중 하나에서 “이 모든 혼란 속에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가 단지 삶을 꿈꾸고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정말로 살고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218쪽)라고 고백한다. 삶을 꿈꾸는 사람,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바로 낮의 집, 밤의 집이다. 그리고 우주다. 우주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주인공은 천제력을 관찰하고, R은 구름의 모양을 예측하고, 마르타는 하늘의 색을 주의 깊게 살핀다. 그들이 관찰하는 대상은 세계의 종말을 예고하는 혜성과 월식이다. 보름달은 늑대 인간 에르고 숨을 미치게 하고, 프로스트를 괴롭힌다. 누군가에게 우주는 지식의 원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신과 혼돈이 깃든 미지의 장소다. 마렉 마렉은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찾아 나서고, 파스칼리스는 성녀 쿰메르니스의 행적을 좇으며 여성성의 비밀을 탐구하고, 레프는 예언의 힘을 발견하려 하고, 주인공은 마르타의 진정한 얼굴을 알고 싶어 한다. 인간은 길을 잃고 우주에 떠 있는 수많은 행성 중 하나인 지구에 잠시 머무는 방랑자들일 따름이니까. (『낮의 집 밤의 집』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지만 이 문학적 혼동을 한 발짝 물러나서 보면, 하나의 커다란 패턴이 드러난다. 또한 독립적으로 보이는 이곳 사람들의 운명은 매우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일상의 사소한 문제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닿지 않는 사람들과도 서로 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작가는 우리의 논리적 현실이 형이상학적 실체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꿈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시도가 될 수 있을까? 마술과 같은 실제 현상은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작가가 남겨 놓은 빈자리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채워 넣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마도 가장 무의미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과 장소에도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재발견하는 존재 [민음사에서 펴낸 토카르추크의 작품들] 『방랑자들』 최성은 옮김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수상작 2008년 폴란드 니케 문학상 수상작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최성은 옮김 201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최종 후보 2009년 실롱스키 바브진 문학상 수상작
저자 : Tokarczuk, Olga, , 출판사 : 민음사 , 입수일자 : 2024.11.25 ]]>
Tokarczuk, Olga, 2024-11-25
<![CDATA[내 이름은 태양꽃]]> 낮고도 어두운 곳에 흐르는 삶의 기적 1993년에 시로, 1994년에 소설로 등단한 이후 존재의 내면에 드리운 생래적 어둠과 고독의 근원지를 집요하게 탐사하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뤄온 소설가 한강은 처음으로 선보이는 동화 『내 이름은 태양꽃』에서 어둠 속에 잠재된 빛의 실재를 조심스레 꺼내 보인다. 작가는 보잘것없는 풀 한 포기가 태양보다 밝고 빛보다 환한 꽃으로 성장하기 위해 치러내야 했던 독한 가슴앓이를 통해 상처와 절망의 극한에서 기적처럼 마주하는 생의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슬프도록 아름답게 이어지는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체에 김세현씨의 부드러운 삽화가 조화를 이룬 이번 동화는 소설가 김연수씨의 지적처럼 "어둠 속에 들어가면 누구나 묻게 되는 질문에 답하는 이야기"이며 "그 낮고도 어두운 곳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 것인지를 조용히 성찰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왜 슬퍼하지 않느냐구요? 이제는 알고 있는걸요. 나에게 꽃이 피기 전에도, 그 꽃이 피어난 뒤에도, 마침내 영원히 꽃을 잃은 뒤라 해도, 내 이름은 언제나 태양꽃이란 걸요" 어둡고 습한 담장 밑에서 어린 싹이 머리를 내미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땅속에서 나오기만 하면 환한 빛이 가득할 줄 알았던 어린 싹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어두운 빛깔뿐. 담쟁이는 부지런히 자라나서 담장을 넘어가버리고 어린 싹은 자신이 담장을 넘을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알고 고개만 수그릴 뿐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뎌 '조금' 키가 자란 싹은 "저릿저릿 잔뿌리들이 소스라치고, 이마에 홧홧 열이 올랐다가 이내 내리는" 아픔을 겪고 꽃잎을 가지게 된다. "내 꽃이 피었다구!" 기쁨은 잠시, 어린 싹에 돋아난 꽃잎은 빛깔이 없어 잠자리 날개, 해파리, 말미잘 촉수같이 투명하다. "꽃잎이 하도 이상해서, 예쁘다고는 못 하겠어. 못생겼다기보단, ……그냥 이상하게 생긴 것뿐이야." 꽃잎이 안 보이니 저녁바람은 세차게 꽃잎에 부딪히고, 나비 꿀벌 들은 꿀을 빨아먹은 뒤에 상처를 덧나게 한 후 날아가버린다. "모두, 모두! 내 앞에서 없어지란 말이에요!" 상처받은 꽃의 꿀은 더이상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지도 않게 되고 꿀은 맛을 잃어간다. 어느 날 밤, 혼자서 이를 악물고 괴로워하는 나의 귀에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담장 바로 밑에서 싹을 틔워내려고 애쓰는 작은 풀의 목소리. "애써 흙 밖으로 눈과 귀를 내밀었다 싶으면 언제나 비가 내"려 흙구멍이 막혀 한 번도 세상에 제대로 나올 수 없었던 풀. "땅속에서 눈을 뜨면, 잠깐 동안 보았던 기억이 얼마나 눈부신지 몰라. 세상에는 바람이 있고, 바람이 실어오는 냄새들이 있고, 온갖 벌레들이 내는 소리들이 있고, 별과 달이 있고 검고 깊은 밤하늘이 있잖아. 그것들이 견딜 수 없게 보고 싶어. 영원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져. (……)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해." 또다시 비가 내려 결국 세상에 나오지 못한 풀의 흔적을 보며 꽃은 이제 울지 않는다. 비에 무참히 꺾인 장미송이들과 봉숭아 맨드라미를 보면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볼품없고 흉측하고 지저분한 꽃이라고 해도 눈을 커다랗게 뜨고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 모든 것들을 생생한 눈으로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것. 처음으로 참새들의 왁자지껄한 노랫소리, 상냥한 아침바람, 부지런한 실개미들, 산바람이 실어오는 청솔 냄새, 여린 새털처럼 일렁이는 흰구름떼를 좋아하게 된 꽃은 다시 달콤한 꿀을 되찾고, 몸 어느 구석에선가 탁, 소리와 함께 성냥불 하나가 당겨진 것 같은 통증을 겪으며 꽃잎의 빛깔도 갖게 된다. 태양처럼 샛노랗고, 태양보다 눈부신 빛깔을 확인하는 그 순간 회오리바람 한줄기가 매서운 통증을 주며 스쳐 지나간다. 꽃은 자신의 찬란한 꽃잎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 황금빛 꽃가루가 산산이 흩어지는 것, 꽃받침이 떨어져나가는 것을 꼿꼿이 고개를 들고 바라본다. 이제 꽃은 안다. 꽃이 피기 전에도, 그 꽃이 피어난 뒤에도, 마침내 영원히 꽃을 잃은 뒤라 해도, 자신의 이름은 언제나 태양꽃이라는 것을. 새는 울고 꽃은 핀다. 중요한 건 그것밖에 없다.--정현종 시집 『나는 별아저씨』 중에서 "그런 것들이 있다. 아무리 절망하려야 절망할 수 없는 것들. 오히려 내 절망을 고요히 멈추게 하며, 생생히 찰랑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열어 보여주는 것들. 그리고 끈질긴 설득력으로 내게 살아 있다는 것의 기적을 가르쳐"주는 것들. 작가의 말처럼 이 동화는 극한 슬픔과 절망의 바닥에서 발견하는 '생의 기쁨'을 이야기한다. 모든 것을 무너뜨리며 동시에 모든 것을 우리 앞에 펼쳐주는 시간을 마주하고, 아픈 성장의 과정을 딛고 자신의 이름을 찾고, 아파하고 절망하는 대신 세상 모든 것을 생생한 눈으로 사랑하기. 태양꽃의 꽃잎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유는 작가가 태양꽃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검은 하늘이 얼마나 깊은지, 달빛은 얼마나 부드러운지, 밤 공기는 얼마나 촉촉하게 젖어 있는지, 이제 독자들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바라볼 차례다.
저자 : 한강, , 출판사 : 문학동네 , 입수일자 : 2024.11.28 ]]>
한강, 2024-11-28
<![CDATA[노랑무늬영원 :한강 소설집]]> 이 세계에서 끝끝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기적 같은 일에 대하여 한강 문학의 궤적을 지켜보는 기쁨 길 위에서, 가만히 매듭을 짓다 점 세 개를 이어 그린 깊은 선 하나 오늘의 한강을 있게 한 어제의 한강을 읽는다. 1993년 등단 이후 단단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줄곧 삶의 근원에 자리한 고독과 아픔을 살펴온 작가 한강, 그가 현재까지 출간한 소설집 전권(총 세 권)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재출간’이라는 무색무취한 단어보다, 빛깔도 판형도 하나하나 다른 소설집 세 권을 조심스레 이어 하나의 선 위에 두는 작업이라고 여기면 어떨까. 스물서너 살 때의 작가가 1년 동안 휘몰아치듯 썼던 단편을 모은 것이 1995년 한강의 첫 소설집이자 통틀어 첫 책인 『여수의 사랑』이다. 5년 만에 출간된 두번째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에서 한강은 “흐르는 물과 같이 변화하는 과정이 바로 나라는 평범한 진리”를 만난 듯하다가, 이내 다시 묻는다. “이 한 편 한 편의 소설들을 썼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작가의 말」) 그리고 12년이 지나 세번째 소설집 『노랑무늬영원』을 펴냈다. 그 사이사이에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이 씌어졌다. 단편은 성냥 불꽃 같은 데가 있다. 먼저 불을 당기고, 그게 꺼질 때까지 온 힘으로 지켜본다. 그 순간들이 힘껏 내 등을 앞으로 떠밀어줬다. ―「작가의 말」(2012), 『노랑무늬영원』 돌아보아야 궤적을 발견할 수 있다. 소설집 세 권이 출간되는 동안 한강 단편소설에서 변화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여수의 사랑』에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갈망을 간절하게 드러내며, 떠나고, 버리고, 방황하고, 추락하는 고독하고 고립된 존재들은 『내 여자의 열매』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세상과 서로를 서툴게 받아들이려다 어긋나버리고 상처 입는다. 그리고 『노랑무늬영원』에 이르러 재생의 의지와 절망 속에서 생명력은 더 강하게 타오른다. 존엄해진 존재는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마침내 상대를 껴안으려 시도한다. 끝내 돌아가고야 말 어딘가이자, 잎맥을 밀어 올리는 이파리, 회복기에 피어난 꽃, ‘점을 잇는’ 작업 동안 오롯이 담아내고자 했던 자연스러운 변화와 흐름은 표지에 사용된 사진작가 이정진의 작품과 조화를 이룬다. 한편 변함없는 것은 한강의 치열한 물음이 아닐까.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으며, 인간이라는 존재, 삶과 죽음, 이 세상에 대해서 스물한 편의 소설 내내 묻지만 필연적으로 답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파르스름한 불꽃 같은 그 물음 자체가, 물음에서 파생되는 고독의 열기와 세심한 슬픔이 작품 속 그들을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고 살아 있게 하는 힘이 된다. 변화했으나 변하지 않았으므로, 신중하게 소설들의 배치를 바꾸었고 몇몇 표현들을 손보았지만 두어야 할 것은 그대로 두었다. 앞서 “누구”를 묻던 『내 여자의 열매』 속 작가 자신의 물음에, 『노랑무늬영원』의 새로 씌어진 작가의 말을 이어본다. 그 궤적을 함께 되짚어보길 권한다. 누군가, 스무 해 남짓 홀로 써왔다. 한강은 여전히, 걷고 있다. 알고 있다. 이 소설들을 썼던 십이 년의 시간은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고, 이 모든 문장들을 적어가고 있었던 그토록 생생한 나 자신도 다시 만날 수 없다. 그 사실이 상실로 느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코 작별의 말이 아니어야 하고, 나는 계속 쓰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니까. ―「작가의 말」(2018), 『노랑무늬영원』 찰나의 기척과 고요한 침묵을 뜨겁게 새겨 넣은 한강의 세번째 소설집, 『노랑무늬영원』 2002년 여름부터 일곱 달에 걸쳐 쓴 중편 「노랑무늬영원」 등, 12년 동안 쓰고 발표한 일곱 편의 작품이 묶인 한강의 세번째 소설집. 수십 번 계절이 바뀌는 동안 존재의 근원과 세계를 탐문하는 한강의 온 힘과 감각이 고통 속에 혹은 고통이 통과한 자취에 머무르는 사이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등의 장편들과 긴밀하게 연결되고 조응하는 중편과 단편들이 씌어졌고 그 자취가 고스란히 담겼다. “무정하고 무기력한 자세만이 삶에 대해 내가 가진 유일한 방패”(「에우로파」)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노랑무늬영원』의 인물들에게, “어쩌면 그렇게 지치지 않지.” 묻는다면, 답할 뿐이다. “그렇지 않아. 지치지만 견디는 것뿐이야.”(「훈자」) “끈덕지고 뜨거운 그 질문들을 악물고 새벽까지 뒤척”(「회복하는 인간」)여보며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재생의 의지와 생명력은 절망 속에서 더 뜨겁게 타오른다. “내 안에서는 가볼 수 있는 데까지 다 가봤어. 밖으로 나가는 것 말고는 길이 없었어. [……] 더 이상 장례식을 치르듯 살 수 없다는 걸 알았어.”(「에우로파」) 한강의 문장은 묵직한 아픔과 고통뿐 아니라 “한순간의 빛, 떨림, 들이마신 숨, 물의 정적”을 원고 위에 재현한다. 경험과 관념을 압도하는 작가의 직관은 물감이 올올이 종이의 결 속으로 스미듯 독자인 우리에게 전해질 것이다. 자명하고 태연한 일상, 그 일상이 틀림없이 도래할 것이라는 낮은 목소리는 고통에 붙박인 어떤 마음을 달래고 있다. [……] 겹으로서 삶을 넓히고, 삶의 세목들, 그 세세히 작은 것들에까지 곁을 주어보는 마음을 북돋는 것이 문학이 아닐까. 오늘 다시 노랑무늬영원!_조강석(문학평론가)
저자 : 한강 ,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 입수일자 : 2024.11.28 ]]>
한강 2024-11-28
<![CDATA[노벨문학상 필독서 30]]> 왜 노벨문학상일까? 120년의 역사를 가진 노벨문학상은 그야말로 세계 문학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다. 노벨문학상은 수상 당시 살아 있는 사람만 받을 수 있고, 공동 수상이 가능한 다른 노벨상과는 달리 ‘단독’으로만 받을 수 있는 상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은 베스트셀러가 된 한두 작품으로 받았다는 뜻이 아니다. 오랜 기간 자기만의 문학 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해온 것은 물론이요, 동시대의 많은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는 뜻이다. 이런 노벨문학상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교양을 넓히는 것과 동시에 위대한 작가들의 생각과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려 하면 왠지 ‘노벨문학상’이라는 주는 무게감에 눌려서 선뜻 손이 가지 않고, 119명에 달하는 작가 중에 어느 작가의 작품부터 읽어야 할지 선택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수상 작가의 작품 수는 더더욱 많아 읽어야 할 것도 수십 권이다. 다 읽을 시간이 날지 가늠조차 어렵다. 이러한 현실적 고민을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책이 바로 《노벨문학상 필독서 30》이다. 이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중 먼저 꼭 읽어봐야 할 대표 작가 30인을 엄선, 그들의 대표작이자 ‘세기의 소설’을 한 권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세기의 소설 30권을 한 권에! 최고의 권위와 역사를 자랑하는 노벨문학상답게 수상자의 면면도 화려하고, 수상자의 이력도 다양하다. 저자는 우선 노벨문학상이 제정된 1901년부터 1959년까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그리고 2000년대 이후로 크게 세 시기로 나누고, 시대별로 대표 ‘소설가’ 7인, 8인, 15인을 선정, 총 30인의 작가와 그들의 대표작을 이 한 권에 정리했다. 그야말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작가와 명작들이다. 냉소와 풍자로 이상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한 조지 버나드 쇼의 《무기와 인간》, 꺾이지 않는 인간 정신을 그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인간 존재의 이유를 묻는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 보편적 질서의 전복을 꾀하는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등은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삶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문학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서로 탄탄한 인생관을 갖게 하고.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흔들림 없는 단단한 자아를 갖도록 도와준다. 차 한잔과 함께 권당 10분이면 충분하다! 깊고 심오한 뜻을 담고 있는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들이라고 해서 겁낼 것은 없다. 하루 10분,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라면 노벨문학상 수상작에 입문하기에 충분하다. 시대별로 정리했지만 어디서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관심이 가는 작가부터 훑어보면 된다. 본격적으로 작가와 작품 소개를 하기 전에 별도로 작가의 주요 이력과 작품도 함께 정리해두어 또 다른 작품도 쉽게 찾아 읽어볼 수 있다. 아울러 수상 배경부터 심사평, 작품이 주는 메시지까지 모두 담아 이 한 권으로 노벨문학상의 흐름은 물론, 흐름에 따른 시대별 이슈까지 꿸 수 있도록 했다.
저자 : 조연호 , 출판사 : 센시오 , 입수일자 : 2024.11.25 ]]>
조연호 2024-11-25
<![CDATA[녹턴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 재즈 가수가 부르는 세레나데부터 할리우드 호텔방에 울려 퍼지는 색소폰, 베네치아 광장을 메운 첼로까지 음악이 흐르는, 사랑과 세월에 관한 이야기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음악과 인생에 관한 사랑스러운 소설! 시간의 추이와, 그 여행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날아오르는 음표들에 관한 사랑스럽고도 영리한 작품. -《인디펜던트》 이 이야기들 속에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과묵함과 치밀한 내적 자기 억제가 잘 드러나 있다. -《텔레그라프》 노벨 문학상, 부커상 수상 작가이자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끌어 가는 대표적 거장 가즈오 이시구로의 단편소설집 『녹턴』이 전면적 번역 개정과 새로운 표지로 재출간되었다. 음악을 문학 속으로 끌어들여 절묘하게 녹여 낸 이 작품은, 크루너 가수가 부르는 나직한 세레나데부터 할리우드의 호텔 방에 울려 퍼지는 색소폰, 베네치아의 광장을 메운 첼로의 「대부」 테마곡까지 음악이 흐르는, 사랑과 세월에 관한 다섯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치 다섯 악장으로 이루어진 음악 작품처럼 통합적으로 구상”(《옵서버》)된 이 작품은 무엇보다 음악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인생에 대한 성찰이 빛을 발한다. 젊은 시절 한때 싱어송라이터를 꿈꾸었던 이시구로의 정체성이 내밀하게 투영된 이 책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젊은 날의 희망이 차츰 멀어질 때 음악과 인생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의 애잔한 삶을 부드럽고 정교하게 그려 낸다. ■ 음악이 흐르는, 사랑과 세월에 관한 이야기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녹턴』은 제목 그대로 “저녁이나 밤에 어울리는 감정을 나타내는 몽상적인 성격의 작품”이다. ‘녹턴’이 야상곡(夜想曲) 혹은 몽환곡이라고도 불리듯, 주인공들의 삶은 성공보다는 실패, 아침보다는 저녁 쪽에 더 가깝다. 베네치아의 어느 운하 위 곤돌라에서 한물간 크루너 가수 토니는 아내를 위해 세레나데를 부르고, 외모 때문에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색소포니스트 스티브는 성형수술을 받는다. 그런가 하면 런던의 한 플랫에서는 중년의 대학 동창들이 모여 학창 시절 그들을 매혹했던 음악을 추억한다. 성공을 꿈꾸는 젊은 싱어송라이터는 런던에서 줄곧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누나가 운영하는 시골의 카페로 내려가 노래를 만들고,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차 있던 첼리스트 티보르는 생계를 위해 이탈리아 광장 밴드에서 일하는 처지가 된다. 이들은 모두 성공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고 있지만, 절대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좇아 스스로를 부추긴다. 이탈리아의 광장에서 영국의 몰번힐스까지, 런던의 현대적 플랫에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할리우드 호텔의 보안 층까지 음악을 타고 넘나들다 보면,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려 노력하며 스스로를 치유해 가는 그들의 애잔한 삶을 엿보게 된다. 이는 “슬픔과 금욕과 위안을 결합시키는 이시구로의 독특한 방식”(《가디언》)을 통해 ‘결코 눈부시게 환하지 않지만 마냥 어둡지만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본질을 드러내며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 이시구로의 문학 세계에 대하여 다작을 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단 하나의 작품으로 명성을 떨치는 작가도 있다. 그렇다면 장편소설 6편과 소설 1편을 써 낸 50대 중반의 이시구로는 어느 쪽에 속하는 작가일까? 2009년 이시구로는 《가디언》과의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죽기 전에 써야 할 책의 숫자를 헤아릴 때가 있다.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 네 권 정도만 더 쓰면 되겠군.” 당시 7번째 작품인 이 소설을 막 발표했던 작가 입장에서 보면, 그는 평생 작품을 10여 권만 발표할 생각이고, 이미 절반 이상을 이룬 것이다. 이시구로는 한 작품 한 작품 필생의 업으로 여기며 타이핑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출간될 때마다 평단과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 왔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그의 작품들에는 몇 가지 일관된 점이 있다. 제1,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에서 추리소설, SF까지 그의 작품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지만, 장르 자체가 주는 특성들은 약한 편이다. 그보다는 인간 존재 자체에 주목하고 인간의 삶의 방식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으로 작품 전반에 음악이 흐른다. 젊은 시절 첫 소설을 발표하기 전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며 몇 군데 데모 테이프를 보내기도 했다는 이시구로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를 보내지 마』에서는 가상의 팝가수의 카세트테이프 「네버 렛 미 고」가 작품을 이끌어 가는 주요 모티프이고,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음악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들도 모두 부드럽고 정교하게 흘러가다가 책을 덮을 때쯤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잔잔한 클래식과도 같은 힘이 있다. 하지만 끊이지 않고 음악이 흐르고, 어빙 벌린, 콜 포터, 사라 본 등 수많은 작곡가와 가수들이 언급되는 이번 소설에는 이시구로의 음악에 대한 넓은 식견과 애정이 그대로 묻어 있다. 무엇보다 각 이야기의 내레이터가 모두 음악가이거나 음악을 좋아하는 남자라는 점으로 볼 때, 이 소설이야말로 작가의 정체성을 가장 내밀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저자 : 석흑일웅 , 출판사 : 민음사 , 입수일자 : 2024.11.25 ]]>
석흑일웅 2024-11-25
<![CDATA[달의 뒷문으로 가서]]> 박연미 2024-11-25 <![CDATA[당신에게 분명 좋은 일만 생길 거예요:이슬비 에세이]]> "견디면 오더라. 좋은 사람이. 좋은 순간이. 버티면 지나가고, 지나가면 오더라 좋은 날들이 삶이 너를 괴롭히더라도 슬퍼말고 불행이 너를 찾아와도 주저앉지 마라. 지금 당신에게 찾아온 힘듦과 불행도 좋은 거름이 될 뿐이다. 거센 바람에 흔들리고 차가운 비에 흠뻑 젖고, 뜨거운 햇살을 견뎌야만 마침내 싹이 돋고 그렇게 힘겹게 피어난 꽃에는 분명 열매라는 대가가 있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는 반드시 훗날 분명 누구보다 예쁜 꽃을 피울 사람이다. 그러니 좌절하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불행과 힘듦도 희망과 행복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견디고 견디면 반드시 찾아온다 좋은 사람이 좋은 순간이" "당신에게 분명 좋은 일만 생길 거예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선물받은 99.9%가 큰 감동을 했어요!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누구에게나 흔들리고, 지치고, 힘들고, 괴로운 순간들이 찾아온다. 이 책은 지금 힘듦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집필했다. 책에서는 말한다. 지금 이 힘듦도 결국 행복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지금 당장은 견디기 많이 힘들겠지만. 분명 곧 좋은일이 당신에게 생길거라고. 희망적인 메세지와 따스한 위로의 말들로 큰 힘을 준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 띠지를 제거하면 책 표지 '밑줄에' 이름을 쓸 수 있는 빈칸이 있습니다. 정말 행복했으면하는 소중한 내 사람에게 이름을 적어 선물해보세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이됩니다. 평생 잊혀지지 않는 큰 선물이 되어줄 책입니다. (소중한 내 자신의 이름을 적고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습니다) "당신에게 분명 좋은 일만 생길 거예요"
저자 : 이슬비, , 출판사 : 다담북스 , 입수일자 : 2024.12.13 ]]>
이슬비, 2024-12-13
<![CDATA[마산:김기창 장편소설]]> 김기창 2024-12-12 <![CDATA[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1]]> 김용옥 2024-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