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 서비스 http://lib.jnue.kr/JNUE 전주교육대학교 도서관 : 최신소장자료 ko 2024-12-26T00:01:01+09:00 Copyright (c) 전주교육대학교 도서관 All right reserved <![CDATA["자유로운 정신의 공화국"과 병든 마음의 글쓰기 :18/19세기 독일 문학살롱과 낭만주의 여성작가들의 글쓰기에 관한 연구]]> 저자 : 최문규, , 출판사 : 연세대학교 출판문화원 , 입수일자 : 2024.11.26 ]]> 최문규, 2024-11-26 <![CDATA[(발견, 영감 그리고) 원의독백]]> 임승원 2024-12-09 <![CDATA[(정본완역)소동파시집.5]]> 저자 : 소식, , 출판사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입수일자 : 2024.11.26 ]]> 소식, 2024-11-26 <![CDATA[(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 :캐릭터부터 주제까지, 지브리로 배우는 마법 같은 이야기 쓰는 법]]> 이누해, 2024-12-09 <![CDATA[18세기 야담 연구]]> 저자 : 이채경, , 출판사 : 학자원 , 입수일자 : 2024.12.23 ]]> 이채경, 2024-12-23 <![CDATA[나는 내가 결혼 못할 줄 알았어:읽으면 결혼하고 싶어지는 이야기]]> 아로치카 2024-12-09 <![CDATA[내 이름은 태양꽃]]> 낮고도 어두운 곳에 흐르는 삶의 기적 1993년에 시로, 1994년에 소설로 등단한 이후 존재의 내면에 드리운 생래적 어둠과 고독의 근원지를 집요하게 탐사하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뤄온 소설가 한강은 처음으로 선보이는 동화 『내 이름은 태양꽃』에서 어둠 속에 잠재된 빛의 실재를 조심스레 꺼내 보인다. 작가는 보잘것없는 풀 한 포기가 태양보다 밝고 빛보다 환한 꽃으로 성장하기 위해 치러내야 했던 독한 가슴앓이를 통해 상처와 절망의 극한에서 기적처럼 마주하는 생의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슬프도록 아름답게 이어지는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체에 김세현씨의 부드러운 삽화가 조화를 이룬 이번 동화는 소설가 김연수씨의 지적처럼 "어둠 속에 들어가면 누구나 묻게 되는 질문에 답하는 이야기"이며 "그 낮고도 어두운 곳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 것인지를 조용히 성찰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왜 슬퍼하지 않느냐구요? 이제는 알고 있는걸요. 나에게 꽃이 피기 전에도, 그 꽃이 피어난 뒤에도, 마침내 영원히 꽃을 잃은 뒤라 해도, 내 이름은 언제나 태양꽃이란 걸요" 어둡고 습한 담장 밑에서 어린 싹이 머리를 내미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땅속에서 나오기만 하면 환한 빛이 가득할 줄 알았던 어린 싹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어두운 빛깔뿐. 담쟁이는 부지런히 자라나서 담장을 넘어가버리고 어린 싹은 자신이 담장을 넘을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알고 고개만 수그릴 뿐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뎌 '조금' 키가 자란 싹은 "저릿저릿 잔뿌리들이 소스라치고, 이마에 홧홧 열이 올랐다가 이내 내리는" 아픔을 겪고 꽃잎을 가지게 된다. "내 꽃이 피었다구!" 기쁨은 잠시, 어린 싹에 돋아난 꽃잎은 빛깔이 없어 잠자리 날개, 해파리, 말미잘 촉수같이 투명하다. "꽃잎이 하도 이상해서, 예쁘다고는 못 하겠어. 못생겼다기보단, ……그냥 이상하게 생긴 것뿐이야." 꽃잎이 안 보이니 저녁바람은 세차게 꽃잎에 부딪히고, 나비 꿀벌 들은 꿀을 빨아먹은 뒤에 상처를 덧나게 한 후 날아가버린다. "모두, 모두! 내 앞에서 없어지란 말이에요!" 상처받은 꽃의 꿀은 더이상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지도 않게 되고 꿀은 맛을 잃어간다. 어느 날 밤, 혼자서 이를 악물고 괴로워하는 나의 귀에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담장 바로 밑에서 싹을 틔워내려고 애쓰는 작은 풀의 목소리. "애써 흙 밖으로 눈과 귀를 내밀었다 싶으면 언제나 비가 내"려 흙구멍이 막혀 한 번도 세상에 제대로 나올 수 없었던 풀. "땅속에서 눈을 뜨면, 잠깐 동안 보았던 기억이 얼마나 눈부신지 몰라. 세상에는 바람이 있고, 바람이 실어오는 냄새들이 있고, 온갖 벌레들이 내는 소리들이 있고, 별과 달이 있고 검고 깊은 밤하늘이 있잖아. 그것들이 견딜 수 없게 보고 싶어. 영원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져. (……)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해." 또다시 비가 내려 결국 세상에 나오지 못한 풀의 흔적을 보며 꽃은 이제 울지 않는다. 비에 무참히 꺾인 장미송이들과 봉숭아 맨드라미를 보면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볼품없고 흉측하고 지저분한 꽃이라고 해도 눈을 커다랗게 뜨고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 모든 것들을 생생한 눈으로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것. 처음으로 참새들의 왁자지껄한 노랫소리, 상냥한 아침바람, 부지런한 실개미들, 산바람이 실어오는 청솔 냄새, 여린 새털처럼 일렁이는 흰구름떼를 좋아하게 된 꽃은 다시 달콤한 꿀을 되찾고, 몸 어느 구석에선가 탁, 소리와 함께 성냥불 하나가 당겨진 것 같은 통증을 겪으며 꽃잎의 빛깔도 갖게 된다. 태양처럼 샛노랗고, 태양보다 눈부신 빛깔을 확인하는 그 순간 회오리바람 한줄기가 매서운 통증을 주며 스쳐 지나간다. 꽃은 자신의 찬란한 꽃잎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 황금빛 꽃가루가 산산이 흩어지는 것, 꽃받침이 떨어져나가는 것을 꼿꼿이 고개를 들고 바라본다. 이제 꽃은 안다. 꽃이 피기 전에도, 그 꽃이 피어난 뒤에도, 마침내 영원히 꽃을 잃은 뒤라 해도, 자신의 이름은 언제나 태양꽃이라는 것을. 새는 울고 꽃은 핀다. 중요한 건 그것밖에 없다.--정현종 시집 『나는 별아저씨』 중에서 "그런 것들이 있다. 아무리 절망하려야 절망할 수 없는 것들. 오히려 내 절망을 고요히 멈추게 하며, 생생히 찰랑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열어 보여주는 것들. 그리고 끈질긴 설득력으로 내게 살아 있다는 것의 기적을 가르쳐"주는 것들. 작가의 말처럼 이 동화는 극한 슬픔과 절망의 바닥에서 발견하는 '생의 기쁨'을 이야기한다. 모든 것을 무너뜨리며 동시에 모든 것을 우리 앞에 펼쳐주는 시간을 마주하고, 아픈 성장의 과정을 딛고 자신의 이름을 찾고, 아파하고 절망하는 대신 세상 모든 것을 생생한 눈으로 사랑하기. 태양꽃의 꽃잎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유는 작가가 태양꽃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검은 하늘이 얼마나 깊은지, 달빛은 얼마나 부드러운지, 밤 공기는 얼마나 촉촉하게 젖어 있는지, 이제 독자들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바라볼 차례다.
저자 : 한강, , 출판사 : 문학동네 , 입수일자 : 2024.11.28 ]]>
한강, 2024-11-28
<![CDATA[노랑무늬영원 :한강 소설집]]> 이 세계에서 끝끝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기적 같은 일에 대하여 한강 문학의 궤적을 지켜보는 기쁨 길 위에서, 가만히 매듭을 짓다 점 세 개를 이어 그린 깊은 선 하나 오늘의 한강을 있게 한 어제의 한강을 읽는다. 1993년 등단 이후 단단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줄곧 삶의 근원에 자리한 고독과 아픔을 살펴온 작가 한강, 그가 현재까지 출간한 소설집 전권(총 세 권)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재출간’이라는 무색무취한 단어보다, 빛깔도 판형도 하나하나 다른 소설집 세 권을 조심스레 이어 하나의 선 위에 두는 작업이라고 여기면 어떨까. 스물서너 살 때의 작가가 1년 동안 휘몰아치듯 썼던 단편을 모은 것이 1995년 한강의 첫 소설집이자 통틀어 첫 책인 『여수의 사랑』이다. 5년 만에 출간된 두번째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에서 한강은 “흐르는 물과 같이 변화하는 과정이 바로 나라는 평범한 진리”를 만난 듯하다가, 이내 다시 묻는다. “이 한 편 한 편의 소설들을 썼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작가의 말」) 그리고 12년이 지나 세번째 소설집 『노랑무늬영원』을 펴냈다. 그 사이사이에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이 씌어졌다. 단편은 성냥 불꽃 같은 데가 있다. 먼저 불을 당기고, 그게 꺼질 때까지 온 힘으로 지켜본다. 그 순간들이 힘껏 내 등을 앞으로 떠밀어줬다. ―「작가의 말」(2012), 『노랑무늬영원』 돌아보아야 궤적을 발견할 수 있다. 소설집 세 권이 출간되는 동안 한강 단편소설에서 변화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여수의 사랑』에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갈망을 간절하게 드러내며, 떠나고, 버리고, 방황하고, 추락하는 고독하고 고립된 존재들은 『내 여자의 열매』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세상과 서로를 서툴게 받아들이려다 어긋나버리고 상처 입는다. 그리고 『노랑무늬영원』에 이르러 재생의 의지와 절망 속에서 생명력은 더 강하게 타오른다. 존엄해진 존재는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마침내 상대를 껴안으려 시도한다. 끝내 돌아가고야 말 어딘가이자, 잎맥을 밀어 올리는 이파리, 회복기에 피어난 꽃, ‘점을 잇는’ 작업 동안 오롯이 담아내고자 했던 자연스러운 변화와 흐름은 표지에 사용된 사진작가 이정진의 작품과 조화를 이룬다. 한편 변함없는 것은 한강의 치열한 물음이 아닐까.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으며, 인간이라는 존재, 삶과 죽음, 이 세상에 대해서 스물한 편의 소설 내내 묻지만 필연적으로 답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파르스름한 불꽃 같은 그 물음 자체가, 물음에서 파생되는 고독의 열기와 세심한 슬픔이 작품 속 그들을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고 살아 있게 하는 힘이 된다. 변화했으나 변하지 않았으므로, 신중하게 소설들의 배치를 바꾸었고 몇몇 표현들을 손보았지만 두어야 할 것은 그대로 두었다. 앞서 “누구”를 묻던 『내 여자의 열매』 속 작가 자신의 물음에, 『노랑무늬영원』의 새로 씌어진 작가의 말을 이어본다. 그 궤적을 함께 되짚어보길 권한다. 누군가, 스무 해 남짓 홀로 써왔다. 한강은 여전히, 걷고 있다. 알고 있다. 이 소설들을 썼던 십이 년의 시간은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고, 이 모든 문장들을 적어가고 있었던 그토록 생생한 나 자신도 다시 만날 수 없다. 그 사실이 상실로 느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코 작별의 말이 아니어야 하고, 나는 계속 쓰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니까. ―「작가의 말」(2018), 『노랑무늬영원』 찰나의 기척과 고요한 침묵을 뜨겁게 새겨 넣은 한강의 세번째 소설집, 『노랑무늬영원』 2002년 여름부터 일곱 달에 걸쳐 쓴 중편 「노랑무늬영원」 등, 12년 동안 쓰고 발표한 일곱 편의 작품이 묶인 한강의 세번째 소설집. 수십 번 계절이 바뀌는 동안 존재의 근원과 세계를 탐문하는 한강의 온 힘과 감각이 고통 속에 혹은 고통이 통과한 자취에 머무르는 사이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등의 장편들과 긴밀하게 연결되고 조응하는 중편과 단편들이 씌어졌고 그 자취가 고스란히 담겼다. “무정하고 무기력한 자세만이 삶에 대해 내가 가진 유일한 방패”(「에우로파」)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노랑무늬영원』의 인물들에게, “어쩌면 그렇게 지치지 않지.” 묻는다면, 답할 뿐이다. “그렇지 않아. 지치지만 견디는 것뿐이야.”(「훈자」) “끈덕지고 뜨거운 그 질문들을 악물고 새벽까지 뒤척”(「회복하는 인간」)여보며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재생의 의지와 생명력은 절망 속에서 더 뜨겁게 타오른다. “내 안에서는 가볼 수 있는 데까지 다 가봤어. 밖으로 나가는 것 말고는 길이 없었어. [……] 더 이상 장례식을 치르듯 살 수 없다는 걸 알았어.”(「에우로파」) 한강의 문장은 묵직한 아픔과 고통뿐 아니라 “한순간의 빛, 떨림, 들이마신 숨, 물의 정적”을 원고 위에 재현한다. 경험과 관념을 압도하는 작가의 직관은 물감이 올올이 종이의 결 속으로 스미듯 독자인 우리에게 전해질 것이다. 자명하고 태연한 일상, 그 일상이 틀림없이 도래할 것이라는 낮은 목소리는 고통에 붙박인 어떤 마음을 달래고 있다. [……] 겹으로서 삶을 넓히고, 삶의 세목들, 그 세세히 작은 것들에까지 곁을 주어보는 마음을 북돋는 것이 문학이 아닐까. 오늘 다시 노랑무늬영원!_조강석(문학평론가)
저자 : 한강 ,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 입수일자 : 2024.11.28 ]]>
한강 2024-11-28
<![CDATA[당신에게 분명 좋은 일만 생길 거예요:이슬비 에세이]]> "견디면 오더라. 좋은 사람이. 좋은 순간이. 버티면 지나가고, 지나가면 오더라 좋은 날들이 삶이 너를 괴롭히더라도 슬퍼말고 불행이 너를 찾아와도 주저앉지 마라. 지금 당신에게 찾아온 힘듦과 불행도 좋은 거름이 될 뿐이다. 거센 바람에 흔들리고 차가운 비에 흠뻑 젖고, 뜨거운 햇살을 견뎌야만 마침내 싹이 돋고 그렇게 힘겹게 피어난 꽃에는 분명 열매라는 대가가 있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는 반드시 훗날 분명 누구보다 예쁜 꽃을 피울 사람이다. 그러니 좌절하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불행과 힘듦도 희망과 행복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견디고 견디면 반드시 찾아온다 좋은 사람이 좋은 순간이" "당신에게 분명 좋은 일만 생길 거예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선물받은 99.9%가 큰 감동을 했어요!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누구에게나 흔들리고, 지치고, 힘들고, 괴로운 순간들이 찾아온다. 이 책은 지금 힘듦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집필했다. 책에서는 말한다. 지금 이 힘듦도 결국 행복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지금 당장은 견디기 많이 힘들겠지만. 분명 곧 좋은일이 당신에게 생길거라고. 희망적인 메세지와 따스한 위로의 말들로 큰 힘을 준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 띠지를 제거하면 책 표지 '밑줄에' 이름을 쓸 수 있는 빈칸이 있습니다. 정말 행복했으면하는 소중한 내 사람에게 이름을 적어 선물해보세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이됩니다. 평생 잊혀지지 않는 큰 선물이 되어줄 책입니다. (소중한 내 자신의 이름을 적고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습니다) "당신에게 분명 좋은 일만 생길 거예요"
저자 : 이슬비, , 출판사 : 다담북스 , 입수일자 : 2024.12.13 ]]>
이슬비, 2024-12-13
<![CDATA[마산:김기창 장편소설]]> 김기창 2024-12-12 <![CDATA[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1]]> 김용옥 2024-12-09 <![CDATA[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2]]> 김용옥 2024-12-09 <![CDATA[문학이 정의를 말하다 :동아시아 고전 속 법과 범죄 이야기]]> 시적 정의 법에도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법이 존재하는 어느 사회에서든 정의는 법의 이상이자 목적이다. 정의에 이르는 길은 당연히 법전에 명시되어 있곤 했다. 사람들도 보통은 법전이 정의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지도와 같을 거라 기대한다. 그런데 그 지도가 지극히 추상적이거나 난해하여 전문가들조차 해독하기 어려울 정도라면, 우리는 어떻게 정의를 찾아가야 하는가. 법의 지나친 형식주의는 종종 진정한 정의 실현을 가로막는 모순적 현실을 낳고 만다. 알다시피 누스바움은 자신의 저서 『시적 정의: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Poetic Justice: The Literary Imagination and Public Life)』에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았었다. ‘시적 정의’란 원래 선과 악을 상징하는 대립적 인물들의 대결 구도 속에서 선이 궁극적 승리를 거두는 ‘문학적(허구적) 정의’를 가리킨다. 딱히 법의 문학적 재현만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좀 더 폭넓게 문학과 도덕의 관계 혹은 문학의 윤리적 기능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동아시아에서 흔히 사용되던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라는 말을 여기에 대응되는 표현으로 생각한다면, 동아시아 고전들 속에서 그 풍부한 사례를 발견해볼 수 있는 개념이다. 누스바움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소설이나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시를 예로 들어 문학적 상상력이 합리적 감성과 도덕적 분별력을 키워주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며, 법의 영역에서 문학이 수행할 수 있는 공적 기능에 주목한다. 개인 앞에 굳게 닫힌 ‘정의로 가는 문’을 여는 것은 절대적 공정성을 추구하는 법이 아니라, 법과 현실, 이성과 감성의 복잡 미묘한 상호작용에 주목함으로써 끊임없이 법의 영역에 개입하고 그 경계 허물기를 시도하는 문학이라는 것이다. 문학, 정의로 가는 문 이 책은 법과 문학적 상상력의 관계에 대한 누스바움의 성찰에 계발 받아, 유교적 예치이념에 바탕을 둔 동아시아의 사법전통이 일찍이 문학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 사실에 주목한다. 근대 이전 동아시아에서는 디킨스의 소설 같은 리얼리즘 소설이 발달하지 않았듯, 법치 전통 또한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지만, 이 책은 그 인식이 편견에 불과함을 증명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동아시아 사회는 공자(孔子) 이래로 예와 법의 조화를 끊임없이 추구해왔으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논의들을 방대한 양의 기록으로 남겼다. 여기에는 판례집 같은 사실적 기록뿐만 아니라 범죄소설 같은 허구적 기록도 포함된다. 이렇게 다양한 고전 텍스트들을 통해 동아시아 사법전통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은 서구화된 우리 사회에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전통법의 영향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저자는 정의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문으로서의 문학을 주제로 첫 장을 연다. 문학-특히 소설이나 드라마-은 법의 권위적인 언어를 일상 언어로 대체하고, 등장인물들이 처한 구체적 상황 속에서 정의 실현의 당위성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바로 이것이 시적 정의이며, 이런 식으로 법과 문학의 긴밀한 관계는 형성되어왔다. 제1장에서는 법과 문학의 긴밀한 관계에 주목한 누스바움의 논의를 먼저 소개하고, 그다음 일찍이 법과 문학의 상호작용에 주목한 동아시아의 법문화를 비교하여 소개한다. 요컨대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는 불평등한 신분질서와 전제적 지배체제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공정성의 가치를 중시했다. 수많은 법 이야기와 ‘정의의 서사’가 축적되고 수용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다양한 정의의 서사들이 현재 우리가 ‘법감정’이라고 부르는 것의 문화적 기원이나 일종의 자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향후의 논의를 이끌어가는 주요 모티프가 된다. 유교와 정의 제2장은 동아시아 시적 정의의 배경이 된 유교적 법문화의 역사를 살펴본다. 동아시아에서 강력한 통치 수단으로서의 법 또는 법치 개념은 온전히 법가사상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법률의 기원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 아울러 법이 필요악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관념 또한 법의 기원만큼이나 오래되었다. 동아시아에서 법은 곧 형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런즉 법가가 추구했던 강압적인 법치에 대한 반대와 저항은 컸다. 예컨대 진(秦)이 무너진 후 천하를 통일한 한(漢)이 유교를 국시(國是)로 천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후 법의 도덕적 보완은 필연적인 과정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따라서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내세운 중국과 한국 등 전근대 동아시아 국가에선 국왕을 비롯한 지배층의 그 누구도 법치를 내세우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법의 중요성을 몰각하거나 부정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성왕(聖王)’의 모범을 따르는 군주일수록 유교이념을 반영한 법전의 정비에 힘썼다. 이른바 ‘법률의 유교화’나 ‘정(情)ㆍ리(理)ㆍ법(法)[인정ㆍ천리ㆍ국법]의 조화’ 현상은 법조문의 개정이나 법전 편찬처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현상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시대적 변화에 따르는 다양한 사회적 요청을 수용한 결과였다. 따라서 이는 한층 복잡하고 다층적인 상호작용을 반영한 현상이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더구나 전근대 동아시아에서는 근대 서구의 법과대학처럼 체계적인 연구와 교육을 담당한 기관도 없었고, 현대의 변호사처럼 법률이나 소송문제를 조언해줄 전문가도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어쩌면 이러한 이유로 ‘법서(法書)’로 분류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책들은 ‘정리의 책[情理之書]’이라 불릴 만큼 법과 도덕의 중간 지점을 고민하기도 하고, 어떤 책들은 구체적 사례들 속에서 실용적 대안을 찾기도 했다. 바로 이 책들이 유교적 법문화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해온 정의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다양한 해답을 제공한다. 통치 시스템에서 유교윤리가 명백한 우위를 차지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법과 윤리, 법치와 예치의 모순과 충돌은 끊임없이 발생했고, 그 균형점 찾기는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었다. 이 모순을 좀 더 원만하게 해결하는 방안으로서 법과 문학의 상호작용은 오히려 우리 시대보다 훨씬 더 활발했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유교적 법문화는 법과 윤리의 긴밀한 상호작용, 즉 법의 도덕성을 적극적으로 추구했으며, 법과 문학의 관계를 대립적이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여겼다. 문학이 법의 도덕적 보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범죄소설의 탄생 제3장에서는 다시 문학사의 영역으로 돌아가 오늘날의 범죄소설인 공안(公案)소설 및 송사(訟事)소설을 비롯한 다양한 서사 장르들의 탄생과 진화를 살펴본다. 여기서 우리는 법과 문학의 느슨한 경계와 상호작용이 특징인 동아시아 범죄소설의 역사를 단선적 진화의 과정으로 설명하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공안소설의 서사는 단순히 오락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의의 문제를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포함해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다룸으로써 윤리적 설득을 가능하게 했다. 정의를 보편적 문제로 다룸으로써 독자로부터 누스바움이 그토록 강조했던 ‘공감’을 끌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공안소설의 법 이야기가 갖는 주요한 특징이었다. 아울러 저자는 삽화가 있는 공안소설의 형식에도 주목한다. 텍스트의 구체적 내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간명하게 재현해낸 삽화들에 대한 분석은 당시 독서관습이나 출판문화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관점들을 제시해준다. 삽화 판화는 다양한 독자층의 요구와 독자층의 수준에 따라 계층화된 독서 과정을 면밀하게 고려한 장치였다. 삽화를 삽입할지 말지, 어떤 형식의 삽화를 삽입할지, 삽화의 기능성과 예술성 중 어떤 것을 우선할지 등등의 다양한 문제들을 결정하는 것은 그 책이 궁극적으로 어떤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는가에 달려 있었다. 이는 목판 삽화의 생산이 상업적인 인쇄문화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인쇄문화가 궁극적으로 지식의 확산과 대중화에 큰 역할을 맡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배이념의 확산을 통해 민중 통제를 강화하는 역할도 했다고도 밝혀둔다. 동아시아의 시적 정의: 명판관의 탄생 제4장은 동아시아에서 명판관 포공(包公)을 주인공으로 한 공안소설인 『포공안(包公案)』에 대한 텍스트 분석(close reading)이다. 포공은 송(宋) 인종 때 청관으로 유명했던 실제 인물 포증(包拯)을 모델로 삼고 있다. 원(元)의 잡극 속에서 포공은 황제에게 부여받은 막강한 권한을 당당히 과시한다. 그는 이 권한을 법외의 존재인 양 횡포를 일삼는 가증스러운 권력자를 가차 없이 처단하는 데 쓴다. 그러나 실제로 포증에게 그런 권한이 주어진 적은 없었으며, 황제를 제외하고 포증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그런 권한을 누린 재판관으로 중국 역사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 이 막강한 권한을 지닌 공명정대한 재판관을 창조한 이는 바로 정의를 열망한 민중들이었다. 11세기부터 현재까지 거의 천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포공 이야기는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었고, 동아시아로 확대된 서적시장을 통해 한국과 일본에까지 퍼져나갔다. 저자는 이토록 오랫동안 광범위한 인기를 누린 범죄소설의 주인공은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단연코 포공 외에는 없었다고 말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포공의 정의는 구시대적이고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어 빠르게 잊히고 사라진 것 같지만, 동아시아 문학 전통 속에서 시적 정의가 어떻게 상상되고 구현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면, 포공을 주인공으로 한 공안소설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학으로서의 법: 법 이야기 제5장에서는 법 이야기 또는 법문학(legal literature) 장르의 대표적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당시 유교적 법문화가 추구했던 법과 윤리의 균형, 즉 유교적 정의의 실체는 무엇이었는지 살펴본다. 판례사 장르로서 동아시아에 널리 읽힌 『당음비사(棠陰比事)』와 조선 시대 대표적인 판례집이자 법학서인 『흠흠신서(欽欽新書)』 그리고 독특한 법 이야기인 「와사옥안(蛙蛇獄案)」 등이 주요 분석 텍스트들이다. 먼저 짚어보자면, 『당음비사』는 정ㆍ리ㆍ법의 복합적 상호작용에 주목함으로써 단순한 도덕적 우화의 수준을 넘어서는 작품이며, 『흠흠신서』는 법정진술이나 재판관의 심리와 법리적 분석, 판결 내용 등을 고스란히 기록해나가면서 진실의 수사학을 발휘해낸 작품이다. 또 「와사옥안」은 허구와 사실을 가르는 희미한 경계선마저 허물고, 법과 문학의 영역을 대담하게 넘나드는 작품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와사옥안」에서 ‘분별 있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시종일관 검험절차의 공정성을 추구한 섬진별장의 모습이 그 어떤 정의의 영웅보다 인상적이라고 평가한다. 실존 인물이든 허구적 인물이든 재판관은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한 채 자신의 권위를 남용하여 또 다른 불의를 초래하는 현실과 현격히 구분되고, 어쩌면 그런 불합리한 현실을 은연중 비판하기 때문이다. 즉, 「와사옥안」이 주목한 것은 법질서와 서사적 질서가 일치하는 ‘법적 스토리텔링’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와사옥안」이 재현한 ‘절차적 정의’는 법의 이름으로 공공연히 자행되는 제도적 폭압과 권위주의를 완벽하게 무력화시킨다. 한국문학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이 우화소설에 저자가 크게 감동하게 되는 이유는 여기서 자생적인 근대적 법의식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이상 제4장과 제5장의 촘촘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 독자는 동아시아에서 생산된 다양한 층위의 법 이야기가 법문화의 대중적 확산에 의미 있게 기여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문학으로의 회귀 지금 우리 사회엔 정의를 향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오랫동안 팽배했던 법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소망하듯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정의에 대한 법학적ㆍ정치적 성찰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인문학적 재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을 통해 확인되듯이 문학이 법과 정의의 재현에 주목한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이 사회정의 혹은 불의의 재현에 기울인 관심은 지극히 크고 본질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학으로서의 법 또는 법 이야기라는 개념이 어색하고 낯설다면, 문학 또한 제도와 관습, 사회권력, 경제적 이익 등에 영향 받는 사회적 관행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보라고 저자는 채근한다. 문학의 개념이나 사회적 역할 또한 역사적으로 크게 변화되어왔다. 오늘날 문학은 실용 학문이나 법학이나 정치학 같은 사회과학과도 구분되는 예술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근대 이전에는 그 인식론적 경계가 훨씬 불분명하고 느슨했다. 더구나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문학에 포괄적인 사회적 역할이 요구되었고, 따라서 법과 문학의 느슨한 경계와 적극적인 상호 영향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권장되었다. ‘법적 정의가 불가능한 곳에선 시적 정의가 재구성된다’는 것을, ‘인간에게는 논리적 사고보다 서사적 사고가 더 자연스럽다’는 것을 환기해내는 저자는 그래서 맺음말에 이렇게 적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문학으로 회귀한다. (…)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과 비평가들이 그랬듯이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방점을 두면서, 특히 문학적 상상력이 인간의 황폐한 내면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하고자 문학으로 회귀한다.” 문학은 힘이 셌다.
저자 : 박소현 , 출판사 :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 입수일자 : 2024.11.26 ]]>
박소현 2024-11-26
<![CDATA[바람이 분다, 가라:한강 장편소설]]> “그날 새벽 폭설이 그 모든 흔적을 덮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서 간절하게 숨 쉬어야만 했던 그들의 이야기 1994년 등단한 이래, 나직하지만 힘 있는 문장과 시정 어린 문체로 안온한 일상에 잠재해 있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과 삶의 진실을 줄기차게 탐문해온 작가 한강이 자신의 네번째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 2010)를 펴냈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작가가 2005년 가을 무렵부터 구상에 들어가 계간 『문학과사회』에 2007년 가을부터 이듬해 가을까지 일 년 반 동안 이야기의 중반을 연재했고, 다시 일 년 남짓의 시간을 들여 처음부터 새로 고쳐 완성한 것으로 무려 4년 6개월여의 긴 시간이 투여된 작품이다. 촉망 받던 한 여자 화가의 의문에 싸인 죽음을 두고, 각자가 믿는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마치 격렬한 투쟁을 치르듯 온몸으로 부딪치고 상처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400여 페이지에 걸쳐 전개된다. 새벽의 미시령 고개에서 사십 년이란 시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난 두 차례의 자동차 사고, 그리고 그에 얽힌 인물들의 내밀한 사연이 진실을 캐묻는 화자 이정희의 기억과 힘겨운 행보를 따라 전개된다. 인물들의 감정의 흐름이나 그들의 관계, 소설이 전개되는 방식과 문체, 시간의 복잡한 흐름까지 계속해서 충돌하고 부딪치면서 격렬한 숨과 서사의 파동으로 꿈틀대는 『바람이 분다, 가라』를 통해 작가는 질문한다. 매 순간 흔들리고 번민하는 삶의 날카로운 경계 위에 서 있는 우리는 지금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살아내는 것으로 진실한 빛을 얻을 수 있는가, 과연. 한강은 작품 출간 즈음에 있은 한 인터뷰에서 “소설의 방식을 부수면서, 동시에 소설의 육체를 가진 소설”(<이 작가: 한강-작가 인터뷰>, 『문학과사회』 2010년 봄호, p. 341)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뿐 아니라 생의 기원, 타인에 대한 이해와 사랑, 기억의 전유와 그것의 재구성, 우리 안의 광기와 어두운 욕망의 정체, 삶에의 강렬한 의지, 자연과 예술을 대하는 곡진한 시선 등 그간 작가 한강의 문학에서 단편적으로 다뤄져왔던 요체들이 이번 장편에서 함께 녹아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다. 2005년 가을 무렵, 작가는 우연히 ‘breath fighting’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의식불명의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쓰고 있다가 갑자기 스스로 숨을 쉬면서 벌어지는 충돌을 일컫는 이 용어에서 작가는 호흡기를 쓴 채 숨과 싸우는 어떤 여자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떠올리고 그 여자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리하여 작가가 네 번의 차디찬 겨울을 나며 쓰게 된 장편이 『바람이 분다, 가라』다. 어지럽게 뒤얽힌 지하철 노선처럼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고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등장인물들의 기억과 의식을 좇다 보면, 그리고 깊이 모를 우주의 신비와 생의 기원을 전하는 천체 물리학과 압도적인 이미지로 인물들(이정희-이동주-서인주)의 내면을 지배하는 먹그림들 사이를 배회하다 보면 비로소 작가의 숨가쁜 호흡이 닿는 지점에 이른다. 삶과 죽음의 날카로운 경계 위에 선 채 지독한 번민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순간들, 숨과 숨이 맞부딪치는 팽팽한 긴장의 순간들로 점철된 것이 삶이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이정희와 서인주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수유리, 같은 골목의 친구 사이다. 단거리 육상 선수였던 서인주는 병약한 외삼촌(이동주)과 단둘이 살고 있었다. 우주의 비밀과 과학적 탐문에 관심이 많았던 외삼촌은 이합 한지에 거대한 먹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매달려 있었다. 인주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던 날, 별과 우주, 생의 기원, 먹을 입힌 그림 등에 매혹된 이정희는 이후 자주 그 집에 드나들게 되고, 천체 물리학 책을 탐독하고 외삼촌의 지도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그와의 애틋한 사랑도 키워간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지병을 앓고 있던 외삼촌은 죽음을 맞고 급기야 인주는 장대높이뛰기를 하다가 다리에 큰 부상을 입은 채 육상을 그만두게 되고 이후 긴 시간, 외부와 단절된 삶을 택한다. 인주가 다시 정희에게 연락을 해왔을 때, 인주는 이미 삼촌의 화법을 따라 먹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후 서인주는 정선규라는 남자를 만나 아들 민서를 낳았지만 이혼 후 아이와 단둘이 살면서 고된 그림 작업에 매달리고, 죽은 외삼촌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온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이정희는 그를 닮은 K를 만나 세 번의 아이를 지우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역시 평탄치 않은 삶을 이어간다. 한동안 인주와 민서, 그리고 정희가 함께하는 아프지만 행복한 시간이 흐른다. 그러나 돌연 소식이 끊긴 인주,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겨울의 새벽길, 폭설에 묻힌 미시령 고개의 자동차 사고로 인한 인주의 죽음이다. 사랑했지만 가족으로도 연인으로도 나설 수 없었던 외삼촌의 죽음과 친구의 잠적 앞에서 망연자실했던 이정희는 갑작스런 친구 서인주의 죽음 앞에서 또다시 무력하게 선 채 가슴이 찢기는 고통을 겪게 된다. 그 후 어두운 열기를 잠재운 채 불규칙한 번역 일로 생계를 꾸리며 침묵과 고요로 가라앉아 있는 정희의 일상에 어느 날 뜨거운 불이 점화되는 상황이 닥친다. 일 년 전 겨울의 폭설 속 미시령에서 돌연한 죽음을 맞은 인주에 대한 기사를 접했기 때문이다. 글을 쓴 미술평론가 강석원은 인주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하고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한 젊은 여성 화가의 죽음을 신화화하고자 그녀의 인생과 그림을 낱낱이 밝히는 중이다. 그러나 삶에 대한 열정으로, 그리고 아들 민서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결단코 스스로 생을 포기할 수 사람이 인주였기에 이정희는 강석원의 책 출간을 막고 인주의 죽음에 가려진 진실을 찾아 헤맨다. 『바람이 분다, 가라』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다시 시작된다. 서인주를 사랑했고 그녀의 그림을 세상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는 미술평론가 강석원의 심리적 물리적 폭압에 맞서 이정희는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줄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재혼하여 아들 민서를 데리고 호주로 이민을 간 인주의 전남편 정선규에게 답신 없는 메일을 보내고, 인주의 그림을 전시하고 소개했던 화랑과 갤러리의 소장, 미술학원 원장, 그리고 예술적 교유와 더불어 내밀한 개인적 아픔까지 내보였던 조각가 김영신 등을 만나 자신에게마저 소식을 끊고 살았던 죽기 직전의 인주의 행적을 탐문해간다. 그리고 인주와 남겨진 아들 민서에게도 거짓과 상처가 될 강석원의 평전 작업에 맞서 인주에 대해 정희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자 한다. 강석원의 집요한 추궁과 회유, 그리고 폭력 속에 인주와 외삼촌의 그림과 자료가 남겨진 작업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낡은 사진 한 장과 그 뒤에 적힌 암호 같은 메모에 의지해 이정희는 상담소 소장 류인섭의 존재를 알게 된다. 류인섭은 사십 년 전, 역시 알코올 중독과 분열 증세로 결국 생을 마감한 인주의 모친 이동선을 만나 사랑했던 남자다. 죽기 직전 류인섭이 정희에게 편지를 남겨, 비로소 미시령 고개에서의 돌연한 인주의 죽음, 죽기 직전까지 인주가 몰두했던 먹그림, 그날 새벽 인주가 폭설의 미시령 고개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인주도 외삼촌도 암묵적으로 발설하지 않았던 인주의 엄마 이동선에 대한 비밀스런 이야기를 전한다. 이 모든 사실을 접하게 된 정희는 인주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 출간하는 데 박차를 가하지만, 서인주에 대한 애증과 친구 이상의 존재인 이정희에 대한 질투, 그리고 서인주의 생을 신격화하는 데 모든 것을 내건 자신의 열정에 미쳐 있는 강석원은 정희에게 테러를 가하고 남은 그림과 자료를 화재로 인멸하기에 이른다. 인체의 모세혈관처럼 세밀한 조직을 갖고 있는 한지에 검푸른 먹선이 물과 반발하는 힘으로 뻗어 나아가는 것처럼 한강은 나직하지만 근기 있는 호흡과 문장으로 미세한 숨결로 생을 이어가는 인물들을 껴안고 있다. 그들은 450킬로미터의 대기권 안, 지구라는 곳에서 “납작함 속에서 치열하게, 납작함 속에서 안이하게, 납작함 속에서 웃고 말하고 병들고 춤춘다”(p.39). 그런 그들은 욕하고 상처 입고 욕망하는 그들 모두 “오랜 혼돈이 갈라지고 천지가 창조되는 짧은 시간, 우주는 급팽창하고 물질이 생성”(p.44)되는 ‘플랑크의 시간’이라 불리는 찰나를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풍화되는 대지와 마르는 강물, 저 짙은 어둠 속에서 폭발하는 별들이 한데 용솟음치는 혼돈 속에서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탐문하는 한강은 그 질문을 오롯이 우리의 현재의 삶에 기울인다. 그 경사는 오래고 아프고 또한 격렬하다. 마치 소설의 말미에 손과 발이 자유롭지 못한 채로 “살고 싶다, 살고 싶다”는 강렬한 삶에의 의지 하나로, 바닥을 기어 화염 속을 뚫고 힘겹게 생의 틈을 좇아 나아가는 이정희의 몸부림처럼. 또한 한강이 등단 이후 16년여 동안 자신의 작품에서 구현하고 완성해낸 정제된 언어와 문체 미학은 이번 소설에서도 변함없이 독자의 눈길을 잡아끈다. “모든 언어가 단 하나의 단어로 압축된다면, 그런 단어가 존재한다면, 우리가 입술을 열어 그걸 발음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p.122)라는 대목 역시 그런 작가의 오랜 궁구와 닿아 있다. 소설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이탤릭체도 등장인물의 깊이 모를 심연, 불안과 두려움, 외부의 폭압에 대한 거센 항거, 삶에의 강렬한 희구를 그대로 반영한다. *** 통증은 모든 곳에 있다. 격렬하다. 존재의 통각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깊은 심연으로부터 절실하다. 존재의 고통과 불안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나약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웅숭깊다. 나약하지만 눈 밝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달의 뒷면을 보고, 처음의 빛을 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격렬한 혼돈 속에서 빚어지는 처음의 빛은 너무나 환해서 그것을 보려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 막히게 하기 십상이다. 긴장감 넘치는 숨결로 작가 한강은 질문한다. 우리 과연 숨 쉴 만한가. 우리 정녕 안녕한가. 우리 진정 진실한가. 세속과 세속적 이야기의 타락을 거슬러, 한강은 오로지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럽고 그래서 가장 감동적인 소설 한 편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21세기에도 진정한 소설의 바람이 분다. 우찬제(문학평론가) 작가 한강은 과거의 경험이 현존의 뿌리라면, 그 뿌리의 어둠이 현재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는 새로운 가능성의 빛은 삶의 의지를 밝혀 바람의 숨을 뿌리의 바닥으로 불어넣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화염을 뚫고 기어 나오는 몸의 형상은 심원한 고통의 현현을 넘어 가시지 않는 감동의 여진을 남긴다. 강계숙(문학평론가) 『바람이 분다, 가라』는 집요한 ‘탐정’이 이끄는 미스터리이자, 두 여자가 나눈 사랑의 역사다. 풀잎 같은 인물들이 피 흘리며 전투를 벌이는 이 이야기의 동력은, 타인의 삶이 그린 궤적에 자신의 그것을 포개어 놓으려는 우리 안의 이상한 갈망이다. 여러 시제의 기억과 사색을 그러모은 다음 산산이 흩뿌리는 한강의 문체는 전에 없이 안으로부터 파열하려는 욕망으로 떨려 읽는 이의 몸을 긴장시킨다. 김혜리(『씨네21』 기자)
저자 : 한강 ,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 입수일자 : 2024.12.09 ]]>
한강 2024-12-09
<![CDATA[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장편소설]]> ■ 2018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 2018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대표작 『방랑자들』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자로 토카르추크를 선정하면서 “삶의 한 형태로서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해박한 열정으로 그려낸 서사적 상상력”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일찍이 폴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타인과 교감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토로한 바 있는 토카르추크의 작품 세계는 본질적으로 경계와 단절을 허무는 글쓰기를 통한 타자를 향한 공감과 연민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표작이 바로 『방랑자들』이다. 작가는 소설을 가리켜 “국경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심오한 소통과 공감의 수단”이라고 말했는데, 작자가 지향하는 이러한 가치가 무엇보다 생생하게 빛나는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2008년 폴란드 최고의 문학상인 니케 문학상을, 2018년도에는 맨부커 상 인터내셔널 부분을 수상한 『방랑자들』은 단선적 혹은 연대기적인 흐름을 따르지 않고, 단문이나 짤막한 에피소드를 촘촘히 엮어서 중심 서사를 완성하는 패치워크와도 같은 이야기 방식이 가장 절묘하고 효과적으로 활용된 사례로 평가받는다. “물리적인 이주(移住)와 문화의 이행에 초점을 맞춘, 위트와 기지로 가득한 작품”이라는 한림원의 평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품이다.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2008년 폴란드 최고의 니케 문학상 “우리가 사는 장소, 우리가 지닌 이름은 잊혀도 무방한, 아무 의미 없는 귀속의 수단일 뿐이다.” ■ 경계를 허무는 방랑자들에게 바치는 찬가 휴가를 떠났다가 느닷없이 부인과 아이를 잃어버린 남자, 죽어 가는 첫사랑으로부터 은밀한 부탁을 받고 수십 년 만에 모국을 방문하는 연구원, 장애인 아들을 보살피며 고단한 삶을 살다가 일상에서 탈출하여 지하철역 노숙자로 살아가는 여인, 프랑스에서 사망한 쇼팽의 심장을 몰래 숨긴 채 모국인 폴란드로 돌아온 쇼팽의 누이, 다리를 절단한 뒤 섬망증(?妄症)에 시달리는 해부학자, 지중해 유람선으로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그리스 문명의 권위자……. 『방랑자들』은 여행, 그리고 떠남과 관련된 100여 편이 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기록한 짧은 글들의 모음집이다. 어딘가로부터, 무엇인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혹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들, 아니면 어딘가를, 무엇을, 누군가를,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해 다다르려 애쓰는 사람들, 이렇듯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소설의 제목은 고대 러시아 정교의 한 교파인 ‘달리는 신도들’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들은 온갖 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정체되거나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고 장소를 바꾸는 것만이 악을 쫓아낼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토카르추크는 다음과 같은 모토를 선언한다. “내 모든 에너지는 움직임에서 비롯되었다. 버스의 진동, 자동차의 엔진 소리, 기차와 유람선의 흔들림.”(본문 19쪽) 모스크바의 지하철역 주변에서 노숙하는 정체 모를 노파의 에피소드를 통해 토카르추크는 인간이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어떤 장소나 사물에 얽매이게 되면, 근본적으로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관습과 타성에 젖어 익숙한 것만을 찾는 인간은 현재에 안주하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기계적으로 순응하게 되고, 더 이상 모험이나 행복을 갈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멈추는 자는 화석이 될 거야, 정지하는 자는 곤충처럼 박제될 거야, 심장은 나무 바늘에 찔리고, 손과 발은 핀으로 뚫려서 문지방과 천장에 고정될 거야. (…) 움직여, 계속 가,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 (본문 391~392쪽) 토카르추크는 우리를 쉼 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여행이야말로 인간을 근본적으로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우리가 머무는 공간, 우리가 움켜쥐고 있는 소유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삶의 본질적인 요소는 아님을 일깨운다. ■ 형식의 경계를 넘어서 『방랑자들』은 여러 이야기를 직조한 다성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불과 10여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텍스트도 있고, 중편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긴 분량의 이야기도 있다. 여행기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실은 독자로 하여금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듯이 읽으며 사색을 하도록 유도하는 철학적인 이야기들이다. 또한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느낌과 해석이 가능한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텍스트이기도 하다. 한 귀퉁이에 서서 바라보는 것. 그건 세상을 그저 파편으로 본다는 뜻이다. 거기에 다른 세상은 없다. 순간들, 부스러기들, 존재를 드러내자마자 바로 조각나 버리는 일시적인 배열들뿐. 인생? 그런 건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선, 면, 구체들, 그리고 시간 속에서 그것들이 변화하는 모습뿐이다.(본문 280쪽) 장르 또한 다양해서 여행일지나 르포르타주는 물론, 서간문이나 강연록 형식의 글들도 공존하는데, 그중에서 인체나 내장 기관을 전시한 박물관에 대한 관람 기록은 추리물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오랜 시간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에서 쓴 에세이도 있고, 바쁜 여정을 쪼개어 기차역에서 무릎 위에 책을 받쳐놓고 쪽지에 휘갈겨 쓴 단상도 있다. 트렁크에 담긴 구겨진 짐처럼 두서없고, 혼란스러운 형태로 다채로운 에피소드가 쉼 없이 나열된다. 나는 기차와 호텔, 대기실에서, 그리고 비행기의 접이식 테이블에서 글 쓰는 법을 익혔다. 밥을 먹다 식탁 밑에서, 혹은 화장실에서 뭔가를 끄적이기도 한다. 박물관의 계단에서, 카페에서, 길가에 잠시 정차해놓은 자동차 안에서 글을 쓴다. 종이쪽지에, 수첩에, 엽서에, 손바닥에, 냅킨에, 책의 한 귀퉁이에 쓴다.(본문 35쪽)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또한 시간적·공간적으로 서로 단절된 것처럼 느껴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 보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발견된다. 공항에서 여행객들이 끊임없이 서로 마주치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된 에피소드의 후속 스토리가 뒷부분에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시체를 박제하여 ‘호기심의 방’에 전시한 프란츠 1세에게 항의 편지를 보내는 딸의 사연, 크로아티아로 여름휴가를 떠났다가 아들과 아내를 잃어버린 사내의 이야기, 공항에서 시리즈로 전개되는 여행 심리학에 대한 강연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 즈음, 다음 에피소드의 공간적 배경에 대한 단서가 은밀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뉴질랜드를 발견한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의 에피소드에 이어 호주의 한 해변에서 길을 잃고 죽음을 맞은 고래의 사건이 언급되고, 그 뒤로 호주로 짐작되는 나라로 이주한 폴란드 연구원의 사연이 이어지는 식이다. 이러한 단서를 찾아보고, 서로 연결되는 요소들을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 21세기의 오디세이 『방랑자들』에서 토카르추크는 여행길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죽음,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언어’의 힘을 빌려 작품 속에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그들에게 불멸의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기록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기에. 우리는 문자와 이니셜을 서로 교환하고, 종이 위에 서로를 불멸로 남기고, 서로를 플라스티네이션 처리하고, 문장의 포름알데히드 속에 서로를 담글 것이다. (본문 601쪽) 이 책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여행이란 단순히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횡단하는 물리적인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여행, 묻어 두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시도, 시련과 고통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이 방대한 여정에 포함된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통해 직접 가 보지 못한, 머나먼 타국의 이국적인 장소들을 간접적으로 방문해 보고,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되는 것, 지구촌 곳곳에서 여러 흥미로운 인물들과 그들의 생의 단면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또한 일종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은 생이 시작된 순간부터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의 한계에 쫓기며, 소멸을 향해 하루하루 달려가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표제인 ‘방랑자들’이란 궁극적으로 21세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책을 향한 찬사 ▶ 삶의 한 형태로서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해박한 열정으로 그려 낸 서사적 상상력. 물리적인 이주와 문화의 이행에 초점을 맞춘 『방랑자들』은 위트와 기지로 가득하다.―스웨덴 한림원,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 조각보처럼 아름답게 만들어 낸 영원에 대한 갈망. 야심 차고 복잡한 작품! 《워싱턴 포스트》 ▶ 웅대한 스케일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 W. G. 제발트와 비견되는 작가! 애니 프루(작가)
저자 : 토카르추크, 올가 , 출판사 : 민음사 , 입수일자 : 2024.11.28 ]]>
토카르추크, 올가 2024-11-28
<![CDATA[배반:압둘라자크 구르나 장편소설]]> 그 어느 작품과도 비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기쁨으로 가득하다. 구르나의 묘사는 마에스트로의 경지에 이르렀다. - 가디언 시대의 격랑 속에서 싹튼 비밀스러운 열정과 전통의 굴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디아스포라의 삶 1899년 어느 이른 아침, 작은 상점의 주인 하사날리는 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해 모스크로 향하던 중 길에 쓰러져 있는 백인 남자를 발견한다. 의식을 잃은 상처투성이 백인의 등장에 마을에서는 소동이 벌어지고, 하사날리는 곤경에 처한 이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이슬람의 교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경외와 호기심의 대상인 백인을 독차지하고 싶다는 마음에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보살핀다. 소식을 접한 그 지역의 영국인 관리 프레더릭 터너는 문제의 백인을 관사로 데려가고, 그곳에서 정신을 차린 남자는 마틴 피어스라는 이름의 영국인임이 밝혀진다. 유럽문명의 우월성을 믿으며 아프리카인을 정복과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여타 백인들과 달리 순수한 호기심으로 아프리카의 “풍경을 보고 언어를 들어보고 싶”어하는 그는 대륙 여행에 대한 기대를 품고 백인 관광 무리에 합류했지만, 동물을 도륙하는 일행들을 견디지 못하고 무리와 헤어졌다가 길안내를 맡은 소말리아인들에게 모든 소지품을 빼앗기고 버려진 것이었다. 마틴은 하사날리가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음에도 소지품을 훔쳤다는 근거 없는 의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건강을 회복하자마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부당한 대우에 대한 사과를 하기 위해 하사날리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사날리의 누이 레하나에게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끼고, 결혼에 실패한 뒤 체념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듯 살아가던 레하나 역시 미지의 존재 마틴에게 강렬한 매혹을 느낀다. 그리고 이야기는 반세기 후, 독립을 앞두고 혼란스러운 1950년대 후반의 세 남매에게 초점을 맞춘다. 공부에 소질이 없는 맏이 파리다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진학을 포기하고 집안일을 돌보며 마을의 여자들을 대상으로 옷을 지어 판다. 반면 어린 시절부터 바깥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왕성해 이탈리아어를 독학하며 식민교육에 빠른 속도로 적응한 막내 라시드는 영국 유학을 위한 장학생 시험을 준비한다. 그리고 둘째 아민은 부모님처럼 교사의 길을 걷는 한편 이루어질 수 없는 은밀한 사랑에 빠져든다. 상대는 파리다의 고객이자 마틴과 레하나의 손녀 자밀라로, 인도인과 유럽인의 피가 섞인데다 이혼 경력이 있으며 유력 정치인과 교제를 한다는 소문이 돌아 눈총을 받는 여성이다. 두 사람의 밀회를 알게 된 아민의 부모는 자밀라의 배경과 과거, 추문을 이유로 둘의 관계를 반대하고, 어린 시절부터 순종적이던 아민은 사랑을 포기하고 늙어가는 부모를 돌보며 살아간다. 한편 이 모든 혼란을 뒤로하고 마침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라시드는 그동안 너무도 잘 안다고 생각해왔던 세계에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으며 이방인이자 혐오스럽고 열등한 존재로 삶을 이어간다. 떠나온 조국에서는 혁명의 소용돌이가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지만, 검열을 거쳤을 편지와 뉴스를 통해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소식으로만 그곳의 실상을 짐작하며 두고 온 이들에 대한 부채감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라시드는 자신이 함께하지 못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하여,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형의 아픔을 헤아리기 위하여 과거의 시간을 되살리고자 한다. 단절과 떠남으로 기록되는 크고 작은 개인의 역사들 그리고 삶을 이어가게 하는 이야기의 힘에 대한 증언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이 작품은 ‘관계의 단절’ ‘떠남’이라는 주제를 연결고리로 끝내 파국을 맞은 사랑 이야기와 잔지바르의 역사를 한데 엮는다. 제국주의가 본격화되어가는 19세기 말 사랑에 빠진 연인은 인종의 장벽을 맞닥뜨리고, 반세기 후 비슷한 관계에 놓인 두 사람 역시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이별을 맞는다. 단절과 떠남의 주제가 반복되는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하는 인물은 후반부의 주인공 라시드로, 떠나온 곳과 지금 살고 있는 곳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중의 소외를 겪는 그 외부자의 삶은 작가인 구르나 자신의 개인적 삶의 궤적을 떠올리게 한다. 망명자가 되어 고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박해를 그저 “머나먼 곳에서 일어난 비극”으로 관찰할 수밖에 없는 라시드는 “영국에 살며 나는 그런 문제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큰 고통을 받았다”는 작가 자신처럼 “트라우마로부터 도망치고, 자기만 스스로의 안전을 찾아 떠났다는 마음의 짐”을 품고 살아간다(노벨문학상 연설문). 동시에 지금 살고 있는 곳에도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고 유럽인의 눈을 통해, 즉 “혐오스럽고 불만족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쌓아온 정체성과도 단절된 채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이렇듯 연인과 가족을, 그리고 조국을 떠났으되 떠나지 못한 이들의 초상을 그리면서도 작가는 향수와 비애에 매몰되는 대신 그 고통을 이해하고 삶을 이어가게 하는 이야기의 힘에 대해 역설한다. 전반부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1인칭 화자 ‘나’가 등장하면서 이 모든 이야기는 라시드가 기억과 상상을 동원해 과거를 재구성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고국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거리를 둔 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슬픔과 죄책감”으로 우는 것뿐이었던 그는 떠나온 가족을, 특히 형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겪었던 인생의 비극을 기록하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함께하지 못한 형과 누나의 삶을 재현하려는 시도는 오십 년 전의 두 연인과 그들 주변의 인물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확장된다. 라시드의 이야기 속 아민 역시 사랑을 포기한 자신의 선택에 수치와 회한을, 혁명정부의 정치적 탄압에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나 자신에게 내가 살아 있다고 말하기 위한 행위”이자 “잊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남긴다. 결국 반세기의 시차를 두고 반복된 비극으로만 보였던 연인들의 운명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고, 더 나아가 또다른 이야기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을 암시한다. 작가는 라시드의 입을 빌려 말한다. “이 이야기에는 ‘나’가 있지만 이것은 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 관한 이야기”라고. 거대한 서사는 포착하지 못하는 평범한 이들 하나하나의 삶을 기억하고 이야기함으로써 크고 작은 역사를 복원해내는 것, 그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하게 한 힘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 #디아스포라 #평범한이들의이야기 #이야기의힘 #비극적인사랑 ▶ 추천의 말 식민주의의 영향과 대륙 간 문화 간 격차 속에서 난민이 처한 운명을 타협 없이, 연민어린 시선으로 통찰했다.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그 어느 작품과도 비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기쁨으로 가득하다. 구르나의 묘사는 마에스트로의 경지에 이르렀다. 가디언 강렬한 내러티브를 쌓아나가는 능력과 가족 간의 역학관계를 포착하는 섬세한 시선, 인간 정신을 좀먹는 식민지배에 대한 이해를 완벽히 장악한 작가의 기량이 정점에 올랐다. 시애틀 타임스 포기와 상실에 관한 흡인력 있는 소설. 구르나의 글은 아름답다. 과도하게 유난을 떨지 않고, 절대적인 정밀함만으로 원하는 효과를 내는 법을 아는 작가. 데일리 텔레그래프 기억이 어떻게 필연적으로 위안과 동시에 좌절감을 안기는지 섬세하게 탐구한 작품. 선데이 타임스 경탄스러운 성취. 사랑과 인종, 식민지배에 대한 진지한 탐구.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저자 : 구르나, 압둘라자크 , 출판사 : 문학동네 , 입수일자 : 2024.11.28 ]]>
구르나, 압둘라자크 2024-11-28
<![CDATA[보트하우스 :욘 포세 장편소설]]> 강박과 불안을 구현하는 포세의 글쓰기 어릴 적의 추억과 향수는 『보트하우스』의 주된 소재다. 그러나 포세는 이를 결코 그리움과 애잔함으로 박제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절의 밝은 빛이 현재의 음영을 짙게 만들고,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주요인물 세 사람은 모두 정신적인 면에서 어딘가 일그러져 있는 인물들로 작품 전반에서 음울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린 시절 친했던 친구의 고향 방문을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 풀지 못한 어떤 문제가 다시 떠오른다. 폐쇄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해오던 화자에게 그 이후 벌어진 사건들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글을 쓰는 것은 화자가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고, 이를 위해 화자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써 내려간다. “나는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불안감이 엄습하여 나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 불안감이 엄습해 온 것은 바로 지난여름이었다.” 이처럼 도입부부터 화자의 불안을 드러내면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욘 포세의 문체적 특징인 ‘반복’이 강박적인 심리를 표현하고 독자에게 불안을 전염시키는 형태로 구사되고 있다. 타인에 대한 불안감을 그린 작품, 『보트하우스』 『보트하우스』는 화자가 지난 일들을 기술하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화자가 글을 쓰고 있는 ‘현재’를 통해 크누텐과 다시 마주친 ‘얼마 전의 과거’ 그리고 크누텐과 죽마고우로 지냈던 ‘10년 전의 과거’가 병렬적으로 제시된다. 일종의 반복과 변주로 보이는 이 구성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중간의 연결고리를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지난 10년간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드러나지 않고, 두 사람이 멀어진 계기가 되는 사건 역시 후반부에 가서야 살짝 언급된다. 이로써 작가는 의도된 공백 속에 독자가 자신의 경험과 이해를 채워 넣게 만든다. 독자들에게 어릴 적 알았던 친구가 어느 순간 낯설어진 경험을 상기시키며, 어찌하여 그렇게 된 것인지 생각해 보았느냐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화자가 크누텐의 시점을 빌려와 기술하는 파트 II다. 파트 I에서 한 번 진행되었던 서사를 크누텐의 시점으로 다시 쓰며 화자와 크누텐의 서로 다른 속내를 드러낸다. 이로써 ‘10년 전의 과거’ 역시 화자의 경험과 크누텐의 경험이 서로 다르게 기억되어 있음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와 가깝게 잘 아는 누군가는 나와 함께하고 있는 그 순간부터 이미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닌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필연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다름’ 그리고 ‘다른 존재에 대한 불안감’. 이것이 『보트하우스』의 테마가 아닐까.
저자 : 포세, 욘 , 출판사 : 새움출판사 , 입수일자 : 2024.11.28 ]]>
포세, 욘 2024-11-28
<![CDATA[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유선혜 시집]]> 유선혜 2024-12-09 <![CDATA[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흔들리는 인생을 감싸줄 일흔일곱 번의 명시 수업]]> 장석주, 2024-12-09 <![CDATA[습지 위의 집 :루이즈 글릭 시집]]> “고통으로 만들어지는 무언가가 늘 있다.” 한 명의 예술가를 알리기 위한 시공사의 루이즈 글릭 전집 프로젝트 2020년 노벨문학상 작가 루이즈 글릭의 대표 시집 《야생 붓꽃》, 《아베르노》, 《신실하고 고결한 밤》이 언론과 문학 독자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은 지 1개월이 지났다. “개인의 존재를 보편적인 것으로 끌어올리는 시적 목소리”라는 한림원의 찬사를 받은 루이즈 글릭은 퓰리처상 · 전미도서상 · 미국 계관 시인 · 국가인문학메달 · 전미비평가상 · 볼링겐상 · 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서상 · 월리스스티븐스상. 그리고 노벨문학상까지, 50년 동안 미국 시 문단 중심에 선 인물이다. 노벨문학상 소식 후 2년 가까이 그녀의 작품이 온라인에서 번역되어 왔지만, 그녀가 인정한 유일한 한국어본은 시공사의 책이 유일하다. 꼼꼼하고 치밀한 시인과 루이즈 글릭의 시 세계를 연구하는 학자 정은귀 교수가 치열하게 소통한 결과다. 앤 섹스턴과 어맨다 고먼의 시를 우리말로 옮긴 정은귀 교수는 대학 강당과 논문을 비롯해 대중 강연에서도 글릭의 시를 강독하고 알리는 열정적인 연구자다. 한국연구재단 내 루이즈 글릭 연구 프로젝트를 설립해 루이즈 글릭의 시 세계를 활발히 연구하며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시공사는 2023년까지 루이즈 글릭의 전 작품을 출간하겠다는 목표로, 그녀의 데뷔작 《맏이》와 두 번째 시집 《습지 위의 집》을 출간한다. 대표 시집 3종을 출간하고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을 연달아 출간하는 이유는, 그녀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기반이 되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이 두 시집을 통해 루이즈 글릭이라는 한 인간과 그녀의 시 세계를 동시에 이해하게 된다. 앞서 출간된 시집 3종의 시 세계에 대한 낯섦은 사라지고 더욱 몰입될 것이다. ㆍ ㆍ ㆍ 이 모든 시절 뒤, 생생한 색으로 돌아오는, 사랑. _〈동트기 전 내 인생〉 중에서 《습지 위의 집》 우울과 황폐 후 7년, ‘새로운 종의 시인’으로 호평받은 시집 《습지 위의 집》은 첫 시집이 발표된 지 7년만인 1975년에 출간됐다. 글릭은 이번 시집에 집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아 담았다. 한결 사랑스럽고 다정한 시집이다. 첫 시집 《맏이》에서 지독한 우울과 황폐를 보여 준 후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시집 속에서 글릭이 그리는 목소리는 사랑스럽다. 자연 속에서 부드럽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힘 때문에 “새로운 종의 시인”이 나왔다는 문단의 호평을 받게 된다. 글릭이 살아온 삶, 글릭의 눈으로 본 생 이 시집의 첫 시는 마을 풍경을 그린다. 모든 것이 모여들고 정돈되어서 고즈넉해진 시간에 들어선 마을. 휴지기에 접어든 듯한 생명에 대한 묘사가 추수가 끝난 가을을 묘사한 듯 평온하다. 글릭의 많은 시들이 그렇듯 시 후반에서는 대부분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는 비틀기가 보이는데, 이 첫 시 역시 그렇다. 평온한 풍경인 듯 하다가 안정된 세상이 아닌 다른 불운을 기다리는 세상인 듯이 묘사하여 독자를 불안에 빠뜨린다. 글릭이 살아온 삶, 글릭의 눈으로 본 생은 그런 것이다. 행운인 듯 평화롭다가도 불행이 닥쳐오고, 불행이 불현듯 물러가 평온이 온다. 이 시집에서 글릭은 불안한 세상에서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어느 시점에 평화를 깨는 배반을 당하고,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들이 존재하는 곳은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집이다. 글릭은 이 집에 들어서 있는 남자와 여자, 형제, 자매, 부모와 자식, 오누이 등의 관계를 그린다. 어딘가 모르게 닮은 사람들, 동질감과 유대감으로 얽힌 끈끈함이 시집 곳곳에서 활동한다.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허상을 허물지만, 그 시선에는 연민, 애정이 담겨 있다. 자신의 삶과 화해하는 법 글릭은 젊은 날을 남들과 비슷하게 보내지 못했다. 지독한 우울, 섭식장애 등으로 시절을 보낸 시인이 어떤 언어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화해에 이르렀는지를 독자들은 이 시집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불안과 우울을 그린 첫 시집 이후, 꽃이 피어나는 공간과 시간을 담은 두 번째 시집 《습지 위의 집》이 출간된 것은 그녀의 시 세계가 절묘하게 확정되었다는 증거다. 첫 시집과 맥락을 같이하는 점은 자신의 불행을 수용하는 모습에 있지만, 글릭은 이 시집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다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누군가와 하는 화해는 삶을 뒤바꿀 수 없다고. 화해 이전에 자신이 속해 있는 곳의 풍경, 삶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굳건하고 덤덤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마음가짐이 진정한 화해라고 말이다. ㆍ ㆍ ㆍ 21세기 노벨문학상 첫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 2020년 루이즈 글릭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시문단에서는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2000년 이후 여성 시인으로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1909년에 〈닐스의 모험〉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초 여성 작가 셀마 라겔뢰프 이후 16번째이고, 1996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이후 두 번째 여성 시인이다. 한림원 위원인 작가 안데르스 올손은 “《야생 붓꽃》(1993)에서 《신실하고 고결한 밤》(2014)에 이르기까지 글릭의 시집 열두 권은 명료함을 위한 노력이라고 특징지어진다”고 했다. 덧붙여 글릭의 작품 세계를 19세기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과 비교하며 “단순한 신앙 교리(tenets of faith)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엄정함과 저항”이라고도 표현했다. 루이즈 글릭은 50년 동안 미국 시 문단 중심에 선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그래요, 기쁨에 모험을 걸어보자고요 / 새로운 세상의 맵찬 바람 속에서”라는 구절이 있는 시 〈눈풀꽃〉만 알려져 있지만, 미국에서는 현대 문단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퓰리처상 · 전미도서상 · 미국 계관 시인 · 국가인문학메달 · 전미비평가상 · 볼링겐상 · 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서상 · 월리스스티븐스상. 그리고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그녀의 작품은 우아함, 냉철함, 인간에게 공통적인 감정에 대한 민감성, 서정성, 그리고 그녀의 작품 전반에 걸쳐 드러난 거의 환상에 가까운 통찰력으로 지속적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저자 : 글릭, 루이즈, , 출판사 : 시공사 , 입수일자 : 2024.11.28 ]]>
글릭, 루이즈, 2024-11-28